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7. 17:00ㆍFilm
영화 이창 줄거리 결말 알프레드 히치콕 l 관음증 그리고 노출증
이창 (Rear window) 1954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원작 : 코넬 울리치의 단편 '살인이 있었다'
출연 :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웬델 코리, 델마 리터
이창 줄거리 * 스포 포함
사진작가 제프리는 카레이싱 촬영 도중 다리 부상을 입어 깁스를 하고 있다. 보험회사에 소속된 간호사인 스텔라와 여자 친구인 리사의 간호를 받으면서 아파트 밖으로는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삶을 지속한다. 사진작가인 직업답게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무척 능숙하며 반대편 아파트의 사람들을 지켜본다. 러닝타임이 지속될수록 망원경과 같은 장비를 활용하여 더욱 집요하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훔쳐본다. 그러던 어느 날 반대편 아파트의 쏜월드가 아내를 죽였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형사인 친구 '도일'은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제프리는 쏜월드가 부인을 죽였단 의심을 더욱더 확고히 하게 된다. 여자 친구인 리사와 간호사인 스텔라는 제프리의 말에 설득되어 쏜월드의 범행을 밝혀내려 적극적으로 행동하였고 그 결과 쏜월드가 부인을 죽인 것을 밝혀냈다.
사이코, 이창, 현기증.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이 '관음'에 대한 명징한 주제를 다룬 세 영화.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과 밀접하고 맞닿아 있는 영화가 '이창'이 아닐까 싶다. 영화 이창은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 동안 제프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 그리고 제프리가 마주 보고 있는 반대편 아파트와 한 뼘 내외의 거리가 전부다. 그 외 다른 배경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창이 가장 현실과 밀접하다고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이코(1960)의 노만 베이츠가 자신의 모텔에 온 젊은 금발 여성의 방을 몰래 훔쳐보며 사람을 살인하려는 목적의 서스펜스라면, 이창(1954)은 그저 평범한 사진기사가 반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뿐이니까.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단 점에서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만, 그저 집에서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 법에 저촉된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
언제부터인가 한국 예능에 관찰 예능이 많지 않나. 스타들은 어떤 집에 사나. 어떤 음식을 먹나. 어떤 하루를 보내나. 유튜브는 보통 사람들의 영상이 올라왔기에 가내수공업처럼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새 방송국들도 유튜브가 돈이 되는 걸 알고 유튜브용 콘텐츠를 올리는데 혈안이고, 유튜브 속 유명 배우들의 브이로그는 여느 케이블 TV 채널과 다를 게 없는 영상미와 세련된 편집을 구현한다.
글보다는 사진이 중심이 되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곳을 갔는지 알고 싶은 것.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싶은 것. SNS를 하는 목적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니까. 영화 이창의 리뷰 제목을 '관음증과 노출증'이라고 조금은 대범한 이름을 붙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형 스타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는 것.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 꼭 스타가 아니어도 SNS를 하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업로딩 하는 이유. 보통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관종 욕구는 다 갖고 있으며, 유명인의 일상을 궁금해하니까.
나 역시 내가 쓴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만 내 이름 석자가 아닌 '에이프릴'로서. 그런 부분에선 나도 어느 정도는 관종인 것이다.
영화 이창은 우리의 훔쳐보는 욕망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1954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2020년에도 영화의 명징한 주제가 동일하게 맞물리는 것이 재밌다.
※ 영화 이창의 스포일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글입니다.
그저 훔쳐보기만 하는 제프리
제프리는 촬영 도중 다리가 부러져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는데 그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반대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게 중엔 신혼부부도 있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발레리나도 있고 고독한 여인도 있고 음악가도 있다.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을 그저 들여다본다.
제프리의 상황이 참 재밌는데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그에겐 기동성이 없다. 건장한 남성이지만 그의 상황이 그를 무척 유약하게 만든다. 그는 여자 친구가 위험에 처해도 도움을 줄 수 없으며 자신이 위험에 처해도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의 상황이 여자 친구인 리사와 간호사인 스텔라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논리'만으로 설명되진 않지
처음엔 이웃을 훔쳐보며 쏜월드가 살인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제프리에게 리사는 당신이 과민반응을 하는 거라며 그만 좀 남들을 들여다보라고 망원경을 뺏기도 한다. 그러다 쏜월드의 수상한 순간을 포착하고는 당신이 본 거, 생각한 거를 전부 알려달라고 말한다.
리사가 쏜월드의 부인이 멀리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논리적이진 않다. 리사는 먼 곳을 여행하는 여자라면 보석을 절대 두고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끼는 핸드백에 보석을 두면 내면이 긁힐 수 있으므로 핸드백에 넣지 않는다. 고로 쏜월드 부인이 멀리 여행 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형사인 '도일'에게 리사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도일은 그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리사의 의견이 논리적이지 않아서 일 것이다.
