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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서평_심영섭 에세이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서평_심영섭 에세이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서평_심영섭 에세이

2020. 6. 19. 18:00Book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지음

 

 

 

※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에서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 관하여. 내 안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관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영혼의 회복에 관하여. 주제별 딱 맞는 영화를 골라 우리 심연의 내면을 마주하게 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글들. 심리학자이면서도 영화평론가인 그가 두 가지 주제를 배합하여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을지.

 

 

프롤로그에 있던 문구를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이 책은 아무도 잘 알려주지 않는, 혹은 너무나 피상적인 자기 계발의 슬로건에 갇힌 '감정의 진도'를 천천히 되짚어보는 여정에 놓여 있다.

더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들.

누구도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이별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지 않는다. 이런 감정을 느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건지. 그래서 난 지금도 내 감정에 서툴다. 부끄럽지만 그에게 아주 조금의 위로는 받은 듯하다. 비슷한 상황에 맞닥드릴때마다 그가 소개한 영화를 보며 그의 문장을 다시 한번 반추하며 그래도 살아볼 용기가 아주 조금은 생겼달까.

 

 

심영섭 작가가 인용한 영화 중에서 보지 않은 영화도 많았다. 몇몇 개는 꼭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따로 기록해두었다. 여러 문호들의 시와 문장을 인용한 것도 내 맘을 파고드는 것은 따로 필사를 해 두었다. 심영섭 작가의 책을 처음 접했는데 언어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은 작가란 생각을 했다. 어휘 수준이 고매하다. 명징이라는 말을 실제 사용하는 분을 이동진 평론가 이후로 처음 봤지 뭐야. 요즘 이동진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데 아마 글 속에서만 사용하는 문어체가 아니라 분명 명징이나 직조란 단어를 평소 대화할 때도 사용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유려한 한국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을 읽고 있는데 인터뷰할 때 구사하는 어휘 중에서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러 있었다. 굳이 젠체하려고 어려운 단어를 쓴 게 아니라 평소에 본인이 사용하는 단어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영섭 작가도 명징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참고로 명징의 뜻은 분명한 증거이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는 에세이라는 부제답게 꾸밈없는 글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문제(남편, 그리고 지나온 사랑, 열등감)에 대한 글들도 있어서 놀랐다. 어떤 문구에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서 새벽에 혼자 울기도 했다. 난 이래서 심리학이 참 무섭단 생각을 한다. 대학생 때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그때도 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과 콤플렉스들을 심리학 공부 하다가 부끄러운 나를 마주할 때. 숨을 곳도 없이 모두에게 들켜버린 기분이 들 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기분을 다시금 느꼈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무조건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겁하고 못난 나를 기어이 만나게 해서 그랬다. 

 

 

난 가끔 사람이 사는 게 너무나도 빤하단 생각을 한다. 내가 감내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겪는 고통이. 내가 줄기차게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들이. 사실 하나도 특별할 게 없어서 그렇다. 우리가 겪는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규정된 어느 카테고리에 속한 것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현현하고 불온한 내 고민도 결국 어느 범주안에 들어가는 뻔하디 뻔한 범속할 문제일 뿐이라는 거. 나도. 너도. 우리 전부 다.

 

 

그가 이야기한 세 가지 주제 중에서 난 내 안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무리 불특정한 다수를 상대로 쓴 글이라 할지라도 내 지난하고 구질구질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온당 나와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이들만이 공유하고 간직해야 할 지극히 우리만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사랑보단 열패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난 남보다 잘하는 게 없고, 남보다 특출 난 게 없는 사람이다. 겨우 남들만큼 하거나 남들보다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누굴 부러워하거나 동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는 걸 싫어하고 자존심이 쎄 누구를 쉬이 부러워하거나 동경하지 않는다. 자존심은 있지만 자존감은 깊이 침잠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사실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싫다. 그 단어 자체가 너무 멋이 없고, 입에 올리고 손으로 적기에도 치욕스럽단 기분이 들어서다. 하지만 적어도 지구인의 95%가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니 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만큼 스스로를 갉아먹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얼마 전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란 소설을 읽었다. 단편 소설집인데, 개인적으로 김애란 작가 정말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 아프다.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책 한 장 한 장을 산뜻하게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해 결국 반 정도만 읽고 나머지 소설은 읽지 못하였다. 내가 보여서 그랬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소설 속 등장인물이 비슷하게 겪어서 그렇다. 그럼 난 꼭 들켜버린 기분이 든다.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못났다' '나는 쓰레기다'라는 확신이 아니라, '당신이 인간이라는 멋진 증거'일 따름일 뿐이다.

'두려움'이란 어머니와 '분노'란 아버지, 그리고 잘 나가는 형제인 '비교' 그 사이에 끼어버린 '열등감' 그렇게 지지리 못나고 주눅 든 천덕꾸러기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열등감은 그 사람의 현실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못난 나가 쓰고 있는 안경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누굴 부러워하거나 동경하지 않아도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열패감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라면, 열등감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그에게 속아보고 싶어 졌다. 열등감은 내가 못났다. 나는 별로다. 가 아니라 내가 인간이라는 멋진 증거라고.

 

 

두려움이나 비교에 관한 것보다 "분노"를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시선에 놀랐다. 자신감도 열등감도 결국 같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분노도 그럴지 모르겠다. 심영섭 작가는 분노는 질 좋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분노해야 싸우고, 싸워야 이기니까. 적절한 시기에 겪는 분노는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뗄감이 될 수도 있을 거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두려움을. 비교를. 어떻게 승화시켜 나에게 이롭게 하게 할 것인지가 관건일 것 같아. 잘난 사람에게도 열등감은 있을 수 있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어도 열등감 따위 보기 좋게 비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영화 속 갈등을 겪는 등장인물을 보며 용기를 얻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주인공을 보며 함께 성장하고 위로받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린다. 마지막으로 그가 인용한 대문호 헤밍웨이의 문구를 소개해드리며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내 이름 석자가 아닌  에이프릴로서 올리는 글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주 고민하며 무척이나 부끄럽단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인용하고 싶다. 진솔한 내 이야기를 했기에.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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