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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서평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서평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서평

2020. 6. 21. 14:00Book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지음

 

 

 

※ 개인적인 서평입니다.

 

 

 

내 주전공은 경영학이고 심리학을 복수 전공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범죄 심리학에 관한 내용만큼은 비교적 또렷이 기억한다. 별의별 심리학 과목을 수강하였고 의예과 학생도 아닌데 뇌의 해부학까지 배웠으나 범죄 심리학을 수강하며 배웠던 것들은 어느 정도는 기억을 하고 있다. 유영철과 서남부 연쇄 살인범이던 정남규를 비교 선상에 두고 공부하였던 것. 늦은 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살인범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링을 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것. 

 

 

이수정 박사의 도서가 전공 도서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한다. TV 없이 사는 나는 TV 볼 일이 없는데 유일하게 보는 거라면 에피소드를 보고 간헐적으로 보는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그래서 화면 속에서만 본 분이지만 왜 때문인지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네이버의 오디오 클립에서 동명의 타이틀로 진행하였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수정 박사는 처음에 섭외 연락을 받으시고는 "범죄 영화 장르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그러나 범죄 영화에 숱하게 등장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로 소비되다 마는 여성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의향이 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참 그답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좋아해서 유튜브 채널 "그알"도 구독하고 보는 시청자인데, 이슈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네이밍 때문이다. 여태껏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했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공포스러웠고 가장 끔찍했던 미제 사건들을 모아 짧게 압축한 영상이었는데 그 카테고리를 "그알 레전드"라고 했던 것이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나 역시 그 제목을 보고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그알 레전드라고 뽑힌 사건들은 무척이나 참혹하고 잔인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무력감과 참담함,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피해자는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방식으로 억울하게 살해당했고 여태껏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들. 이런 사건을 두고 "레전드"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다 느꼈다. 제작진들도 시청자의 의견에 통감하였는지 그알 레전드란 타이틀을 수정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흥미성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본다. 픽션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그 사건엔 피해자가 있고 유가족이 있으니까. 해서 난 이수정 박사가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 참여한 명확한 의도가 좋았다. 은유 작가가 "내 아이를 지키려면 내 아이만 지킬 수 없다" 하였듯이, 이수정 작가도 자식이 있는 어머니로서, 내 아이를 지키려면 모든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 같았고 그랬기에 바쁘신 일정을 쪼개 범죄 영화 프로파일 오디오 클립에 참여하신 것 같았다.

 

 

수많은 범죄 영화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부수적으로 소비된다. 대부분 피해자 역할을 도맡고 비참하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예쁜 몸매를 지나칠 정도로 부각하여 그려진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금발 미녀'는 대부분 백치미를 지닌 여인들이다. 나 같은 경우에 히치콕 영화라 하면 바로 금발에 푸른 눈에 섹시한 미녀가 그려질 정도니까. 영화판에서 그런 스테레오타입을 만들 정도로 범죄 영화에서 여성의 위치는 고루하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선 각각 카테고리를 나누어 16개의 영화를 다루었다. 난 이 영화들 중에서 내가 재밌게 보았고, 또 감명 깊었던 것들을 추려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본의 아니게 글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작년 화성시 연쇄살인범이던 이춘재가 잡혔다. 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실지 잡힐 것이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작년 기생충이 개봉하였을 때, 남자 친구가 기생충을 엄청 인상 깊게 보아서 봉준호의 다른 영화인 살인의 추억을 보라고 권했다. 남자친구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도 전연 몰랐고 살인의 추억이란 영환 더더욱 몰랐다. 영화를 다 보고 남자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은 화가 나고, 분하다는 거였다. 저런 사건이 있었다는 거. 막지 못했다는 거. 한심할 정도로 어리석은 수사를 했다는 거. 그리고 얼마 후 이춘재가 잡혔다는 소식을 그가 카톡을 보내줘서 알았다. 범인이 잡혔다고.

