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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결말 스포 후기 원작 l 이유 없는 호의는 세상에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결말 스포 후기 원작 l 이유 없는 호의는 세상에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결말 스포 후기 원작 l 이유 없는 호의는 세상에 없어

2020. 9. 22. 16:48Film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결말 스포 후기 l 이유 없는 호의는 세상에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019
감독 : 김용훈
각본 : 김용훈
원작 : 소네 케이스케의 소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출연 :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윤여정
줄거리

사기, 배신, 살인. 모든 것은 돈 가방과 함께 시작되며 돈 가방으로 끝난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리며 한탕을 꿈꾸는 태영.
아르바이트로 가족의 생계를 겨우겨우 책임지는 중만.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삼의 것을 탐하는 연희.
인생 벼랑 끝에 몰린 그들 앞에 거액의 돈 가방이 나타났고 인생 마지막 기회라 믿으며 돈 가방을 쫓는 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돈 가방은 누가 차지하게 되는 걸까?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영화가 또 있으려나. 운칠기삼은 우리가 살며 겪는 일의 성공과 실패는 노력보다 운이 훨씬 크단 소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우리나라에 역병이 막 심화될 그즈음에 개봉했다. 아직까지도 역병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를 보면 개봉을 몇 주 혹은 몇 달 뒤로 개봉했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아까운 작품이다.

 

영화를 두 번 봤다. 영화의 구조가 조금은 독특해서인데 이 영화는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대로 서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런 구조를 쉽게 볼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이런 기법으로 소설을 자주 집필한다. 

 

챕터별로 나뉘어 있지만 초반에는 뭐가 무언지 알 수가 없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지 짐작이 어렵다. 그러다가 소설이 중반부에 접어들어서면서부터 각기 다른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의 접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간의 흐름도 머릿속으로 짜 맞출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중반부 즈음에 다다라서야 얽혀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그저 흘러나오던 뉴스 역시 그저 나오던 것이 아님을 알았다. 영화 안에 숨겨진 메타포적인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미장센 하나하나조차 치밀한 연구 끝에 나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더라. 영화를 보고 난 후 김용훈 감독의 전작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이전에 단편 감독을 연출한 적이 있고 이것이 그의 첫 장편 영화다. 동명의 일본 원작 소설을 각색해서 만들었지만 신인이나 다름없는 감독이 이만큼의 화려한 출연진. 그리고 이만큼의 투자를 받았다는 건 그의 시나리오가 재밌고 탄탄하다는 반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재밌었다. 무척. 피가 나오고 칼이 나오는 영화를 무서워해서 잘 보지 못하는데도 꾹꾹 참고 두 번을 보았을 정도로.

 

 

※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글입니다.

 

구질구질하다 못해 처연한 짐승들


제목이 재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건 정말이지 물 불 가릴 것 없이 절실하다는 표현이다. 똥이고 된장이고 구분할 여유 없이 절박하다는 이야기다. 근데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란다. 우리는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짐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짐승들이다. 짐승에서 자유로운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다들 무척이나 절박하다. 제목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다.

 

딱 한 명의 주인공을 꼽기가 어렵다. 비선형적인 서사 속에서 예측 없이 등장하는 그들은 임팩트 있게 나타났다가 자기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는 빠져버린다. 

 

부인이 사기를 당해 가세가 기울었다. 빚을 갚으려 유흥업소에 다니는 부인을 구타하는 재훈은 짐승이다.

 

유흥업소에서 만난 서미란이 고통을 받는다고 그의 남편을 살해하려다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을 살해해버리고 암매장한 진태는 짐승이다. 미란을 처음 만났을 때 한국에 온 이유가 "사람을 죽여서요."라고 했는데, 그건 진짜였을까. 엉뚱한 사람 죽인 거 알고 그렇게 괴로워하는 거 보면 사람 처음 죽였던 것 같은데.

 

남편이 폭력을 일삼자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진태에게 시켜 남편을 살해하려던 계획이 실패했다. 엉뚱한 사람을 죽인 것을 알고는 괴로워하는 진태를 자신이 위험에 처할까 봐 살해했다. 추후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탈 생각으로 연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남편을 죽인 서미란은  짐승이다.

