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7. 12:00ㆍTV series
킬링 이브 시즌3 결말 해석 후기_인종차별 이슈
킬링 이브 시즌3 2020
연출 : 데이먼 토머스
원작 : 루크 제닝스의 코드네임 빌라넬(Codename Vilanelle)
극본 : 루크 제닝스, 샐리 우드워드 젠틀, 리 모리스
출연 : 산드라 오, 조디 코머, 피오나 쇼, 킴 보드니아, 오웬 맥도넬
킬링 이브에 대한 스포 없는 대략적인 정보가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길.
2020/07/06 - [TV series] - 킬링 이브 l 매력적인 여성 서사 미드 l 산드라 오 주연
킬링 이브는 시즌3보단 시즌2가. 시즌2보다는 시즌1이 더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킬링 이브 시즌3 시작과 동시에 시즌 4가 컨펌이 됐고 물론 내년에 방영할 킬링 이브 시즌4도 볼 거지만, 이번 시즌은 아쉬움이 많다.
킬링 이브 시즌3에선, 빌라넬은 이전에 보여주었던 잔혹하고 냉소적인 모습보다 인간적이며 유약한 모습을 보여줬고, 총명하고 주관 있던 이브는 갈수록 총기를 잃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면 갈수록 이브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공감할 수 없는 행동을 자꾸 함과 동시에 첫 시즌에서의 매력이 충만했던 모습이 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감정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고 개연성 없이 예상 불가하게 사람을 죽이던 빌라넬은 이번 시즌에서 더 매력적이게 그려졌고 인간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 킬링 이브 시즌3의 스포일러와 주관적인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ve lost everything she had
킬링 이브 시즌2에서 빌라넬이 이브에게 총을 쐈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닌가 했는데 기적적으로 살았던 모양이야. 빌라넬은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는 인물인데 어째서 이브가 살았을까? 아마 은연중에 이브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나.
이브는 빌라넬을 만나고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남편, 화목한 가정, 안락한 집,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던 직업. 이브가 마땅히 누려야 할 모든 것이 사라졌다. 킬링 이브 시즌3 첫 에피소드에서 이브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한인 타운에서 거주한다. 집이라고 보기 어려운 집. 그리고 한국 음식점 주방에서 일을 하며 한인 마트에서 한국 음식을 사다 먹고 있다.
왓챠에서 샤론 최와 진행하였던 인터뷰에서 산드라 오는 킬링 이브에서 이브가 한인타운으로 갔던 이유는 그가 가장 안전적으로 느끼고 포근함을 느끼는 원초적인 공간으로 들어간 거라고 말했다. 작가와 캐릭터에 대해 상의하였을 때 이브가 한인 타운 중에서도 공장이나 다른 일터가 아닌 "식당"에 자리를 잡았던 것도 그 이유라고.. 홀에서 일하면 팁을 받을 수 있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굳이 주방. 맨 끝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근무하는 것도.
난 이브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마음이 아렸다. 주방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착실히 일만 하던 어느 날, 다른 직원 둘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이브는 울분을 터트리듯 팩트 폭행을 해버린다. 어쩌면 그건 이브가 이브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어.
빌라넬은 항상 빌라넬이었고, 킬링 이브 시즌2에서 이브의 태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설득력 있고 똑똑하던 이브는 어디 간 거야. 본질은 보지 못하고 계속 빌라넬에게 집착하는 모습은 캐롤린이나 주변인뿐만 아니라 나까지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캐릭터 매력 없게 만들어도 되는 거니. 물론 시즌이 진행될수록 극의 재미를 위해서 캐릭터 성향에 변주를 주는 건 필요하지만, 이브를 이렇게 짜증 나게 만들어도 되는 거니. 캐릭터의 매력도를 제외하고서도 킬링 이브의 '이브'가 주연이 아닌 조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확실한 건 이쯤 되면 이브도 빌라넬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이브와 빌라넬의 투샷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서로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게 한 걸까. 결국 둘은 같은 것을 좇고 있는데..
Villanelle. Do you mind? Really?
이전에 영화 손님 리뷰를 하며 킬링 이브의 빌라넬은 예측 불가하게 이유 없이 전개 없이 사람을 그냥 죽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빌라넬은 사람을 그냥 죽인다. 킬링 이브에서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되게 매력 있는 캐릭터가 될 것 같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삼국지에서 "와. 이 캐릭터 되게 멋있는데?"라고 느꼈는데 일찍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전연 그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주로 빌라넬의 주변 인물들이 그렇다. 킬링 이브 시즌1에선 너무나도 스윗하고 다정했던 빌라넬의 썸남이 그랬고, 이번 시즌에선 그녀가 교육하기로 되어 있던 어린 제자(?)가 그랬다. 잠깐의 장면이지만 어떤 매혹적인 캐릭터가 될지 궁금했는데 정말 뜬금없이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그냥 죽어버렸다. 나름 사연도 있었단 말이야. 그렇게 금방 죽일 거면 도대체 그런 캐릭터에 서사는 왜 주는 거야? 보는 사람 마음 아프게.
