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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l 스즈쿠와 세이지가 이토록 아련한 이유 귀를 기울이면 l 스즈쿠와 세이지가 이토록 아련한 이유

귀를 기울이면 l 스즈쿠와 세이지가 이토록 아련한 이유

2020. 8. 18. 20:03Film

귀를 기울이면 l 스즈쿠와 세이지가 이토록 아련한 이유

귀를 기울이면 (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1995
감독 : 콘도 요시후미
각본 :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 : 히이라기 아오이의 동명 만화
프로듀서 : 스즈키 토시오
음악 : 노미 유지
출연 : 혼나 요코, 타카하시 잇세이, 무로이 시게루, 디치바나 디카시

 

귀를 기울이면 줄거리

중학교 3학년 졸업반인 시즈쿠. 독서를 좋아하여 아버지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 자주 책을 빌려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의 대출카드마다 '세이지'란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많은 책을 읽는 걸까? 하고 그에 대한 의문을 품은 시즈쿠는 근사한 골동품 가게에 들렀다가 세이지를 만나게 됐다. 벌써부터 자신의 진로를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세이지는 곧 이탈리아로 10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결심했다. 서로에게 깊게 빠져버린 시즈쿠와 세이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를 보고, 비슷한 감성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었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 역시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사실적인 그래픽보다 이런 아날로그식의 그림체를 좋아한다. 디즈니나 픽사에서 나오는 애니도 좋지만, 이렇게 몽글하고 아련한 그림체를 더 좋아한단 소리다. 어쩔 수 없어. 내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래.

 

 

 

1995년에 나온 애니답게 곳곳에서 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 드러난다. 투박하고 검은 이어폰, 헤드셋, 벽돌보다 무거울 것 같은 노트북. 냉장고와 전기밥솥. 이제 도서관에서 더 이상 도서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바코드를 사용하게 돼서 아쉬워하는 스즈쿠와 아버지.

 

 

나는 90년대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대다. 그래서 처음 오프닝 시퀀스부터 마음이 벅차오르지 뭐야. 단순한 소품일 뿐인데도 그 시절 그 감성에 취해버렸다. 10대 아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할 '진로'에 대한 문제. 그리고 너희들의 수줍고 풋풋한 사랑에서도.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글입니다.

 

 

 

도서카드 속 '아마구와 세이지'


스즈쿠와 세이지는 서로가 인지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즈쿠는 자신이 빌려 보는 도서마다 "아마사와 세이지"란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상상을 키워간다. 

 

 

세이지는 훗날 고백하기를 스즈쿠를 좋아해 왔다고 했다. 스즈쿠의 눈에 띄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스즈쿠 옆에 앉은 적도 있었다고. 

 

 

도서카드 속 적혀 있는 이름인 아마사와 세이지를 보고 "이 사람은 누굴까"하고 상상하며 설레 하는 것도 너무 귀엽지 뭐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거.


세이지는 중학생이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밑그림은 그려놓은 친구다.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기도 하고, 그런 바이올린 장인이 되기 위해 중학교 학업만 마치면 이탈리아로 10년 동안의 유학을 가려한다.

 

 

 

확실한 꿈이 있는 세이지와는 다르게 시즈쿠는 아직 구체적인 꿈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소녀답게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지만 흐릿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세이지를 보고 스즈쿠는 자신도 꿈을 얼른 찾고 멋있는 소녀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과 골동품 가게 지구옥에 있는 고양이 인형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스즈쿠. 소설의 이름은 "귀를 기울이며"로 애니메이션의 이름과 같다. 소설을 집필하기 전 고양이 민속 문화나 동유럽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보며 충분히 자료조사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누군갈 사랑하면 좋은 사람 되고 싶잖아. 더 근사한 사람 되고 싶고. 그 사람이랑 어울리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우리 모두에겐 니시 시로 같은 어른이 필요해


세이지의 할아버지로 세이지의 바이올린 선생님이기도 한 근사한 골동품 가게 "지구옥"을 운영하시는 니시 시로 할아버지. 나 스즈쿠가 니시 시로 같은 분을 알게 돼서 퍽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그만할 때 니시 시로 같은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스즈쿠가 할아버지의 인형인 '바론'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자 니시 시로 할아버지는 스즈쿠가 쓰는 소설의 첫 번째 독자가 되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거셨다. 완벽하게 쓸 자신이 없다고 주저하는 스즈쿠에게 운목편암이라는 돌을 보여주셨다. 니시시로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너무 와 닿아서 그 대사를 소개해드리려 한다.