스텔라도 처음 등장했을 때 보험회사 간호사가 아니라 무속인이 될 걸 그랬다면서 자신은 29년도 대공황 때 주식 시장이 폭락할 것을 예견했다면서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그 당시 제너럴 모터스의 부장을 간호하고 있었는데 신경과민으로 콩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스스로 무엇 때문에 신경과민이 걸린 걸까 자문해 봤고 '아. 과다 생산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폭락하겠군.'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부장이 화장실을 갈 때마다 시장은 갈수록 폭락했다고.
그 말을 들은 제프리가 "그 둘은 전혀 관련이 없잖아요."라고 하자 스텔라는 "어쨌든 내 말대로 됐잖아요?"라고 말한다.
정말로 제너럴 모터스의 부장이 차동차 과잉 생산 때문에 신경 과민으로 콩팥에 영향이 생긴 것이 1929년 대공황과 전연 관계가 없을까? 내 생각엔 있는 것 같은데.
이 논리적이지 않은 리사와 스텔라 두 여성 덕분에 부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도주하려 한 쏜월드를 검거할 수 있었다. 논리적인 도일은 아마 이 두 여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쏜월드를 절대 잡지 못했으리라. 앞서 설명했다시피 제프리는 다리에 부상을 입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가 다리를 부상한 상황을 만들어서 사건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여성'으로 만든 설정이 재밌더라.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
실제로 스튜디오에 31채의 아파트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고 한다. 장소의 이동 없이 무척이나 한정적인 배경이지만, 정말이지 돈 냄새가 나는 영화다. 이후에 만들어진 사이코가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작비의 압박으로 흑백 영화로 만든 것과 대비되게, 이창은 칼라 필름으로 만들어졌기에 각 인물들의 칼라풀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좋다.
무엇보다 리사 역할의 '그레이스 켈리'가 압도적이다. 이창에서 처음 리사가 등장할 때가 특히 그렇다. 잠들어 있는 제프리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뭐지?"싶을 때 지적인 매력이 가득한 그레이스 켈리가 등장한다.
히치콕 감독은 금발에 파란 눈을 지닌 배우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아한 매력이 돋보이는 그레이스 캘리는 히치콕의 뮤즈에 딱 어울리는 외모가 아니었을지. 사람이 이렇게 우아할 수 있나 싶다.
이웃과 굳이 왕래해야 하는가
이웃집을 들여다보다가 썬월드 부인이 남편에게 살해당한 것을 알았다. 매일을 고독하게 보내던 여인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뜨지 못할 양의 수면제를 삼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제프리가 이웃의 사생활을 침해해가면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일부러 이웃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오며 가며 눈이 마주쳤을 때 가벼운 눈인사로 족하다. 나에겐 이 정도 거리의 온도가 알맞아서다. 이게 나쁜 걸까.
간혹 뉴스에서 고독사로 사망한 인물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곤 한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었다는 걸 오랜 기간 동안 몰랐다는 이야기를 본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에서도 엄마 없이 반년 동안 아이들끼리 살고 있는걸 전혀 몰랐다는 이웃 주민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경계가 참 어렵다. 이웃에게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고 어느정도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영화가 만들어졌던 1954년에도 아파트나 고층 빌딩 같은 건축물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밀집된 환경에서 아주 가까운 생활 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무척이나 무관심하다는 것을 꼬집은 역설적 장치였던 것 같은데 오늘날에도 그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아마 갈수록 심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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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담으로 제프리가 너무 괘씸해서 이 얘기를 해야겠더라. 스텔라와 대화하는 부분에서 리사가 정말 좋은 여자인데 왜 결혼하지 않냐고 하자 제프리는 너무 완벽하지만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은연중 제프리와의 결혼을 원하는 듯했던 리사에게 그는 사진 기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구구절절 읊는다. 그 말에 질려버려 나가려던 리사에게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자고 말한다. 결혼할 마음은 없으면서 지금과 같은 관계는 유지하잔 소리다.
리사는 당분간 연락하지 않겠다며 나가버렸다. 둘 중에 하나만 하자. 결혼할 마음이 없으면 얼른 정리해야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 너무나 이기적이잖아.
추후 용감한 리사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결혼을 결심한건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지 않은 제프리와 리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드레스업 된 의상을 입고 나타났던 리사는 청바지에 칼라풀한 셔츠를 입은 캐주얼한 의상이다. 여행기를 읽고 있다가 제프리가 잠든 것을 보고 패션 잡지인 하퍼스 바자로 바꿔 읽는 것도 참 센스 있다고 느꼈다.
히치콕 시리즈로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리뷰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그의 영화는 공부할 요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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