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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녀들이 원하는 것 l 일본 특유의 B급 감성 영화 일본소녀들이 원하는 것 l 일본 특유의 B급 감성 영화

일본소녀들이 원하는 것 l 일본 특유의 B급 감성 영화

2020. 8. 16. 22:56Film

일본 소녀들이 원하는 것 l 일본 특유의 B급 감성 영화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보았더니 평소에 보지 않을 스타일의 작품을 볼 용기를 준다. 스스로 유치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신정원 감독의 죽지 않는 시체들의 밤을 재밌게 본 이후로 내가 B급 감성의 컬트 영화를 재밌어한다는 걸 알았다.

 

'일본 소녀들이 원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B급 감성이 잔뜩 들어간 컬트 영화다. 호불호를 굉장히 탈 것이다. 요즘엔 선호하던 것 말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재미가 좋다.

 

이 작품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각 에피소드당 10분에서 15분 정도의 짧은 에피소드 7개로 구성되어 있다. 각 나잇대의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그다지 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는데 맨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도쿄>라는 에피소드로 1984년생 료코 나카타미의 이야기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려던 료코는 미처 고백을 마치기도 전에 상대에게 거절당해 버렸다.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순간적으로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허나 자살하려는데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자신이 죽은 후를 상상해 봤는데 너무나 비참하지 않은가. 적어도 품위 있는 죽음을 맞고 싶었던 그는 고결한 자살을 위해 하나둘씩 바꾸어 나간다.

 

자신이 자살한 걸 보고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자기를 조롱할 것을 예상한 료코는 우선 방부터 치우기 시작한다. 인스턴트 잔해와 맥주캔을 정리했더니 이번엔 커튼이 문제다. 칙칙한 커튼을 새것으로 달아 산뜻하게 바꿨다. 핑크색 청소기는 맘에 들지 않지만 어차피 죽을 거 무슨 상관? 우선 구입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자살하려는데 이번엔 여태까지 써왔던 시가 문제다. 누군가가 내 시를 보고 재밌어할 생각을 하니 분한 기분이 든다. 불에 태운 것도 모자라 재를 땅에 묻기까지 했다.

 

칼을 꺼내 손목에 그으려 하자 이번엔 칼에 녹이 슬었다. 하도 사용하지 않아서 일거다. 그는 맥주와 인스턴트 컵라면을 즐겨먹는 여성이었으니까! 조그만 닿아도 파상풍이 걸릴 것 같은 그 칼로 자살한다면 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 그는 좋은 칼을 구입했다.

 

그러나 이번엔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문제다. 고작 맥주캔뿐이다. 자기가 죽은 후 냉장고를 열어본다면 자신이 평소에 음식을 전혀 해 먹지 않는다는 걸 알 것이다. 급하게 뛰어나가 유기농 채소를 구입해 새로 산 칼로 잘라 스튜를 끓여먹는다. 처음으로 만든 요리지만 꽤 맛있다.

 

이제 막 자살하려는데 거울 속에 미친 료코의 모습이 가관이다.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단 생각에 밖으로 나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예쁜 옷과 구두를 구입했다. 높은 구두가 어색했는지 엎어지는 바람에 쓰고 있던 안경이 벗겨졌다. 예쁜 메이크업과 산뜻한 옷을 입은 료코의 모습은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눈이 부시다.

 

하루 종일 자살할 준비를 하려고 진을 다 빼서 집에 돌아오니 이미 늦은 시각이다. 너무 졸린 나머지 15분만 자고 자살하자 싶었는데 일어나 보니 아침이다. 료코는 급하게 가방을 챙겨 출근한다.

 

맨 마지막 옴니버스인 '도쿄'는 료코가 품위 있는 자살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한낮의 과정을 그린다.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자신을 가꾸고 스스로를 위해 좋은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해 먹는 료코를 보며 자살하려는 마음을 고쳐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거든.

 

이 영화의 리뷰를 쓰는 이유는 나 역시 료코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다. 삶이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이렇게 더 살아서 무엇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날이 있었다. 당장 오늘 죽는다 해도 먼지 한 톨만큼의 미련이 남지 않는 그런 날. '죽어버리자'라고 생각한 순간 나도 료코처럼 내가 죽고 난 후를 상상해봤다.

 

료코처럼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았고 난 내가 죽은 후 만약에 신문에 난다면 헤드라인에 어떻게 날까를 생각해봤다.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자살한다 해도 기사가 나지 않을 테지만 내가 생각했던 나의 죽음 후는 꽤나 비참했다. 핵심만 나열한 헤드라인 속 나를 묘사한 명징한 몇 개의 단어의 조합은 몹시 가여운 것이었다.

 

그때 료쿄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죽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죽더라도 훨씬 그럴듯해진 후에 죽든가 하자."라고.

 

이런 코믹스러운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리뷰일 수도 있지만 옴니버스 '도쿄'를 보고 내가 사유한 건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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