 

할아버지 : 그건 운목편암이라는 돌이란다. 갈라진 틈을 들여다보렴.

스즈쿠 : 예뻐요.

할아버지 : 녹조암이란 돌인데 에메랄드 원석이 들어있는 돌이란다.

스즈쿠 : 에메랄드라면 보석이요?

할아버지 : 그래. 시즈쿠와 세이지는 그 원석과도 같은 존재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 이 할아비는 지금 그대로도 좋단다. 허나 바이올린을 만들거나 소설을 쓴다는 건 얘기가 다르지. 자신 속의 원석을 발견해서 시간을 들여 연마하는 일이니까. 쉽지 않은 작업일 게야. 자세히 보면 그 가운데 제일 큰 원석이 보일 게야. 사실 그건 손을 대면 오히려 쓸모없는 존재가 돼버리고 마는 돌이란다. 더 안쪽에 있는 작은 것들의 순도가 훨씬 높지. 아니 겉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훨씬 더 좋은 원석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이런. 나 좀 봐라. 나이를 먹으니까 잔소리만 늘어 주책이지?

스즈쿠 : 저에게도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결정이 있는 건지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쓰고 싶어요. 완성하면 꼭 할아버지께 맨 처음으로 보여드릴게요.

할아버지 : 고맙군.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으마.

 

 

 

스즈쿠 :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쓰고 싶은 것들이 뒤죽박죽이에요. 뒷부분은 엉망이고요. 저도 알고 있는걸요.

할아버지 : 그래 거칠고 솔직하고 미완성이더구나. 세이지의 바이올린 같았어. 시즈쿠가 네 안에서 끌어올린 원석을 이 할아비는 똑똑이 봤단다. 아주 잘 썼더구나. 멋진 소녀 작가야. 허둥댈 거 없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연마하거라.

스즈쿠 : 저는 쓰고 나서 깨달았어요. 쓰고 싶은 마음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요. 좀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요. 하지만 세이치가 자꾸만 앞서가니까 무리해서 더 쓰려고.. 전 무섭고.. 무서웠어요.

 

 

이전에 작성하였던 스티븐 킹의 작법서 "유혹하는 글쓰기"의 서평에서 그가 유년기 때 그의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으니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던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를 인용했었다. 인정 없는 선생님 덕에 그는 40살이 될 때까지도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의심했다.

 

 

니시 히로 할아버지는 스즈쿠와 세이지에게서 가능성을 보셨다. 그리고 그 원석을 아이들이 잘 연마하여 보석이 될 수 있게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셨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끝까지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기 마련이다. 

 

 

당신도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원석이 숨어 있는 거. 알지?

 

 

 

우리 지금 당장 그러자는 건 아니지만 나하고 결혼해주겠니?


이탈리아로 10년이나 유학할 거면서 스즈쿠에게 멋진 바이올린 제작자가 돼서 돌아올 테니 그때 결혼해주면 안 되겠냐고 하는 세이지.

 

 

사랑하는 사람과 10년이나 떨어져 있을 용기. 그리고 10년 후의 결혼을 미리 고백하는 패기. 스즈쿠와 세이지 둘 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거란 자신감에서 나온 고백과 수락이겠지?

 

 

영화 귀를 기울이면은 95년 개봉했으니 스즈쿠 세이지 전부 지금쯤은 중년이겠구나. 10년이 지나 멋진 바이올린 제작자가 된 세이지는 일본으로 돌아와 근사한 작가가 된 스즈쿠와 결혼해서 애기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기를 바라며.

 

 

아. 실사판 영화가 올해 9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역병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한다. 귀를 기울이면 재밌게 보신 분들은 실사화 기대하셔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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