 

 

그알에서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선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다.(난 전부 보았다.) 그래서 그의 몽타주도 익숙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인터뷰한 것도 기억한다.(손이 고왔다든가 얼굴이 곱상했다든가) 외국의 프로파일러를 섭외해 프로파일링을 했던 것도 기억한다. 실제 범인이 잡히고 보니 몽타주와 닮았고, 프로파일링 했던 것과 유사한 점이 많아 다시 한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수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수사 관행상 자백이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고 한다. 가짜 범인 만들기. 그리고 이춘재가 잡히자 8차 사건 또한 자신이 벌인 짓이라고 실토했다. 모방 범죄라고 여겨 20년 동안 수감되었던 8차 사건 용의자 윤 씨. 난 이춘재가 잡혔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8차 사건 피해자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것도 그만큼 충격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 당시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몰린 3명의 남성이 자살하였고 1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어쩌면 그 당시 경찰은 윤 씨가 범인이 아닌 것을 알고도  몰아붙였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지금에라도 응당 죗값을 치러야 한다 생각한다.

 

 

문제는 윤 씨의 재심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 그 당시 판결문을 보면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고 했다. 경찰 입장에서도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경찰의 정당성을 찾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들로 하여금 수사 기관뿐 아니라 사법 제도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일 테니까. 

 

 

 

조영직 감독의 꿈의 제인. 개봉 당시 보았는데 굉장히 아팠던 영화로 기억한다. 여담으로 이때 제인 역할을 맡았던 구교환 씨를 보고 눈이 확 트이는 느낌이었달까. 그가 잘 돼서 좋다.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제인의 대사다. "이런 ㄱㅈ같은 세상 혼자 살아 뭐하니? 같이 살아야지."

꿈의 제인은 청소년 가출팸의 이야기다. 그래서 공포스러웠다. 같은 독립 영화인 "박화영"도 그렇고 "꿈의 제인"도 그렇고 난 귀신이 나오는 영화보다 이런 지극히도 범속한 이야기에 공포스러움을 느낀다.

 

 

주인공인 소현은 가출팸 내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뭐든지 엔 분의 일로 나눠야 하는 가출팸 친구들에게 초콜릿 조차 나눠먹지 않고 문 앞에서 혼자 먹어치워 버리는 아이다. 내심 다른 아이들이 "넌 여기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란 식으로 면박을 줘도 딱히 갈 곳이 없으니 묵묵히 버티는 아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은폐하고도 당장 살아야 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또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아이다. 소현은 소외된 아이며 10대 소녀로서 겪어선 안 될 온갖 폭력과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예전에 배운 이론으로, 여자 아이들은 가출한 첫날 거의 대부분이 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당장 자야 하니까. 있을 곳이 필요하니까.

 

 

꿈의 제인은 분명 단순히 자극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어떤 것이 꿈인지 어떤 것이 현실인지 모호하였고, 극의 채도로써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으며,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있었고 문제의식이 있었다. 보기 불편하지만, 영화든 도서로든 이런 내용을 다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고, 또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알아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영화가 아닌 넷플릭스 제작 드라마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에서도 드라마로는 유일하게 다룬 작품이다.

 

 

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작년에 보았다. 보기 괴로웠고 그래서 겨우 보았다. 이다혜 기자도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지적하던데 이 드라마가 얼마나 고구마냐면 처음에 사건이 발생하고 19살짜리 마리가 성폭행을 당하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하긴 하였으나, 그녀는 수사관이 올 때마다 사건에 대해서 몇 번이고 진술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질문을 하고, 자기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전의 진술과 약간 다른 진술을 하게 되자, 그녀를 데리고 있던 위탁모도 그녀의 수사를 맡았던 수사관들도 그녀가 자작극을 벌인다고 의심하게 된다. 나중엔 시청자인 나 역시도 '이게 마리의 꿈이었나.' 하고 의심하게 될 정도로.

