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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결말 줄거리 명대사 l 싫어도 닮게 되는 게 가족이잖아 걸어도 걸어도 결말 줄거리 명대사 l 싫어도 닮게 되는 게 가족이잖아

걸어도 걸어도 결말 줄거리 명대사 l 싫어도 닮게 되는 게 가족이잖아

2020. 10. 3. 18:05Film

걸어도 걸어도 결말 줄거리 명대사 l 싫어도 닮게 되는 게 가족이잖아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2008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키키 키린, 타나카 쇼헤이
걸어도 걸어도 줄거리

햇볕이 따갑던 여름날, 바다에 놀러 간 준페이는 물에 빠진 어린 소년 요시오를 구하고 그는 사망했다. 준페이의 사망 후 10년이 지났고 각자의 가정을 꾸린 준페이의 동생들인 료타와 지나미는 매년 여름 형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집에 간다. 그리고 그곳엔 준페이의 식구 말고도 형의 죽음으로 목숨을 구한 요시오 역시 매 해 준페이의 기일마다 방문한다. 차남인 료타는 요시오가 그만 오는 게 좋지 않겠냐며 묻자 어머니는 요시오를 구태여 계속 부르는 이유를 말한다. 그런 어머니를 료타는 오싹하다고 생각한다.

걸어도 걸어도를 음식으로 표현한다면 아주 밍밍한 흰 죽 같다고 할까. 이번 그의 영화는 미적지근했다. 기승전결도 없었고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도, 해소되는 부분도 없었다. 흰 죽처럼 말갛고 밍밍했다. 

 

형의 기일로 한 자리에 모인 료타의 가족들은 조금도 애틋해 보이지 않았다. 료타도 지나미도 자식 된 도리를 하고자 의무적으로 부모님에게 들린 것이지 자주 얼굴을 비추고 싶어서 집에 간 것이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었거든.

 

이번 영화는 마음에 따스함이 채워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든다. 

 

 

※ 걸어도 걸어도의 스포일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글입니다.

료타가 부모님의 집에 가지 않았던 이유


료타는 식구들과 부모님에게 가는 그 순간부터 가기 싫어 죽겠다는 티를 냈다. 나중엔 부인에게 당신이 핑계를 대서 안 자고 오면 안 되겠냐는 철없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부모님을 마주하는 순간 료타가 왜 그렇게 부모님의 집에 가는 걸 꺼려했던 건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는 건 고사하고 편의점에서 우유 조차 사지 못하시는 꼬장꼬장한 아버지 쿄헤이와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사람을 폄훼하는 무시무시한 어머니 토시코까지.

 

료타는 현재 무직이지만 부모님께 무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 평생을 의사로 사셨던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고 탐탁지 않게 여길지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토시코는 딸인 지나미에게 료타가 하필 골라도 '중고'를 골랐다며 료타의 부인인 유카리 흉을 본다. 차라리 이혼이면 싫어서 헤어졌으니 그나마 덜한데 사별이니 앞으로도 계속 죽은 남편과 비교를 당할 거라며. 어떻게 골라도 그런 걸 고르냐고.

 

옛날 분인 걸 감안해도 사람에게 중고라는 말은 너무 과했다. 꼬부랑 할머니가 몹시 밉더라.

 

죽은 준페이와 함께 살고 있는 토시코와 쿄헤이


가장 믿음직스러웠고 가장 대견했던 아들 준페이를 잃었다. 자신의 아이도 아닌 남의 아이를 구하려다 사망했다. 장남인 준페이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났어도 부모인 토시코와 쿄헤이는 여전히 준페이와 함께 살고 있다.

 

모처럼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는데도 엄마인 토시코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국에는 준페이로 끝난다. 목숨같은 자식을 황망하게 잃은 부모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냐만 남은 자식들은 무얼까 싶었다.

