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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뮬란 2020 후기 l 중국에게까지 외면받은 이유 영화 뮬란 2020 후기 l 중국에게까지 외면받은 이유

영화 뮬란 2020 후기 l 중국에게까지 외면받은 이유

2020. 11. 8. 16:14Film

영화 뮬란 2020 후기 l 중국에게까지 외면받은 이유

뮬란 (Mulan) 2020
감독 : 니키 카로
출연 : 유역비, 견자단, 이연걸, 공리
뮬란 줄거리

무예에 큰 재능이 있는 뮬란은 여성으로서 조신하게 자라 멋진 남성에게 시집가길 바라는 부모님을 위해 겨우겨우 억누르며 살고 있다. 그러다 북쪽 오랑캐 흉노족이 침입했고 황제는 징집령을 내렸다. 뮬란은 나이가 드셨고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투수와 갑옷과 칼을 들고 몰래 전장에 나간다. 여자란 것이 밝혀지면 즉시 사형임에도 재치를 발휘하며 전사로 성장한다. 뮬란이 사는 세상은 그가 인정받고 두 발로 내딛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개봉 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여느 작품처럼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진 데다가 주인공인 유역비가 중국 경찰을 지지한다며 홍콩이 부끄럽다는 발언을 하여서 전 세계적으로 뮬란 보이콧 운동이 일었다. 결국 미국 본토에선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됐고,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9월이 되어서야 개봉했다. 아이러니한 건, 세계 2위의 영화시장인 중국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만들었어도 그들에게 외면받았다는 것이다.

 

백설공주 (1937), 신데렐라 (1950) 스틸컷

난 '영화'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37년의 백설공주, 1950년의 신데렐라와 같은 전통적인 공주들과 2020년의 뮬란은 달라야 했다. 적어도 이 부분에 관련해선 실사화된 뮬란이 전통적인 공주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수동적이던 공주의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공주를 보여줬으니까.

 

뮬란과 리샹 장군 (1998)

실사화된 뮬란 2020은 원작인 애니메이션 뮬란(1998)과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애니에선 여성임이 공개되는 것이 자의적이지 않았고 마치 떠밀리듯 어쩔 수 없이 여성임이 공개되었다. 뮬란은 직속 상사인 리샹 장군과 옅은 로맨스가 있었다. 뮬란을 지켜주는 귀여운 용인 '무슈'가 있었지만 이 캐릭터 역시 삭제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미투를 의식하여 직속상관과의 로맨스가 시대착오라고 판단한 제작진은 과감히 리샹 캐릭터를 제거했다. 귀여운 무슈 캐릭터 대신 뮬란 가문의 상징인 '봉황'을 넣었다.

 

원작에서 떠밀리듯 여성임이 공개되었던 뮬란은 2020년 실사판 버전에서 갑옷을 벗고 틀어 올린 머리를 풀어 자의적으로 자신이 여성임을 밝혔다. 타의에 의해 공개되는 것과 자의에 의해 공개되는 것은 천지차이다.

 

메인 빌런 시아니앙

실사판에선 메인 빌런 캐릭터가 등장했다. 공리가 연기한 '시아니앙'이다. 타인을 쉬이 제압할 수 있는 '기'를 사용할 수 있고 '마녀' 소리를 듣는 그는 뮬란과 참 닮았다. 그가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황제가 아닌 보리 칸의 편에 섰다. 여기서 시아니앙 캐릭터에게는 보리 칸의 편에 선 충분한 당위성이 주어진다. 아예 사람으로 디딜 수 없는 세상과 개 취급을 받아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후자를 택할 것이니.

 

문제는 그의 죽음이 꽤나 고루하다는 것에 있다. 뻔하단 얘기다. 자신의 몸을 던져 뮬란을 구해 내는데도 조금도 감동스럽지 않다. 아주 빤하고 쉬운 상업 영화의 공식을 사용하고 있는 뮬란은 앞서 설명한 부분을 제외하곤 칭찬해 줄 구석이 없다.

 

작년에 다시 한번 원작 뮬란(1998)을 보았는데 애기 때는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고증 오류가 보였다. 일본 신사인 토다이를 모티브로 그려진 것 같았던 건물들. 극의 배경이 중국의 남북조 시대임에도 그들이 들고 있는 칼은 일본풍의 사무라이 칼이었다. 1998년 작이라는 것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심각한 고증 오류다. 적어도 한국인인 내 눈엔 아주 명확하게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황제가 자신의 국가를 말할 때도 'China'라고 언급하는 것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마치 신라 배경의 드라마에서 왕이 '우리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Dynasty 후에 국가명을 붙였어야 옳다. 

 

그래서 2020년에 개봉한 실사판 뮬란이 고증의 오류에서 자유로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전에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인 신서유기에서도 소개된 적 있는 중국 집단 거주지 '투러우'가 뮬란의 배경이다. 이것은 남북조 시대보다 몇백 년 뒤에 생긴 주거 양상이다.

 

더군다나 디즈니 정신을 강조하고자 뮬란에서 내세운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인 '충, 용, 진, 효'는 너무 기계적이라 기시감이 든다. 그 어느 것도 와 닿지 않는 공허한 교훈이다.

 

특히나 효에 대한 정의를 devotion to family이라 말한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효'가 '가족에 대한 헌신'이라고?

네이버 사전 참고

'효'란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이란 뜻이다. 서구권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것이 '가족을 위한 헌신'이라는 표현으로 치환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남는다. 이해가 부족한 느낌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take care of their own parents 정도가 알맞다.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타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스테레오타입이 가득한 모습의 한국인이 나오면 불쾌한 느낌이 든다. 한국말을 하고는 있지만 한국인인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일본인을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클리셰인 모습을 지닌 캐릭터를 보면 무언의 씁쓸함이 든다.

 

뮬란 역할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인 '유역비'가 중국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디즈니 역시 중국의 뮬란을 실사화 하면서 세계 영화시장 2위인 중국의 구미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자 나름 열심히 노력하였겠지만, 중국에게조차 외면받은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알라딘(2019)의 자스민

작년에 디즈니에서 개봉했던 실사파 영화 '알라딘'을 무척 재밌게 보았다. 두 번이나 보았을 정도로.(두 번 보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임) 쟈스민 공주를 보고 느꼈던 감동이 왜 뮬란에게선 느껴지지 않았을까.

 

디즈니는 지난해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에서 흰 피부의 빨간 머리를 지닌 에리얼이 아니라, 흑인인 에리얼을 주인공으로 정하자 팬들에게 큰 공분을 샀다. 지나친 PC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난 그런 재밌는 시도는 응원해주고 싶다. 다만 이렇게 과감한 설정을 밀어붙일 정도의 디즈니가 중국 눈치를 이렇게도 보며 범작인 작품을 만들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몽을 꿈꾸고 작품을 만들었다가 그저 그런 작품이 돼버리는 경우는 비단 디즈니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 전부터 중국 시장을 타기팅 하고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간혹 있다. 최악인 건 방영 전 사전제작인 경우여서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 그렇게 중국 손을 타서 스토리가 산으로 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작품이 간혹 있었다.

 

어느 한 타깃을 집요하게 노리고 나온 작품은 잘못될 확률이 크다. 디즈니의 상업영화 공식만 제대로 따랐어도 평균치 이상의 작품이 나왔을 텐데 영화 뮬란은 범작 수준의 영화에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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