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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결말 리뷰 후기 명대사 l 봄은 또 올 거야 찬실이는 복도 많지 결말 리뷰 후기 명대사 l 봄은 또 올 거야

찬실이는 복도 많지 결말 리뷰 후기 명대사 l 봄은 또 올 거야

2020. 12. 8. 16:00Film

찬실이는 복도 많지 결말 리뷰 후기 명대사 l 봄은 또 올 거야

찬실이는 복도 많지 (LUCKY CHAN-SIL) 2019
감독 : 김초희
주연 :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줄거리

영화 프로듀서인 이찬실은 지감독, 주연 배우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감독이 갑자기 급사하게 됐다. 계획했던 영화는 물거품이 됐고 졸지에 실직한 찬실은 이태원에 위치한 하숙집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찬실이는 괜찮을까.

봄은 또 올 거야

 

※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인생이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 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는 거라면 중간에 계획을 변경하든 갈아엎든 할 텐데 위기는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온다. 찬실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에 따른 부가적인 불편함과 수고로움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김초희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은 오랫동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스태프였다. 이 영화의 찬실이가 완전히 김초희 감독의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의 실제 삶에서 많은 모티브를 받은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더라. 술자리에서 술 게임을 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바람을 많이 피운 것 같은 사람!' 하고는 대부분이 지감독을 지목하는 것을 보며 웃음이 났다.

 

지감독의 영화에만 참여해온 찬실은 지감독만 건강하다면 계속 좋아하는 영화를 작업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술자리에서 갑자기 지감독이 사망하기 전까진 말이다. 찬실이 지감독의 영화에서 PD로서 참여하며 영화를 찬미하는 삶을 충족해왔다면, 영화 오프닝 시퀀스의 지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찬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변환점이 된다.

 

일자리를 졸지에 잃은 찬실은 올해로 마흔 살이다. 영화판에만 있던 사람인데 하필이면 지감독 밑에서만 일한지라 다른 감독들이 찾아줄지는 미지수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니까.

 

찬실은 자신을 잘 따르는 배우인 '소피'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기로 했다. 소피가 찬실의 사정을 알고 선뜻 돈을 꿔주겠다고 말하자 찬실은 "일을 해서 벌어야지!"라더니 대뜸 소피의 집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PD로서만 일한 사람이 친한 배우의 집을 청소해서 돈을 벌겠다는 거. 난 그때부터 찬실이의 실직이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내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하면서 울고 불고 해도 괜찮다 이 말이다. 용달차도 들어오지 않는 동네에서 하숙을 하며 살게 됐어도 찬실은 우선 가정부로 일하며 돈을 번다. 이런 사람은 굶어 죽진 않는다.

 

찬실이는 정말 복도 많아. 다행스럽게도 찬실이 주변엔 좋은 사람뿐이다. 하물며 러닝셔츠에 팬티바람으로 나타나는 귀신 '장국영'조차 말이다. 찬실이 주변엔 악의적인 인물이 없었다. 그게 너무 감사했는데.. 한편으론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만 있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연애도 하지 않고 지냈던 찬실은 큰 용기를 내서 단편 영화감독인 '영'에게 고백했지만, 영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사랑도 일도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렇다고 찬실과 영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것은 아니다. 연인이 아닐 뿐이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좋은 동료가 될 것이다. 장국영의 말대로 그들은 좋은 친구가 될 테니까.

 

찬실이의 하숙집 할머니는 찬실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아시고는 죽은 딸의 방에서 필요한 건 꺼내서 사용하라 하셨다. 영화를 사랑했다던 따님의 방에는 귀한 영화가 가득했다. 꿈을 꾼다기보다 하루하루를 애써서 사신다는 할머니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퍽 좋다.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는 여자가 글을 배우면 바람난다고 학교도 보내지 않았단다. 이제서 글을 배우는 할머니는 한글 공부에 꽤나 진심인 편이다.

 

어쩌면 너무 늦었다면서 '여태까지 그냥저냥 살았으니 한글 공부해서 뭐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가 꿈은 없지만 하루하루를 애써서 사신다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시장에서 닭을 사 오셔서 찬실이에게 닭을 먹으라며 요리하시고는 당신은 점심을 드시지도 않는다. 아마 많이 여윈 것 같았던 찬실이를 먹이고 싶으셔서 사 오셨으리라.

 

찬실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들으시고는 꼬치꼬치 더 묻지 않으시고 '그냥 내가 알아들은 거로 칠게'라고 말하시는 그 마음은, 구태여 더 묻지 않는 것이 찬실이에게 더 편할 것을 알아서 하신 행동일 것이다. 할머니의 그 깊은 마음과 혜안이 감사하다.

 

영화의 말미에서 소피와 영이를 비롯한 스테프들이 찬실이의 집을 찾아왔다. 갑작스레 방의 전구가 나가서 전구를 사러 결국 다 같이 내려가게 됐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길을 내려가며 찬실은 동생들을 먼저 보내고는 뒤에서 불을 밝혀주겠노라 말했다. 많은 것을 함축하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찬실이는 복이 많다. 찬실의 곁에는 찬실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심성이 고운 사람들이 참 많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기꺼이 타인에게 도움을 건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겠다.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선하게 살아야겠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지은 시를 소개하며 이번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아직 한글이 서투르신 할머니께서 정확한 맞춤법이 아닌 글씨로 시를 쓰셨다. 그 글을 보자마자 나도 찬실이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할머니는 아마 먼저 보낸 딸을 추억하시며 저 시를 쓰셨을 것이다. 맞지 않는 맞춤법이었지만 찬실이는 아마 할머니가 무슨 말을 쓰려고 하신지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란 할머니의 시를 보고 찬실이가 운 이유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여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의 삶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갑자기 사망해버린 지감독을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난 좀 다른 걸 생각했다. 모든 씨앗은 파종하는 시기가 다 다르다. 적당한 파종시기를 놓치면 알맞은 수확물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흔히들 사람의 인생을 나이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곤 한다. 한 번 지나간 봄은 다시는 오지 않는단 것처럼. 난 그리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파종 시기를 놓칠 수도. 혹은 시기에 맞춰 심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변수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수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봄은 또 온다. 찬실이에게도 봄은 또 올 것이다. 찬실이는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거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허망한 상황에서도 꽤나 위트 있게 극을 이끌어 나간다. 팩트 폭행을 하면서 지금 찬실이의 상황이 어떤지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박대표와 찬실이의 대화에서도 무언가 웃음이 터질 정도니까. 암울한 상황에서도 이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은데 난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리뷰를 쓰는 지금도.

 

예치기 않은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다시 용기를 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희망을 품고 다시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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