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담보 결말 후기 줄거리 l 신파 감별사

영화 담보 결말 후기 줄거리 l 신파 감별사

담보 (Pawn) 2020
감독 : 강대규
각본 : 윤제균, 손주연
출연 : 성동일, 하지원, 김희원, 박소이, 김윤진

담보 줄거리

1993년 인천,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사채 빛을 받으러 갔다가 명자(김윤진)의 9살 난 딸 승이(박소이)를 담보로 데려갔다. 조선족인 명자가 졸지에 본국으로 송환되게 되자 두석과 종배는 승이의 가족이 됐다. 승이의 큰아버지는 두석에게 동정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며 모르는 척하라고 했지만 두석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말하며 승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딸로서 키워낸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알았다. "이건 신파다." 

 

영화 담보는 추석가를 겨냥해 개봉한 영화로 '가족극'이다. 해운대, 국제시장, 히말라야 등을 연출한 JK필름이 제작을 맡았고 하모니를 만들었던 강대규 감독의 작품이다. 제작사인 JK필름과 강대규 감독을 제외하고도 이미 포스터부터 신파 냄새가 자욱하다.

 

이전에 리뷰했던 영화 '살아있다'에 한 댓글이 달렸다. 티스토리 블로그에 구독자님이 아닌 검색으로 오신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는 건 꽤나 드문 일인데, 넷플릭스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있는 작품을 이렇게도 깔 수 있냐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난 살아있다의 한줄평을 졸작이라고 달았다. 그 어느 것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서였다. 그 댓글러의 말처럼 살아있다는 해외에서 꽤 좋은 호평을 받았다. 그게 혹 우리만의 여론인가 싶어 미국 본토의 10개가 넘는 기사를 읽어 보았는데 그 호평은 사실이더라. 감동적이라는 평이 대다수였고 외국의 관람객들은 '신파'라는 장르에 꽤나 매료된 듯 보였다. 그때 마치 이런 느낌이 들었다. "불량식품을 처음 먹었을 때 짜릿한 맛이 이런 것일까?"

 

나에게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 담보는 어느 정도의 흥행에 성공했다. 역시 개연성이고 최소한의 상식이고 탄탄한 시나리오를 짜내는 데 열정을 쏟는 대신 눈물을 잔뜩 짜낼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들어서 흥행만 하면 된다는 걸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박소이 양이 9살의 승이 역을 맡았다. 그리고 난 배우 성동일 님이 이런 류의 연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던 듯싶다. 그 말고도 두석의 역할을 이렇게도 잘할 수 있는 배우가 있었을까. 무심한 듯 하지만 다정하고 속 깊은 아빠의 역할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엔 흠잡을 것이 없다. 

 

담보는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아주 특수한 형태의 인물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피로 맺어지지 않은 생판 남들이 모여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서사를 담고 있으니까. 한 작품은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려냈고, 한 작품은 인위적인 신파를 가득 넣어 만들었다.

 

 

※ 영화 담보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글임을 밝힙니다.

신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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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모든 것이 극적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시나리오를 예상하며 보지 않는다. 누가 범인일까.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까를 예상하며 보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재미가 급격히 감소되기도 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그저 작품만 감상하고 싶은 나에게 '담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 서사를 예측하게 만들었고 그런 내 예상을 벗어난 건 딱 한 순간이었다. 애초에 신파에 개연성은 중요치 않다. 그저 가슴 아픈 절절한 장면을 억지로 끼워 넣어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면 그만이니.

 

신파란 것을 알고 있지만 엄마와 생이별하게 된 승이를 보면 눈에 눈물이 가득 찬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룸살롱에 팔려가 다 큰 성인이 하기에도 버거울 허드렛일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다 빼 휴지 한 통을 전부 비워내고 만다. 아.. 이 지긋지긋한 신파.

 

이제 난 신파를 볼 때 구멍 뚫린 시나리오를 개탄하며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내지 않는다. 그저 그 신파 속에서 내가 감응한 것들에 대해 꾸려가며 리뷰를 써보려 한다.