 

서미란이 남편을 죽여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교묘히 도운 뒤 서미란을 살해해 토막 살인한 뒤 유기하고 그의 보험금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그의 신분까지 갈취하여 밀항하려던 최연희는 짐승이다. 서미란도 그렇지만 최연희에겐 모든 것이 수단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내가 그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가 기반이다. 서미란에게서는 "돈"을. 태영에게서는 빚보증을 서게 만들어 이득을 취했다. 마지막 순간에서도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급하게 밀항할 방법을 찾았고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인물이 태영이었을 뿐이다.

 

왜 돌아온거냐는 태영의 말에 연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밖에 없더라."라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밖에 없어서는 개뿔.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오동팔을 호구로 잡아 돈을 뜯어내 옛 연인 최연희의 보증 빚을 갚으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그러다 옛 연인 최연희가 돌아오고 그가 자신에게 돌아온 이유가 큰돈을 갖고 튈 목적임을 눈치채고는 연희를 기절시키고 그의 돈을 가로챈 태영은 짐승이다.

 

오동팔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끈질기게 태영에게 달라붙으며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연희의 허벅지를 만지려던 명구는 짐승이다. 태영이 돌아왔을 땐 이미 명구가 사망한 후라 연희의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평소에 보여준 언행이나 자리에서 일어날 때 괜히 연희를 지지대 삼아 일어나는 걸 봤을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보여서. 연희의 말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철저히 자신의 빚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던 붕어는 짐승이다.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사람을 죽여버리고 마는 박두만은 짐승이다.

 

찜질방 락커에서 발견한 돈가방을 챙긴 중만은 짐승이다.

 

화장실 청소중 보관함 열쇠를 발견했고 돈가방을 발견했다. 고민 없이 돈가방을 챙기는 영선 역시. 짐승이다.

 

박두만의 오른팔(?) 행동대장인 메기는 영화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내장이란 내장은 생으로 입에 넣으며 다 좋아한다던 그는 밀항하려는 연희를 찾아 잔인하게 살해했다.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게 욕망이라는 것이 돈. 혹은 성욕에 관련된 거라면, 메기의 욕망은 그저 '살인'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

 

메기는 연희를 죽이고는 연희가 가져갔을 돈가방을 찾겠다는 생각은 전연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어찌 보면 돈이나 성을 좇는 다른 자들보다 더 원초적이고 순수한 욕망이다. 그저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으니. 다른 자들은 '돈'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에게 살인은 부차적인 것이다. 메기는 그저 연희를 죽였다. 돈가방은 애초에 그의 계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돈이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살인이다.

 

"큰돈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으면 안 돼. 그게 네 부모라도."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살인까지 은폐해주고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까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주어 떠먹여 주었는데 그것이 그저 단순 호의였을까. 자기도 예전에 남편한테 맞고 산 적 있어서? 남 일 같지 않아서?

 

미란이 연희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그 정도 머리는 있어 보였는데. 빚을 갚으려고 웃음 팔 결심을 할 정도면 보통 사람이 아닐 텐데 어떻게 연희를 그렇게도 쉽게 믿을 수가 있어. 순진해서는. 

 

미란은 남편을 죽이려고 했다. 남편이 아닌 엉뚱한 사람을 살해한 진태가 죄책감에 괴로워해 자수하려고 하자 자기까지 엮이게 될까 봐 진태까지 살해하고 암매장했다. 사람을 둘씩이나 죽여놓고. 아니지. 셋을 죽여놓고 어떻게 연희는 그렇게 믿었을까. 

 

아. 남편을 교통사고 사망으로 처리하여야 하는데 진태가 남편을 암매장했다고 하자 휴대폰으로 실종 시 얼마만큼의 사망보험금을 챙길 수 있는지. 유예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검색하더라. 그걸 보며 "아 저거 바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경찰이 조사하면 핸드폰으로 뭐 검색했는지 다 조사하고 전화나 문자 기록도 싹 다 조사할 텐데. 

 

마지막 밀항 전 미란이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이유 역시 어쩌면 연희가 미란에게 머리를 잘라보는 게 어떻겠냐며 권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그의 허벅지에 자신과 같은 상어 문신을 세기게 한 것처럼. 

 

연희의 목표는 "돈" 살인은 "수단"


전도연 씨는 놀랍다. 중반부에 그가 나타날 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의 호흡은 '최연희'가 중심이 된다. 그는 굿 와이프에서 변호사를 연기했다. 이번엔 화류계 마담 역할을 맡았다. 이전에 무뢰한에서도 화류계 역할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순한 맛이었다면 이번엔 매운맛이다. 아니.. 독한 맛.

