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3. 20:14ㆍFilm
애비규환 결말 후기 l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
애비규환 More than Family (2020)
감독 : 최하나
주연 : 정수정 장혜진 최덕문 이해영 남문철 강말금 신재휘
애비규환 줄거리
아직 고등학생인 남자 친구 '호훈'과 충동적인 사랑으로 예상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토일'은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부모님에게 임신 사실을 고백했다. 토일은 도대체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는 부모님의 질책에 누굴 닮았는지 스스로 직접 확인하겠다며 희미한 단서 몇 가지만으로 친아버지를 찾고자 대구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친아버지는 오히려 안 찾느니만 못한 상황인 듯하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남자 친구인 호훈이 없어졌다.
※ 애비규환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애비규환은 최하나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이며 배우 정수정의 첫 독립 영화이자 주연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놀랐던 건, '배우 정수정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나?'라는 것이었다. TV를 전혀 보지 않기 때문에 그가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여태껏 보여주었던 평소와 비슷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내지 않았나. 토일이에게는 아이돌 Fx의 크리스탈이 전혀 없다.
크리스탈을 떠올리면 화려하고 냉소적인 미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애비규환을 보며 그런 크리스탈의 모습이 떠오르질 않았다. 머리를 질끈 하나로 묶고 화장기가 없는 얼굴에 어디서 난 건지 특수한 프린팅이 된 티셔츠를 입고 나타는 토일이에게서 아이돌 크리스탈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하나하나 언급하진 않을 테지만 아이돌 출신으로서 연기력에 대한 검증 없이 주연으로서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배우를 탓하기보단 소화할 수 없는 배역을 맡긴 감독과 제작사가 훨씬 문제라고 본다. 애비규환을 보며 배우 정수정이 무척 영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로서의 첫 필모그래피로 독립영화를 선택한 것도. 본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는 것도.
최하나 감독이 2016년 한예종 졸업작품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는 애비규환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무척 새롭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임신하는 설정은 빤할 수 있어도, 얽힌 실타래를 지난하게 풀어가는 과정은 조금도 클리셰라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최하나 감독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이혼을 실패한 결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혼은 자기 삶의 오류를 인정하고 고치기로 한 결정이란 점을 보여고 싶었다"라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두려움에 떨던 토일이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토일이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다. 아직 애기란 소리다. 남자 친구와 콘돔 없이 관계한 탓에 임신을 했다. 토일이가 임신을 하고 당혹스러워하거나 부모님이 알게 돼서 눈물바람에 질책하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토일이의 부모님도 그렇지만, 남자 친구 호훈의 부모님은 예고 없이 손주가 생긴 게 오히려 반가우신 눈치다.
토일이는 혹여나 부모님이 아이 낳는 것을 반대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임신 후 5개월이 지난 상태에서 부모님에게 임신했다고 고백했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과 호훈이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 모두 부모님과의 상의 없이 혼자 한 결정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그에 수반되는 모든 선택을 오롯이 혼자 짊어진다는 것이 엄마로서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토일이는 부모님에게 야침 차게 임신 후 계획을 정리한 PPT까지 만들어 선보였지만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되더나.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계획한 것은 보기 좋게 비웃으며 수없는 변수와 오류를 안겨주는 게 우리네 인생이지 않나. 영화 애비규환은 토일이가 지니고 있는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된다는 오류'를 명징하게 지적한다.
토일이는 재혼가정에서 자란 아이다. 조금씩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부모님 말을 잘 듣거나 사근사근한 딸은 확실히 아니었다. 부모님과 한바탕 한 토일이는 대체 자기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며 친아빠 찾기에 나선다. 이 영화의 이름이 '애비규환'인 이유다. 다양한 예비아빠를 만나고 우연찮게 진짜 아빠를 찾고 나자 이번엔 뱃속 아이의 아빠인 호훈이 사라져서 호훈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빠들 속에서 아빠를 찾는 과정이면 사실 그 과정은 아빠를 찾는다기 보다 토일이 스스로를 찾는 과정에 더 가깝다.
최하나 감독이 애비규환을 통해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틀려도 괜찮다.
오류가 나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특수해도 괜찮다.
안 돼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망해도 괜찮다.
아이 아빠인 호훈은 1년을 꿇어서 미성년자는 아니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다. 타인의 인생은커녕 스스로의 인생도 아직 책임질 수 없는 아이다. 토일이가 아직은 대책 없는 호훈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토일이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거면 되지 않나. 그거면 전부 다 되지 않나. 토일이는 똑 부러지니까 어떻게든 잘 살 테고 호훈이는 어떻게든 토일과 아이를 책임질 가장이 될 것이다.
설사 아니면 또 어떻나.
아이를 임신해놓고도 전혀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던 토일은 옛 고향 친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아이 임신한 거) 무섭지.. 무서운데 무서운 것보다 궁금한 게 더 커."
두려움보다 자신의 아이가 어떨지가 더 궁금했던 토일이는 과감히 아이를 세상에 내놓겠다는 선택을 했고, 자신의 계획 대로 호훈과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결혼 직전 아빠가 된다는 두려움에 도망간 줄 알았던 호훈 때문에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호훈이 사라진 일로 예상치 못한 변수를 처음 맛본 토일이는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확신할 수 없으므로 결혼 자체를 접으려는 생각도 하였지만 엄마와의 대화 후 인생에 있어서 모든 일에 100%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완벽하지 않거나 혹은 틀릴 수도 있는 선택임에도 호훈과 결혼하는 것을 택했다.
영화 애비규환엔 심성이 고운 사람들만 등장한다. 보통의 시나리오엔 악인을 꼭 넣어서 그 악함과 대비되는 방향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데 그 흔한 빌런 하나 없이도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하면서 극을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퍽 대단하더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그랬지만, 착한 사람들만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것 만으로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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