 

더군다나 유년기 때에도 형의 그늘에 가려서 자랐을 것 같았고,형의 죽음 이후에도 료타는 형의 그늘에 깊게 가려있다. 같은 가정에서 자라더라도 장남인지 차남인지 막내인지에 따라 부모의 기대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옛날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고 가장 기대했던 장남을 잃자 차남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료타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남자로 성장하지 못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기승전'준페이'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료타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난 눈치를 줬던 입장이었을 때보다 눈치를 보던 입장일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료타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그 틈에서 어쩌면 료타는 "차라리 형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했다.

 

"애 딸린 과부 하나 먹여 살릴 정도는 되죠"


료타는 10년 전 아이를 구하고 죽은 형에 대한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아마 그건 료타가 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인물도 좋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해 학교에서도 인기 있었던 준페이와 달리, 료타는 평범한 외모에 사근사근한 성격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졸업식 때 교복 단추를 다 뺏겼다고 하자 동생인 지나미는 "이지매 아니야?"라고 한 거 보면 인기는 당연히 없었을 거고.

 

료타의 부인인 유카리는 재혼이다. 아이도 딸렸다. 전 남편은 피아노 조율사였고 아파서 사망했다. 재혼을 한 것이 흠이 될 일이 아니지만 아버지가 유화를 손보는 일의 수입이 어떻냐고 묻자 료타는 "애 딸린 과부 하나 먹여 살릴 정도는 되죠"라고 답한다.

 

"처자식 먹여살릴 정도는 되죠"라고 말하면 될걸 그렇게 말했어야 했나. 어쩌면 료타는 자기의 결혼 상대가 애 딸린 과부였다는 것 역시 그를 작게 만드는 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금 직장이 없다는 것과 사별하고 애 딸린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더 보잘것없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

 

나이가 40이 넘고 가정을 꾸리면 뭐하나. 맘 속에는 오래전 죽은 형에 대한 열등감과 스스로 변변치 못하단 생각이 가득한 걸.

 

준페이의 기일마다 '요시오'를 불렀던 건


준페이의 기일마다 식구들 말고 꼭 찾아오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준페이가 목숨을 구했던 꼬마 요시오다. 이제 그 아이는 대학도 졸업하고 건장한 성인이 되었다. 그간 1년간의 근황을 읊는 걸 보니 원하던 곳에 취업하는 것이 어렵게 돼서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요시오는 심성이 착한 인물 같았지만 똑 부러진 인물 같진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분을 기리기 위해 매년 준페이의 집에 방문하지만 꼬마였을 때부터 그것이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료타는 아직 젊으니 기회는 많으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며 요시오를 격려한다. 그가 떠나고 난 후 코헤이는 저런 아르바이트나 하는 변변찮고 바보 같은 것 때문에 우리 준페이가 죽었다는 말을 한다.

 

료타는 토시코에게 "이제 요시도 그만 와도 되지 않아요?"라고 물으니 토시코는 조금은 무서운 말을 한다.

 

"왜 그래야 돼? 괴로우라고 부르는 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그 아이 때문에 준페이가 죽었으니까. 요시오가 죽인 거야. 부모가 볼 땐 똑같아.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는 않을 거야."

 

토시코가 부모가 되면 이해할 거라고 말하자 료타는 "나 아버지예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토시코는 "진짜 부모 말이야."라고 하더라. 그는 남의 아이인 아츠시가 료타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종일관 아츠시'군'이라고 부르던 것 역시 그 아일 손자로 여기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짐작하고 늦은 밤 남편을 결국 찾았는데 외도 상대에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는 문 밖에서 남편을 불러보지도. 문을 열고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면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LP판을 샀다는 토시코. 그 오랜 세월 남편에게 입 뻥긋 안 하고 숨어서 그 노래를 들었다던 그답다.

 

술을 마셔서 얼굴이 붉어진 유카리에게 우리가 젊었을 때 여자는 술은 받되 잔을 비우지 말란 얘기를 들었다며 왜 칠칠치 못하게 술을 마셔 얼굴이 붉어진 모습을 보이냐며 은연중에 유카리를 질책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자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식으로. 그 말을 듣고 무척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밖에서는 웬만해서는 마시지 않아요.^^"라고 억지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이 서글프더라.