 

변호사부터 화류계 마담까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대체...

 

가장 소름 끼쳤던 부분을 꼽으라면 그가 처음 등장할 때 진상 손님을 술병으로 내려쳤을 때도 아니고, 결박한 미란이 깨어나서 소리지르자 "깼어?" 라고 태연하게 물으며 토막 살인하던 것도 아니다.

 

명구가 평택항에서 한 여성의 토막 시신이 발견됐는데 허벅다리에 상어 문신이 있다고 하자 태영은 문신을 확인하고 연희의 것과 같음을 알고는 기겁한다. 명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네가 죽인 거냐며 저 경찰에게 다 말해버릴 거라고 하자 연희는 태영에게 입을 살짝 맞추고는 찡긋 웃으며 "해~ㅋㅋ 해 ㅋㅋ"라고 말했던 부분이다.

 

사람을 토막 살인하여 죽이고 유기하였는데, 북엇국을 끓여 밥을 먹고 사람을 죽인 손으로 사과를 깎아 대접하는 연희는 소름이 끼치더라. 

 

영선은 돈가방을 어떻게 했을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범속하며 보편적인 사람이라는데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면 과거에 횟집을 했으나 횟집이 망해 아내는 청소부로, 본인은 찜질방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만이네 가족일 것이리라. 딸아이는 학자금 대출이 막혀 결국 휴학하고 알바를 해 학비를 충당하기로 했단다. 부모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속이 미어질까.

 

중만에게 있던 돈가방은 연희를 거쳐 영선에게 돌아갔다. 영선이 루이뷔통 키폴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주인 없는 돈의 주인을 찾아주려 신고할 일은 없어 보인다.

 

이것이 권선징악일까. 결국 성실히 일하던 중만네 가족이 돈가방을 차지하게 돼서?

 

영선은 시어머니 순자의 횡포를 견디고 있다. 똥오줌을 치우고 그를 보호하려다 계단에서 굴러 다리가 다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긋지긋해 못살겠다며 남편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딸아이가 학비가 없어 학교를 휴학한다 했을 때도 남편인 중만에게 원망의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는 항상 차분했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다리를 절면서도 돈을 벌러 일을 했다.

 

영화에 크게 등장하지 않았던 영선의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절절 한 이유는, 난 영선이 '선한 인물'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가난의 책임을 남편에게 돌리지 않고 그저 함께 나누고, 오줌을 그냥 싸버려 일거리를 만들며 자신을 아프게까지 하는 시어머니를 그저 보살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틈에서 영선은 가장.. 가장 선한 인물이다.

 

그런 그도 돈이 잔뜩 든 가방을 손에 넣고는 신고를 하는 대신 그 가방을 챙긴다. 돈이 그만큼 무섭다는 거 아닐까. 아. 그놈의 돈이 뭐길래 정말. 영선이 아직 다 아물지 않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청소부 유니폼과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루이뷔통 키폴을 들고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옅게 슬펐다.

 

집이 다 타서 좌절하는 중만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팔다리 멀쩡하면 어떻게든 살게 돼있다고 하셨다. 그때만큼은 제정신이 돌아오신 건지? 극에서 가장 어른인 순자가 내뱉은 세월의 연륜이 묻어난 말은 말은 괜히 보는 나까지 용기를 가지게 했다. 그래. 두 팔 두 다리 멀쩡하면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 하고.

 

박중만은 연희가 죽였다. 연희는 메기가 죽였다. 메기는 연희를 죽이는 게 최종 목적이었으므로 그 돈의 행방을 찾지는 않을 것이리라. 그러면 그 돈을 좇는 자는 이제 없다. 그래서 영선과 중만은 행복해졌으려나. 그것도 알 수 없다. 그 돈이 그의 가족에게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으니.

 

영선이 우연히 주운 그 돈은 피가 묻은 돈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의 피가 묻은 돈이다. 돈이 넝쿨째 들어왔다고 해도 로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거저 얻은 횡재처럼 느껴지지 않는단 소리다. 결국 영선네 가족이 그 돈으로 잘 살게 돼도 못 살게 돼도 씁쓸할 수밖에 없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려고.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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