 

"동정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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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동생의 9살 난 딸을 룸살롱에 판 승이의 큰아버지가 두석에게 했던 말이다. 동정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며 그냥 모른 척하라는 말에 가슴에 멍울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말이 무척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동정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어찌 보면 동정이라는 것 자체도 경제력을 비롯한 기본적인 여건이 충족되어야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지는 걸지도 모른다.

 

400만 원에 팔려갔다던 승이를 룸살롱에서 찾아오기 위해 두석은 유일한 재산인 자동차를 팔아버렸다. 93년 당시 85만 원은 매우 큰 거금이었을 것인데 예쁜 승이의 얼굴에 난 상처가 최대한 흉이 지지 않게 해 주려고 거금의 성형 수술 비용을 부담한다. 조선족이라 한국인이 아닌 승이가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승이를 자신의 호적에 딸로서 입적했다.

 

승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손수 도시락을 싸주었으며 대학을 진학할 때까지 돌보았다. 아이를 담보로 데려왔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던 두석은 마치 자신의 친 딸 인양 승이를 키워냈다. 아니. 승이는 두석의 친딸이다.

 

이것이 관객들이 두석에게 깊이 감동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좋은 집에 입양 간다던 승이가 삐삐를 치지 않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과 얼굴에 피가 철철 난 승이의 얼굴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 대학생이며 성인이 된 딸아이가 10시가 넘어도 집에 오지 않는다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꼬장꼬장한 아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성동일 님만큼 보편적인 아빠의 역할을 이렇게도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꾸밈없는 별 것 아닌 모습이지만 그의 연기는 우리들의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두석은 물심양면 승이를 키워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승이의 친모를 만나게 해 주러 중국으로 승이를 데려갔으며  승이의 엄마와 승이를 버리고 다른 한국 여자와 결혼해 한국인으로 귀화해 가정을 꾸리며 잘 살고 있던 승이의 친부까지 찾아주었다. 두석은 승이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예상과 달랐던 유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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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물 폭탄을 안겨줄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엄마와 관련된 일화일까? 중국어 통역사가 된 승이는 찾았다는 전화를 듣고 급하게 공항으로 향한다. 초반 시퀀스에 그가 찾았다는 게 어렸을 때 이별한 엄마일까 생각했다. 2020년인 지금이야 사람 하나 온라인에서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1993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면 그 당시 중국으로 송환된 엄마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연락이 아예 끊겨버렸다는 설정이 무리가 아니어서다. 

 

그가 찾는 건 엄마가 아니라 '두석'이었다. 승이를 데리러 가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10년 동안 행적을 찾지 못했다는 '두석'말이다. 두석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기억을 전부 잃었다고 해도, 오토바이 번호를 조회해보면 신원을 알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두석의 지문을 조회해 봐도 누군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승이와 종배가 두석을 10년 동안 찾지 못했다는 건 손톱만큼의 현실성도 없지만 우선 이건 묻어두자.

 

통장을 양말에 넣어둔 그는(이전에 서태지의 CD와 테이프를 구매할 때도 양말 속에서 돈을 꺼내서 지급했다. 그는 비상금을 양말에 숨겨두는 버릇이 있는 듯싶다) 묘하게 자신의 이름만 찢어져서 없고 입출금 내역은 또렷이 남아있는 통장을 보관하고 있다. 그곳엔 자신이 아닌 승이를 위해 한 푼 두 푼 저축한 내역들이 빼곡하다.

 

친아빠를 찾아주면 이제 자기들은 전부 잊게 될 거라던 종배의 말은 보기 좋게 틀렸다. 승이는 결혼식 날 두석과 함께 입장했고 그때 두석은 '승이'라고 불렀다. 승이의 마음 씀씀이가 예쁘고 성정이 올바른 친구라는 걸 알아서 그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승이는 아저씨들이 자꾸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담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담보가 뭐냐고 했더니 두석은 '다음에 보물이 돼서 담보야'라고 답했다. 승이는 보물이었다. 승이가 선택한 가족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잘 자리 잡은 그의 친부가 아니라, 있는 힘껏 자신을 키워냈던 두석이었다는 것이 이 영화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신파 울렁증이 심하신 분들은 보지 않을 것을 권한다. 시나리오의 개연성에 크게 거부감이 없고 신파임을 알고도 눈물 콧물 뺄 준비가 된 분들에게만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