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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줄거리 결말 명대사)_단 한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랐던 그들의 이야기 안녕 헤이즐(줄거리 결말 명대사)_단 한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랐던 그들의 이야기

안녕 헤이즐(줄거리 결말 명대사)_단 한 사람에게 기억되길 바랐던 그들의 이야기

2020. 5. 3. 00:03Film

 

안녕 헤이즐 (The Fault in Our Stars) 2014
감독 : 조시 분
각본 : 스콧 노이스태터, 마이클 H. dnpqj
원작 : 존 그린
출연 : 셰일린 우들리, 앤설 엘고트, 냇 울프, 로라 던, 샘 트래멀, 윌럼 더포

 

 

 

예전에 언어 공부라는 책의 리뷰에서 내가 바쁜 삶 속에서 영어를 어떻게 노출시키는지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 현생이 바빠 따로 원서를 읽을 시간은 없어서 구태여 원서를 따로 읽지는 않고 미국 방송사의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칼럼이나 아티클을 읽거나 주식이나 책에 대해 소개하는 영문으로 된 팟캐스트를 듣는다고 말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좋고 무엇보다 그냥 난 읽는 게 좋다. 우리말로 쓰인 걸 읽는 것도, 영문으로 쓰인 걸 읽는 것도.

 

 

요즘에 미국 방송사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12월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라디오에서도 시종일관 코비드 19 바이러스 얘기만 줄곧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노이로제 걸릴 것 같고 그놈의 바이러스 소리 좀 안 듣고 싶은데 구태여 남의 나라 라디오를 들으면서까지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기사는 매일 읽지만 최근에 유쾌한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고민 끝에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재밌게 본 영미권 소설을 알려 달라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자기 계발서나 인문 교양서 말고 소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말 뿐이라도 예쁜 말을 보고 싶었다. 어느 나라 소설이든지 보통 소설의 필체는 예쁘다. 문장도 섬세하다. 예쁜 글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추천받은 책이 바로 이것이다. 존 그린의 소설인 The fault in our stars. 우리나라 역서 이름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이다. 역서 이름보다 안녕, 헤이즐이란 영화 개봉명이 더 마음에 든다. 암에 걸린 10대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이라고 했다. '좀 뻔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였지만 친구가 추천해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추천했기 때문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길래 책 보다 훨씬 시간이 덜 드는 영화를 먼저 본 것이다. 약 이주 전 어느 날 새벽 이 영화를 봤다.

 

 

슬플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 나이밖에 안된 소녀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데 당연히 슬플 수밖에 없지 않나. 2시간 12분의 러닝 타임이 끝나자 내 책상에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축축해진 휴지가 산더미처럼 가득했다. 말 그대로 엉엉 울고 오열을 하며 영화를 봤다. 얼마나 울었는지 다음날 하루 종일 지끈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내 영화 리뷰는 정말 보잘것없지만 영화 리뷰를 쓰려고 보통은 영화를 2번 이상 감상한다.(사냥의 시간 같은 망작은 1번만 보고 리뷰를 작성한다.) 두 번 보면 첫 번째 보았을 때 놓쳤던 부분을 발견한다. 결말을 알고 보면 이 전에 못 봤던 것들이 보인다. 영화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감독이 숨겨놓은 의도를 파악하기도 더 쉽다. 아마추어지만 영화를 보며 사유한 내 느낌을 적어 내려가는 내 리뷰는 적어도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고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는데 오래 걸렸다. 영화를 한번 더 볼 자신이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 멍울이 지는 것 같았고 심장이 저릿저릿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소설은 읽을 엄두도 못 내겠다. 큰 용기를 내서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영화를 다시 한번 보았다. 어딜 때릴지 알고도 맞는 것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시크한 소녀 헤이즐과 젠틀하고 다정한 어거스터스


헤이즐 그레이스 랭커스터(셰일린 우들리)는 인디애나 폴리에서 살고 있는 17살짜리 소녀이다. 13살 때 갑상선암 4기인 것을 발견하였고 폐까지 전이된 상태. 어렸을 때부터 큰 병에 걸렸고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어서인지 헤이즐은 꽤나 시니컬하다. 또래 소녀들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염세적이다. 헤이즐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다. 헤이즐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if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when이라고 정정하는 이유다. 죽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오늘이든 1년 후이든 언젠가 죽을 것을 아는 것이다. 헤이즐은 너무 빨리 철들어버렸다. 텁텁하고 씁쓸한 세상을 더 나중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생이 남아있다 보니 남들이 80년 동안 배울 거를 17년 사이에 속성으로 배워버렸나 보다 하고 내 멋대로 사유해 버렸다. 헤이즐은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한데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헤이즐이 사랑에 빠졌을 때는 세상 시크한 소녀가 아니라 여느 10대 소녀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귀여운 그녀의 행동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다.

