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5. 21:43ㆍTV series
넷플릭스 설국열차 원작보다 풍성해진 스토리 라인
설국열차(snowpiercer) 2020
제작 : 제임스 호스, 매튜 오코너, 봉준호, 박찬욱
원작 : 봉준호의 동명 영화 <설국열차>, 장 마르그 로셰트&자크 로브의 동명 만화 <설국 열차>
출연 : 제니퍼 코넬리, 다비드 디그스, 앨리슨 라이트, 믹키 섬너, 수잔 박, 이도 골드버그, 케이티 맥기니스, 레나 홀, 애널리스 바쏘, 샘 오토
줄거리
얼어붙은 지구, 살아남으려면 끝없이 달려야 한다. 마지막 인류를 싣고 선로를 따라 순환하는 열차. 조금만 미끄러져도 파멸이 다가온다. 그래도 혁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설국열차가 드라마로 탄생된다는 것이 기뻤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나온 작품인데 첫 에피소드가 공개되고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유는 2013년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가 그다지 유쾌한 내용이 아니어서였다. 봉준호 감독은 작년에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서도 그랬듯이 계층 간의 갈등을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독이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맨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 역을 맡은 최우식이 기어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반지하 집 변기에 쪼그려 앉아 카페 와이파이를 훔쳐 쓰는 모습을 보며 "아. 쟤는 평생 저러고 살겠구나." 했던 그 허탈함이랄까. 적어도 와이파이 정도만이라도 설치해서 사용했더라면 정말로 어쩌면 아버지를 찾아올 수도 있을 거라고 작게나마 기대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까지 싹둑 잘라버리며 끝을 내고 말았으니까.
미드 설국열차는 10회 완결로 7화까지 보았다. 한 주에 한 번씩 에피소드가 공개되고 있고 다 보고 나면 후기를 포함한 결말을 올리려고. 너무나 당연하게 7화까지 보고 나서 2013년에 개봉했던 영화 설국열차를 홀린 듯이 다시 한번 보았다. 그 당시는 학생이었는데 7년이 지난 지금 보니 영화의 플롯이 더 사무친다고 해야 하나. 슬프다고 해야 하나.
TNT에서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급하고 있다.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은 것 같은데 난 개인적으로 영화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 영화 설국열차는 꼬리칸에 있던 사람들에게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다면 드라마 설국열차에서는 1001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맨 앞 칸인 조종석부터 1등석 2등석 3등석. 그리고 맨 마지막 꼬리칸까지. 시간적으로 영화보다 자유로운 드라마의 이점이지.
※ 드라마의 설명을 위한 최소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배경
드라마 속 배경은 "빙하기"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냉각제를 살포한 것이 빙하기를 낳았다는 설정으로 영화 설국열차와 동일하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고 7년이 지난 시기이며 영화 설국열차보다 10년이 앞선 배경. 그래서 그런지 영화 설국열차보다 훨씬 온도가 낮은 듯했다. 영화에서는 창문이 뚫려도 사람이 바로 얼어 죽지는 않았으니까.
대표적인 등장인물
멜라니 캐빌 역을 맡은 제니퍼 코넬리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주인공. 여기에서 조금의 스포를 하자면 멜라니가 곧 미스터 윌포드라는 것이다. 단지 윌포드의 충실한 하수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조종석에 앉을 때의 전율이란..
드라마를 보다 보면 MIT 후드티를 입는 모습을 보여주고 1등석 승객과 중국어로도 대화하는 것을 보면 중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에도 능통할 것 같았다. 후에 설국열차의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내가 만든 열차니까, 내가 해결할 거야."라고 말하는 걸 보면 기차의 설계에도 참여한 초 엘리트.
멜라니가 하는 행동을 보면 그렇게 악한 인물처럼 느껴지진 않는다는 거였다. 꼬리칸의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선심은 베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두리가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문제는 정말로 "미스터 윌포드"가 있었을까. 하는 점인데, 열차를 직접 설계한 건지 제작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미스터 윌포드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멜라니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젊은 여성인 것보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인 게 훨씬 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지켜야 하는 게 많아지고, 숨겨야 할 비밀이 많아지면, 본의 아니게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온다. 멜라니는 미스터 윌포드의 존재를 승객들에게 숨기기 위해서 무모한 짓을 계속 벌이는 중이다.
안드레이 레이턴 역할을 맡은 다비드 디그스
꼬리칸의 거주자로 전직 강력계 형사. 꼬리칸의 리더 중 한 명이다. 열차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멜라니는 그가 구세계(빙하기 이전 원래의 세상을 old-world 즉 구세계라고 부른다.)에서 형사였다는 정보를 듣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 안드레는 영리한 사람이어서 살인 사건 수사의 진전을 보여줬고 멜라니가 있는 힘껏 지키고 있는 "비밀"도 쉬이 간파하고 말았다. 문제는 멜라니 역시 안드레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려서 문제지만.
안드레는 유약한 인물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줏대가 없다고 해야 할까. 형사였던 만큼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명석함을 보여주었지만 여자와의 관계에 있어선 초등학생 같다고 느꼈달까. 그래서 그런지 안드레에게 정이 가진 않았다.
정말 꼬리칸 사람들만이 혁명을 원할까?
영화 설국열차에선 꼬리칸 사람들이 맨 앞 칸까지 나아가는 이야기로 오직 꼬리칸 인물들의 '혁명'에만 초점이 맞춰있다면 미드 설국열차에선 꼬리칸 인물들 말고도 다양한 군상을 다룬다고 초반에 언급하였다.