 

 

19살짜리 아가가 강도에게 성폭행당했는데 유명해지고 싶어서 장난으로 자작극을 벌였다고 생각하고, 아이한테 거짓말이라고 자백하지 않으면 감옥에 넣을 거라고 겁박하던 수사관들. 마리는 결국 겁에 질려 모든 것이 자작극이라고 해버렸다. 나중에 마리는 스스로 겪은 일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겪은 게 실제가 아니었나 꿈이었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워했다. 마리는 거짓말로 강간당했다고 떠벌렸다는 소문 때문에 마을에서도 경멸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직장도 잃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겁박하고 조종하는 것이 이렇게도 쉽구나 하고 알았달까. 추후에 비슷한 사건이 다른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다행스럽게도 캐런과 타 지역의 베테랑 형사인 그레이스와 공조 수사하면서 결국 범인을 잡았다. 그리고 그가 마리를 강간한 자임이 밝혀진다. 

 

 

위탁모와 수사관들이 마리의 말을 믿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의 진술이 계속 바뀌어서 그랬다. 속 사정은 알려하지 않고 왜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지를 따져 물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을 소개해드리겠다.

 

이수정 : 심리학적으로 '기억'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은 '서술적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공부를 하고 다음 날 'ㅇㅇ에 대해 논하라.'라는 문제가 나오면 어제 봤던 책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을 기억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기억의 단편일 뿐입니다.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기억이 바로 '삽화적 기억'입니다. 일종의 에피소드처럼 기억되는 것으로, 실제 사건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삽화적 기억입니다. 기억이란 이처럼 마치 번개가 번쩍 치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남아 있지, 한 편의 영화처럼 A부터 Z까지 차례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가 피해 장면을 떠올릴 때 처음에는 자신의 머리가 눌렸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시 떠올려 보니 '아, 그때 내 머리가 눌렸었지.'하고 감각적인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또는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것이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일종의 추론 혹은 정서적인 느낌까지도 피해 진술의 근거가 되는 삽화적 기억의 특성입니다. 우리의 기억이 이렇게 부정확하니 사법 기관에서 주장하는 일관성이 유지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343p)

 

 

나 역시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를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럴 거야.'라고 생각하는 관념들이 사실 피해자를 더 괴롭게 만드는 것임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책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려 한다.

 

이수정 : 실제 피해자들이 우리의 상식에 맞춰서 피해자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더구나 피해를 딱 한 번만 당한다는 법이 없고 과거에도 그런 피해를 당했다면, 당사자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성폭행 피해를 당하면 너무나 충격을 받아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할 것이라고 막연하게들 생각하지만 아닌 것이지요.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는 사이고 가족이거나 위계 관계에 있는 사람일 경우 피해자의 반응이 '전형성'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345p)

피해를 당한 것만큼 당장 살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기에, 사건을 당했다고 불안해하고 패닉 상태인 것이 아니라 평소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밥 먹기, 카톡 하기, 출근 하기) 너무 태연하다는 것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범죄가 일어난 것이 아니지 않냐고 몰아붙이는 것이 사실이지 않나. 

 

 

사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선 마리가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 위탁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아이의 진술을 믿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됐을 거라고 본다. 문제가 많은 아이. 그러니 이런 일을 충분히 거짓말로 꾸며낼 수 있는 아이. 마리가 이곳저곳 전전한 아이가 아니라 보통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아이였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을 것 같진 않아서 그렇다. 그녀의 보호자가 있었다면 적어도 마리가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이라고 거짓 진술을 할 일은 없었을 것 같아서.

 

 

 

 

범죄 영화에 대해서 단순히 흥미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현실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모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는 것이 좋았다. 보통 병렬 독서를 하는데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만큼은 몰입도가 너무 커서 단숨에 읽어버렸으니까. 책에서 소개된 영화 중에서 '가스등'에 대한 리뷰를 다음에 올려볼까 한다. 그 유명한 가스 라이팅의 용어가 그 영화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책을 통해 알았다. 오래된 고전 영화여서 지금과는 다른 시대적 분위기도 궁금하고, 어떻게 그루밍을 통해 사람을 바보 만드는지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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