 

 

 

헤이즐의 엄마는 헤이즐이 읽은 책을 자꾸만 또 읽고 나가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면서 우울증을 의심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헤이즐에게 서포트 그룹에 나가보는 것을 추천했다. 아무래도 같은 journey 중인 사람들과 있다 보면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고. 헤이즐은 선생님에게 journey? really?라고 되물었다. 다 큰 성인이어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투병생활을 journey(여행, 여정)으로 표현한 선생님에게 헤이즐은 심통이 났을 거다. 그렇게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서포트 그룹에 갔다가 우연히 어거스터스 워터스(앤설 엔고트)를 만났다. 둘은 첫 만남에 사랑에 빠져버린 듯했다.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읽은 소년이다.

 

 

 

첫 만남에 다짜고짜 영화를 보러 가자는 어거스터스에게 헤이즐은 용기를 내 수락하였다. 그날 헤이즐은 운전을 괴팍하게 하는 어거스터스 차를 타고 그의 집에 갔다. 그의 부모님은 헤이즐과 인사하는 장면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셨지만 굉장히 밝으셨고 사려 깊어 보이셔서 이런 부모님 밑에서 컸기에 거스가 저렇게 밝고 긍정적인 청년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둘은 '난 13살 때 암에 걸렸고 그래서 병이 얼마큼 진행되었고 지금 상태는 어떻고....'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하였다. 진짜 헤이즐. 진짜 어거스터스의 이야기.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공유하였다. 난 이걸 보고 그 둘이 사랑에 빠졌나 보다 하고 넌지시 짐작했다. 나 역시 사랑에 빠지면 그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알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알고 싶어 진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알고 싶어 진다. 내가 알지 못했던 시간만큼 그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싶어 지니까. 사랑은 서로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니까. 애니라곤 전혀 보지 않는 내가 그 때문에 애니를 보고, 지구밖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내가 그 때문에 우주와 행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그가 그의 귀한 시간을 쪼개 내가 좋아한다 했던 미드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무엇인지 묻는 것처럼.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도 그랬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An imperial affliction)"를,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에게 "대게릴라전(counterinsurgency)"을 추천했다. 연락이 오지 않는 어거스터스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이내 뾰로통해진 헤이즐을 보는 게 너무나 귀여웠다. 그녀는 하. 루. 종. 일. 어거스터스만 생각하며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헤이즐이 "장엄한 고뇌" 이후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했던 이유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에게 장엄한 고뇌를 집필한 벤 하우튼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다. 그 책은 안나라는 암을 앓고 있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헤이즐의 상황과 비슷하다. 안녕, 헤이즐에서 이 책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책은 결말이 문장 중간에 끝난다. 마치 삶은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갑자기 끊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처럼.

 

Pain demands to be felt.

고통은 느껴야 한다.

 

장엄의 고뇌에 적혀있는 문구다. 헤이즐은 이 책 때문인지 고통은 되도록이면 느끼려고 한다. 애써 무시하고 덮어두기보다 오롯이 고통을 느끼고 온 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것이 헤이즐이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작을 보고 "이게 당연한 반응인 거야."라고 말하는 이유다.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을 위해서 꼭 벤 호우튼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는 피터 벤 하우튼에게 메일을 보냈고 책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암스테르담에 직접 찾아오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때 헤이즐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이때 내 생각으론, 자기를 이렇게도 좋아하는 독자(암환자인 소녀)를 암스테르담으로 부르기보단, 신체 건강한 작가 본인이 미국으로 가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를 만나는 것이 옳은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어거스터스가 얼마나 스윗한지 보여주는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왜 뜬금없이 헤이즐에게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튤립을 건넸는지, 왜 닉 스미스 셔츠를 입었는지, 왜 네덜란스산 치즈가 들은 샌드위치를 싸 왔는지 다 이유가 있었다.

 

 

헤이즐은 피터 반 호우튼을 만나러 네덜란드에 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의료 시설, 헤이즐의 몸 상태, 금전적인 문제)로 가지 못하고, 지니 재단(아마 어린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인가 보다)에서 들어주는 소원을 이미 디즈니 랜드 가는 것으로 써버렸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벤 하우튼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였다. 어거스터스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자신의 소원을 기꺼이 헤이즐을 위해서 썼다. 헤이즐과 함께 피터를 만나서 암스테르담에 가는 것으로 말이다. 공항까지 에스코트해주는 리무진도 함께. 해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저 많은 메타포를 포함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10대 소년이 이렇게 스윗할 일? 