이 드라마는 에피소드가 처음 시작할 때 인물 하나가 독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엔진을 조종하는 사람부터 맨 끝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까지. 내가 흥미로웠던 건 3등석에 있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2등석에 있는 사람들 역시 신분 상승을 꿈꾸고 1등석을 차지하고 싶어 한단 점이었다. 혁명을 원하고 세상을(열차를) 뒤집고 싶어 하는 건 테일리(꼬리칸 탑승자)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어쩌면 미스터 윌포드는 처음부터 꼬리칸에 사람을 태우는 것을 계획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꼬리 칸에 "무임승차"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설국열차에 탑승한 모두에게 무조건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고. 3등석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2등석, 1등석을 바라보기보단 꼬리칸에 탑승한 테일리를 보며 "우린 저것보단 낫지."라고 자위하거나 쉽게 경멸하면서 3등석 위치 자체에 안주할 수 있으니까. 윌포드 참 영리한 사람이었어.
열차에 막대한 투자를 한 (아마도 구세계에서 상위 0.0000001% 정도였을)1등석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다. 감히 그 누구도 1등석인 자신들의 지위를 넘볼 수 없게 한다.
열차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헌법도 나름 있다.) 1등석 사람 하나, 2등석 사람 하나가 재판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3등석 사람도 참여하게 되자 1등석 승객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더 굳건히 하려고 발악을 한다.
물론 1등석 사람이라고 해서 다 특권 의식과 선민의식이 있는 건 아니어서 재판할 때 뽑힌 1등석 사람을 보면 다른 2등석 3등석 위원들에게 꽤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다가기도 하더라. 다 가진 자지만, 1등석의 위치여도 다른 칸에 있는 승객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지독한 방법으로 "감히 어딜 넘봐?"라는 1등석 인물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았지만.
다 같이 평등할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청동기 시대 유물인 고인돌로 무려 기원전 4000년 5000년 전에도 신분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신분제가 폐지된 세상이지만 정말 그럴까. 현대판 신분제도잖아.
1등실에 탑승한 사람들은 아마도 0.0000000001%에 들었을 부자들
2등실에 탑승한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준의 최고의 브레인. 엘리트들
3등실에 탑승한 사람들은 글쎄. 아마 보통의 우리들이 아닐까.
꼬리칸에 탑승한 사람들도 아마 보통의 우리들이 아닐까.
1등실에 탑승한 사람들은 최고급 요리를 먹는다. 최고급 옷을 입는다. 원래의 세상에서 누리던 것(쇼핑, 테일러, 최고급 만찬,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사우나 등등)은 전부 누리며 열차처럼 보이지도 않는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산다. 테일리들은 정체불명의 프로틴 바(영화로 유추하건대 아무래도 벌레로 만들었을)를 먹는다.
얼마나 지독하게 보여주는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에 따라서 얼마나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주는지.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단번에 알 수 있잖아.
로쉬 역할을 맡은 마이크 오맬리. 선임 제동수로 기차 내 경찰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동수를 지휘하고 있다. 이 사람 얘기를 꼭 하고 싶었던 이유는 안드레와의 대화 때문이다.
안드레가 아이가 있냐고 묻자 아이는 셋이 있었고 부인과 자신 그리고 아이 하나만 살아남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식구들 다섯 명의 티켓을 전부 살 수 없어서 결국 아이 둘은 얼어 죽게 내버려 뒀다는 소리로 들렸다. 3등실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무임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부모라면 아이 셋 전부를 살리고 3등실로 가지 않았을까. 왜 아이 둘은 죽이고 2등실로 온 걸까.
혁명이 성공할 수도 있다고 믿는 이유
베스 틸 역할을 맡은 미키 섬너.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으로 극 중 2등실에 거주하며 농업 칸을 맡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성진주"와 연인 관계다. 구세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근무하던 경찰이었지만 살인사건에 대한 경험은 전무한지라 숀 와이즈 사망 사건의 수사를 안드레와 함께 해결하고 있다. 베스 역시 처음에는 꼬리 칸 사람들을 경멸하였지만 안드레와 함께 수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꼬리칸 사람들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는 듯했다.(드라마를 보면 느낄 수 있는데 1등실, 2등실, 3등실 사람들 모두 꼬리칸 사람들은 무임승차한 게으르고 더러운 사람들이라는 언급을 계속한다. 공짜로 태워줬는데도 고마운 줄 모른다는 뉘앙스랄까.)
다행스럽게도 베스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를 아는 자다. 적어도 난 그렇게 봤다. 주관도 있고 이 행동이 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데도 옳지 않다고 믿는 행동엔 밀어붙이는 구석이 있었다. 차후에 그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베스 하나로 이 드라마에서 희망을 봤다.
어쩌면 꼬리칸에서 시작한 혁명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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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설국열차는 어쩔 수 없게도 나 스스로 계속 자문하게 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고. 세상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내가 설국열차의 티켓을 구입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얼어붙는 세상에서 죽음을 택했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저 열차에 탑승했을까.
사람은 밥만 먹고살 수 없다. 불행하게도 그렇다. 꼬리칸 속 사람들을 보며 자꾸 생각하게 했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사람이 밥만 먹고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데,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면서 저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넷플릭스 설국열차 시즌2가 예정 됐다고 한다. 아마 추후 시즌에선 3등실 승객뿐 아니라 더 다양한 승객들의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멜러니가 언제까지 "미스터 윌포드"행세를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노아의 방주인지. 지옥인지. 어쩌면 천국인지 모를 설국열차는 아주 조그만 열차 안에 우리네 인간상을 옮겨놓은 것뿐이지 실제 세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잔혹하게도.
2020/07/31 - [TV series] - 넷플릭스 설국열차 시즌1 결말 후기 스포 l 시즌2 윌포드 숀빈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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