 

가뜩이나 그 자리가 무척이나 부담이었을 텐데.

 

싫어도 닮게 되는 게 가족이니까


이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의도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토시코와 료타는 참 닮았다. 부모님의 사망 후 부모님의 묘지에 가서 술을 부어주는 장면에서도 형의 묘지에 술을 부어주던 엄마 토시코와 똑같은 말을 한다.

 

노란 나비는 지난겨울 살아남았던 흰나비가 노랗게 된 것이란 말을 하는 것도 똑같다. 인물만 바뀌었을 뿐이지 상황은 같다.

 

요시오가 스모선수를 닮았는데 서로 헤어지고 난 후에야 선수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것도 닮았다.

 

걸어도 걸어도는 조금도 극적이지 않았다. 중반부를 넘어설 무렵부턴 이 정도면 갈등이 생겨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나에게 감동을 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봤다. 부모님은 10년 전 죽은 형만 기억하며 자신의 에피소드조차 형의 에피소드로 둔갑하여 추억한다. 아마 난 의사가 되지 못하고 부모님이 기대하던 직업을 갖지 못한 데다가 애 딸린 과부랑 결혼했다고 자신을 탐탁지 않게 보는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료타의 감정이 폭발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만 좀 하세요! 언제까지 형 타령을 하실 거예요???" 이런 식으로.

 

아니면 사실 료타의 부모님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료타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보여주시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만약 그런 전개였다면 꽤나 뻔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그 어느 것도 극적이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온 료타는 집에 가는 버스에서 "내년 설엔 안 와도 되겠지? 1년에 한 번이면 되잖아."라고 말했고, 아들 부부 내외를 배웅하던 부모님은 "이제 내년 설에나 보겠지"라고 말한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에게 얼굴을 비추는 건 1년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료타와, 명절과 준페이의 기일까지 전부 합쳐 일 년에 세 번은 볼 것을 기대하는 부모.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료타는 3년 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후 어머니도 돌아가셨다는 내레이션이 들린다. 결국 료타는 아버지와 축구를 보러 가지 못했고, 어머니에게 본인의 차를 태워드리지도 못했다. 담담하게 부모님의 죽음을 읊는 료타가 생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모님이 원하던 것을 끝끝내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찾을 수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걸어도 걸어도는 2009년 개봉한 작품으로 그의 어머니를 여의게 된 후에 오래전에 써놓았던 플롯을 다듬어 한 달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만든 영화여서 어머니의 말투와 성격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 토시코가 하던 대부분의 대사 역시 모친께서 히로카즈 감독에게 하시던 말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요리가 영화 속에서 그대로 보이기도 했다고. 아마 옥수수를 이용한 튀김 요리였나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말끔히 풀지 못했던 오해와 관계를 영화 속 료타와 코헤이에게 투영했다는 그. 

 

이번 추석 연휴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었다. 내 의도완 다르게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기보다 오히려 먹먹하고 공허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가족은 참 어렵다. 정말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대사를 소개해드리며 이번 리뷰를 마치려 한다. 걸어도 걸어도에는 준페이 말고도 사망한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카리의 전 남편이다. 아직 료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료짱이라 부르는 아츠시에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츠시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아버지인 료타 역시 천천히 스미게 될 거라던 유카리의 말을 알려드릴까 한다.

 

몇 년이 지난 시점의 료타의 가족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았고 예쁜 딸아이도 낳은 것을 보자 유카리의 말대로 아츠시의 맘 속에 료타가 아버지로서 서서히 스며든 것 같았거든.

 

죽었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아빠도 계셔

아츠시 네 안에

아츠시 반쪽은 아빠,

나머지 반쪽은 엄마로 만들어졌거든

 

그럼 료짱은?

 

료짱도 이제 들어오겠지

아주 서서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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