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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 리뷰 도망친 여자 리뷰

도망친 여자 리뷰

2020. 12. 17. 19:30Film

도망친 여자 리뷰

도망친 여자 (The Woman Who Ran) 2019
감독 : 홍상수
출연 : 김민희, 서영화, 송선미, 김새벽
도망친 여자 줄거리

남편이 출장을 갔고 감희는 오래된 세 친구들을 만났다. 앞서 두 명은 감희가 직접 친구들의 집을 방문했고 세 번째 친구는 영화관에서 우연히 조우했다. 

※ 도망친 여자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거의 모두 보았다. 그가 좋아서는 아니고 그저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난 늘 그의 작품이 어려웠다. 보통의 상업 영화는 화려한 외모의 배우들이 반짝반짝한 모습으로 호화스러운 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현실과 영화 속의 간극을 몸소 느꼈다면, 그의 작품에서는 아주 평범한 외모의 배우들이 세련됨은커녕 10년 전에나 입었을 스타일을 하고는 낡고 허름한 모텔 아니면 여인숙 카운터에서 "여기 대실 얼마예요?"라고 묻는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영화를 구분 지을 만한 이음새가 없었다. 

 

범속했다. 시시콜콜했다. 갑자기 대화 중에 깎아놓은 사과를 줌인하는 것처럼 난데없는 카메라 기법도 여전하다.

 

이 집이 자가니 전세니 하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가지고 주지 말라는 이웃과의 이야기도. 술김에 어떤 남자랑 잠자리를 갖게 돼서 줄기차게 그 남자가 스토커 짓을 하는 것도. 꽤나 시시콜콜하다. 이런 게 영화가 될 수 있어? 싶을 정도로 사소하다.

 

도망간 여자에 등장하는 감희를 비롯하여 감희의 친구들 전부 여성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영순 언니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별거 중이니 별 상관없다는 수영 언니나 오래전 감희의 남자 친구를 가로챈 것 같은 우진이까지.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별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안온한 느낌을 준다.

 

홍상수 감독은 그의 작품에서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루거나 대학교수와 대학원생이 연애하는 모습을 종종 그려서 아무래도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겠거니 했다. 도망간 여자가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이야기가 조금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감희는 친구들의 집을 연이어 방문한다. 그의 말로는 이번이 남편과 결혼하고 5년 만에 처음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77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이 소리를 3번이나 반복해서 듣는다. 감희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 말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우린 5년 동안 단 한번도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어. 그 사람 생각이 그래.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 있어야 하는 거래. 항상 같이 있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2016년도에 개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캔들이 터졌다. 2015년 홍상수 감독과 영화를 찍으며 인연이 시작됐다고 하니 감희가 말하는 결혼하고 5년 동안이라고 말하는 게 무언가 그들의 이야기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우진이 감희에게 남편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번역을 하고 교수를 한다고 했다. 넌지시 홍상수 감독이 투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감희와 우진이가 대화할 때 우진이는 자기 남편 흉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말이 너무 많고 인터뷰마다 북콘서트마다 같은 말을 계속한다고. 그것도 무척 진지하게 말해야 되는데 항상 똑같은 말을 계속할 때마다 그 말이 진심일 수가 있겠어?라고. 

 

난 우진이의 말을 듣고 감희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꽤나 진중한 표정을 하고는 세뇌를 하는 듯이 아니면 자기 주문을 외는 듯이 남편과 떨어져 본 적이 없고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날 사랑함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언가 의아했다.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면 내포하고 있는 진심이 모호해지게 되니까. 반복적으로 친구들에게 남편과 본인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똑같은 말을 복기하는 연유가 뭘까 하고 생각했다.

 

언니들을 만날 때마다 좋은 집에서 산다고 인테리어가 예쁘다고 칭찬하고 고기며 파스파며 맛있다고 먹는 그 모습이 어쩌면 감희의 심연이 조금은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본인보단 자유로워 보이는 언니들의 삶을 동경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도망친 여자는 감희일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함께한 7번째 영화인 도망친 여자는 제70회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고 16회 부쿠레슈티 영화제에서는 각본상을 수상했다. 국내 여론과는 다르게 해외에서는 큰 호평을 받았다.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하는 건 몹쓸 짓이기에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상업영화엔 출연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배우 김민희이지만 상업 영화 속 그의 화려한 모습이 그리운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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