그래서 이번 시즌이 의외였다. 빌라넬은 콘스탄틴에게 가족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콘스탄틴이 가족을 지키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걸 보고 그도 가족이 가지고 싶었던 걸까. 가족 따위 없어도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약속대로 콘스탄틴은 빌라넬 가족의 주소를 일러줬다. 러시아로 가서 만난 빌라넬의 가족의 상봉 장면은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보는 나까지 모래를 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그리고 빌라넬이 지금의 빌라넬이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유년기의 그의 엄마 때문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빌라넬은 빌라넬답게 꼭 살려야만 했던 인물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여버렸다. 빌라넬의 동생은 에릭 클랩튼을 좋아한다고 했다. 에릭 클랩튼은 우리 부모 세대가 좋아할 만한 시대의 가수인데, 꼬꼬마가 에릭 클랩튼을 좋아한다는 것도 재밌었다. 콘서트 비용을 넉넉히 건네주었던 빌라넬. 이런 거 보면 좀 다정한 것 같기도 하고.
사이코패스인 빌라넬이 가족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설정 자체가 조금은 의아했다. 너네는 감정이 없는 동물인데 왜 서운함은 느낀다는 거야. 알다가도 모르겠어. 서남부 연쇄 살인범이던 정남규는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기가 죽는 건 무서웠는지 감옥에서 자살하였고, 유영철은 본인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다름 아닌 시신을 토막 낼 때 걸려오던 아들의 전화라고 했다.
빌라넬은 죄책감도 미안함도 괴로움도 없으면서 가족들이 매정하게 나오는 건 왜 무시하기 어려웠던 걸까. 포스팅 서두에 이번 킬링 이브 시즌3에서 빌라넬은 유약한 모습을 보여줬고 점점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변모했다고 말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툭하면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빌라넬이 보통의 우리들처럼 유약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다.
킬링 이브 시즌4에서 이브보다 빌라넬의 모습이 더 기대가 되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 같아.
Very unusual way
난 캐롤린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아들인 케니의 사망 이후 그가 보였던 태도가 무척 안정적이고 침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통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서 보일 법한 스테레오 타입을 캐롤린에게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니는 자살할 리가 없고 외부적인 요인이 가득한 죽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캐롤린 역시 그것에 대해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도 멀쩡해서 아들을 잃고도 전연 슬프지 않은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캐롤린은 사실 지극히 독특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고 삭히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는 프로니 울고 소리 지르고 일상을 놓아버리는 것보다, 그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치밀하고 집요하게 케니의 죽음에 대해서 캐고 있었다. 캐롤린은 엄마니까. 엄마잖아. 자식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지 않을 리 없잖아.
캐롤린은 60대임에도 20대인 빌라넬보다 40대인 이브보다 가장 즐거운 성생활을 누리는 듯싶다. 아마 젊었을 때도 그러셨던 것 같고. 캐롤린은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어서 그것이 주는 인물의 무게도 상당한 듯싶다. 뭔가 그의 말이라면 수긍하게 된달까.
더 투웰브의 두더지는 MI6 조직 안에 있었다. 캐롤린이 그를 잡아 총을 빵 쏠 때의 쾌감이란. 킬링 이브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각기 다른 나이의 매력적인 여성들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킬링 이브 인종차별 이슈
킬링 이브에서 인종 차별 이슈가 계속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나오는 말인가 해서 서칭을 해보았는데 외신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됐더라고. 이름표에 대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오피셜 사진에 이브를 제외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킬링 이브의 '이브'인 산드라 오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주연이 아닌 조연의 비중을 안고 있는 것까지. 물론 작가가 교체되고 그들이 전부 백인이라는 것이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지루해할 시청자들을 위해 캐릭터에 변주를 주는 건 필요한 일이니까.
난 한국인 봉준호 감독이 수상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는 산드라 오를 보며 마음속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샤론 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계 동양인인 자신의 스탠스가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 스스로에게 한계를 두게끔 세뇌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골든 글로브에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수상을 할 때도, 동양인 남성인 그에게서 어떤 구김살이나 브레인워시 당한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 놀랐다고 하였다. 산드라 오는 샤론 최에게 "우리는 인종 차별이 뭔지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산드라 오의 인터뷰에서 그가 킬링 이브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작가와 소통하고 꾸려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일 이브가 뉴몰든의 한국 식당에서 만두를 빚는 게 아닌,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설정이었다면 이브가 그가 누리던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nobody가 되고 싶던 그를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서다. 그만큼 작중 캐릭터에 애정이 깊고 이해도가 깊은 인물이다. 작품이 잘 되길 바라는 것도 스테프와 작가 모두가 바라는 것일 텐데 다시는 군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오해인지 진짜인지는 그들만 알겠지만.
킬링 이브 시즌4는 어떻게 진행될까
공동의 목표가 어느 정도는 정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브, 빌라넬, 캐롤린의 목표. 그들의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려 했던 조직. 그러니 저 세 여성이 똘똘 뭉쳐 더 투웰브라는 악의 축을 끊어내지 않을까. 아마 킬링 이브는 시즌4로 막을 내리지 않을까 싶은데. 이브가 남편에게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이브의 마음 역시 빌라넬을 향한 것 같으니 차라리 그냥 둘이 잘 살았으면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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