 

 

 

헤이즐은 아프다. 4기 암환자다. 폐까지 전이됐으며 물이 찼다. 영화를 보면서 깜빡 잊고 있었다. 여느 소녀처럼 예쁜 모습과 풋풋한 사랑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아프다는 걸 잊어버렸나 보다. 영화는 "헤이즐은 암환자야. 평범하지 않다고!" 라며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이다.

 

 

헤이즐의 병은 예측할 수 없고, 심각한 병증의 환자여서 암스테르담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헤이즐은 다행스럽게도 암스테르담에 갈 수 있었다.

 

 

다만 6일이 아닌 3일일 것. 보호자인 엄마도 함께 갈 것. 비상시 대처할 수 있는 의료인이 함께 할 것.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데이트를 즐겼다. 사이트 관광도 하고 펜시한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도 하고. 이때만 해도 반 호우튼이란 작자가 인간 이하일 거라곤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복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그렇게도 기대했던 피터 반 호우튼은 알코올 중독자에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해 인간 이하다. 인간이라는 말을 붙이기 아까운 인간이었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를 조롱했다. 그것도 그들의 병으로. 영화를 보면서 너무 놀라서 심장이 쿵쿵댔다. 저 작자의 입을 무엇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처 막고 싶었다. 감히 아이들에게 뚫린 입이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걸린 병으로 모욕하다니. 장엄한 고뇌 이후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 먼길을 왔는데.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암스테르담에 갔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속이 상했다. 허탈했다. 저 꼴을 보려고 헤이즐이 그 고생을 하며 암스테르담에 간 게 아닌데.

 

 

영리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술주정뱅이 멍청이 때문에 암스테르담 여행을 망치게 두지 않았다. 그 둘은 안나의 집도 관광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헤이즐이 왜 장엄한 고뇌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는지 알고 있다. 왜 속편을 간절히 기다렸는지 알고 있다. 헤이즐은 어거스터스를 사랑하면서도 그와 깊은 관계를 갖는 걸 꺼려한다. 헤이즐은 자신이 "수류탄"이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터져서 주변의 모든 걸 날려 버리는 수류탄. 사상자 수를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햄스터도 키우지 않는 거라고 했다. 헤이즐이 거스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 친구로 남길 바랐던 이유일 것이다.

 

 

헤이즐이 장엄한 고뇌에서 안나가 죽은 후 남겨진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헤이즐 역시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남겨진 사람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안나가 남겨두고 간 엄마와 네덜란드 튤립맨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건, 자신이 없어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엄마 아빠 때문이었을 거다.

 

 

죽음의 문턱이 늘 곁에 있었고 죽음을 늘 생각하다 보니 헤이즐은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질 사람을 항상 걱정했던 모양이다. 자기가 죽고 없어지면 부모님은 어떻게 살아갈까. 너무 상심한 나머지 자살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헤이즐은 엄마가 자신 몰래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을 기뻐했다. 자기가 없어도 엄마 아빠가 잘 사는 것이 그녀가 바랐던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엄마는 헤이즐이 죽고 나서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 거라고 하셨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담으로 헤이즐의 엄마 역할을 맡은 로라던의 온도차를 보고 새삼 놀랐다. HBO 드라마 빅리틀 라이즈에서도 셰일린 우들리(헤이즐)와 로라 던(헤이즐의 엄마)은 호흡을 맞췄다. 엄마와 딸이 아닌, 둘 다 초등 아이를 둔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 로라던이 셰일린 우들린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것이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다.

 

 

 

 

 

의젓한 줄만 알았고 밝은 줄만 알았던 어거스터스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마지막 날,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에게 자신의 암이 재발했다고 말했다. 엉덩이가 아파서 PET 스캔을 받았는데 자신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났다고. 가슴, 간, 모든 곳이. 헤이즐은 어거스터스가 자신보다 늦게 죽길 바랐을 것이다.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난 암이 재발해 온몸에 퍼져버린 어거스터스보다 그런 그의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헤이즐을 보는 게 더 아팠다.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애써 눈물을 삼키는 모습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괴로운 일일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 건 자신이 아픈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일 테니까.

 

 

 

놀랐다. 영화 내내 어거스터스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리 한쪽을 잘라낸 어거스터스는 "몸무게도 줄이고 좋죠 뭐!"라고 말할 정도로 호탕했고, 자신의 몸이 암세포로 퍼지는 것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났어"라고 말할 만큼 긍정적이고 밝은 친구였다.

 

 

깊게 보려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견디고 있을 무게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항상 웃고 있고, 긍정적이고 의젓하니까 그런 줄로만 알았던 거다. 다리 한쪽을 잃었고 골육종은 재발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소년인데,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단순히 정말 어른스러운'줄' 알았다.

 

 

혼자 담배를 사러 나왔다고 했다.(어거스터스는 흡연을 하지 않는다. 다만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물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하고 싶었다고 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서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다며 울부짖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어거스터스를 보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괜찮은 척을 하려고 부모님에게, 헤이즐에게, 친구들에게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을까. 혼자서 자기감정을 억누르며 아파하고 울었을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니 그걸 몰라봐준 것이 미안하더라.

 

 

 

어거스터스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갔고 죽기 8일 전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pre funeral(생전 장례식)을 준비했다. 자신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서 장례식에 있겠지만, 그전에 살아서 장례식을 보고 싶다고. 헤이즐과 눈이 먼 친구인 아이작을 불러 사전에 준비한 추도사를 낭독한다. 헤이즐은 피터의 소설을 인용했다.

 

 

헤이즐의 추도사를 소개해볼까 한다. 

 

 

Hello, My name is Hazel Grace Lancaster and Augustus Waters was the star crossed love of my life.

Ours was an epic love story and I probably won't be able to get more than a sentence out without disappearing into a puddle of tears.

Like all real love stories ours will die with us. As it should.

You know, I'd kind of hoped that he would be the one eulogizing me.

Because there's really no one else.

I'm not gonna talk about our love story, because I can't.

So, instead, I'm gonna talk about math.

I am not a mathematician, but I do know this.

There are infinite numbers between zero and one.

There's point one, point one two, and point one one two, and an infinite collection of others.

Of course, there is a bigger infinite set of numbers between zero and two or between zero and a million.

Some infinities are simply bigger than other infinities.

A writer that we used to like taught us that.

You know, I want more numbers than I'm likely to get.

And god, do I want more days for Augustus Waters than what he got.

But, Gus, my love,

I can not tell you how thankful I am for our little infinity.

You gave me a forever within the numbered days. And for that, I am eternally grateful.

I love you so much.

 

 

안녕하세요. 전 헤이즐 그레이스 랭커스터예요. 어거스터스 워터스는 제 인생의 운명적이고 위대한 사랑이었죠.

저희 사랑은 웅장한 러브 스토리였고 아마 그 얘길 한 마디라도 꺼내면 여긴 온통 눈물바다가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모든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 이건 저희와 함께 사라질 거고 그래야만 하는 거니까요.

전 그가 절 위해 추모사를 읽어 주길 바랐어요.

그 말고는 달리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없어서요.

우리 사랑 이야기는 못하겠어요.

대신에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난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어요.

0.1도 있고 0. 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과 2 사이라든가 0과 백만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을 거예요.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 줬어요.

전 제게 주어진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길 바라요.

하지만 거스, 내 사랑,

우리에게 주어졌던 작은 무한대가 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해.

널 너무 사랑해.

 

 

거스의 장례식에서 헤이즐은 이 추도사를 낭독하지 않았다. 준비해 갔던 추도사 대신 다른 추도사를 읊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평범하고 의미 없는 말들이.

 

 

 

거스는 죽기 전에 반 호우튼에게 부탁해 헤이즐을 위해 미리 써낸 추도사를 손봐달라고 부탁했다. 알코올 중독 멍청이인 반 호우튼이 네덜란드에서 미국까지 와서 거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장례식날 헤이즐에게 이 편지를 건네주면 거스가 그를 용서할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거스는 마지막까지 다정했다. 죽고 없어진 순간에도 헤이즐을 살폈다.

 

 

헤이즐은 여러 사람에게 기억되기보다 단 한 사람에게 기억되길 원했고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독히도 깊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데 읽을 자신이 없다. 결말을 알고 있어도 책을 보면 헤이즐과 거스가 더 속속들이 잘 보여 마음에 멍울이 질 것 같다. 리뷰를 쓰면서도 마음이 이렇게 저릿한데. 

 

 

 

그들이 공유하며 나누었던 okay라는 단어가 좋았다.

특유의 신사 같은 표정으로 헤이즐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헤이즐 그레이스'라며 그녀의 미들네임을 함께 부르는 거스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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