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4. 13:17ㆍFilm
영화 소울 명대사 리뷰 l 행복하세요 꼭
소울 (Soul) 2020
감독 : 피트 닥터, 캠프 파워스
주연 :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그레이엄 노튼, 레이첼 하우스
영화 소울 줄거리
뉴욕에서 시간제 음악 교사로 일하던 조는 교장 선생님에게 정규직 제안을 받음과 동시에 인생의 꿈이었던 최고의 밴드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 드디어 바라던 순간이 왔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 영혼이 되었다. 이후의 세상으로 넘어가기 전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졌고 모든 멘토들이 포기해버린 영혼 '22'의 멘토가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을 참 좋아한다. 사람의 감정을 의인화하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감정은 소중하며 기쁨만큼 슬픔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고마운 영화여 서다. 영화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을 만들었던 피트 닥터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현학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 어떤 성격으로 살지를 부여받는다는 설정도 재밌다. 우리는 그런 타고난 성정을 바꿔보려 부단한 노력을 하는데 말이다.
가장 오랫동안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었다던 시니컬한 영혼 '22'는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구로 가기 싫어하는 것도. 자신의 불꽃을 찾지 못하는 것도. 금메달을 딴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 가드너의 인생 파노라마를 '당신의 전당'을 통해 보고는 "이렇게 시시한 삶을 살았으면서 왜 자꾸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 영화 소울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태어나기 전 세상
사주를 볼 줄 안다. 몇 해 전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사주를 독학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꽤나 오만하다. 쉬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어딨다고 세상 혼자 괴로운 줄 알고 사주를 공부한 것이. 아주 깊게 공부하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생년월일시를 안다면 어느 정도는 사주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익혔다. 개인적으로 사주를 크게 믿지는 않는다. 고작 한 사람이 갖고 태어난 8글자가 그 사람의 유구한 인생을 대변할 수 없다.
다름 아니라 사주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람이 윤회한다는 가정 하에 사람이 받고 태어난 사주는 그 사람의 전생의 업보를 고려하여 이번 생에 받게 된 성적표라는 이야기가 있어서다. 전생에서 잘한 것들은 현생에 귀인이 되어 나타나고, 전생에서 풀지 못한 업보는 현생에 전가되어 고난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조 가드너가 죽음 이후의 세상에 넘어가지 않아서 그 이후의 세상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혼들이 다시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돌아와 성격을 부여받고 자신의 불꽃을 찾아 지구에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소울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던 영혼들이 상냥해질지 시니컬 해질지를 부여받는 것을 보고 사람이 갖고 태어난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가 떠올랐다. 피트 닥터 감독이 고려하진 않았겠지만, 불교의 윤회사상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꽃
"나는 걷는 걸 좋아해. 나는 사탕 먹는 게 좋아."
사람이 부여받은 불꽃은 목적이 아니다.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지. 난 왜 이렇게 특출 난 게 없지. 왜 이렇게 재주가 없지. 뭐가 이렇게 다 그저 그렇지."라고. 이런 생각은 종국엔 "왜 태어난 거지?"까지 다다른다.
이발을 하는 조의 친구 '데즈'는 해병을 제대하고 나면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갑자기 아프게 되었고 수의사 학교보다 수의학을 배우는 것보다 이발을 배우는 게 저렴했기 때문에 이발 학교를 다녀 이발사가 되었다. 수의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데즈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고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컷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손님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데즈는 만족하는 고객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데즈는 참 영리한 사람이다.
영혼 22는 행여나 잘못된 불꽃을 집어 들어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일생을 살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데즈는 수의사가 되었어도, 이발사가 되었어도, 그 무엇이 되었더라도 행복했을 것이다. 역시 조 가드너도 중학생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을 해도, 밴드의 일원이 되어 연주했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조 가드너는 비로소 꿈을 이루고 나서야 자신이 이미 그 꿈을 이루고 살았던 걸 깨달았다.
행복
몇 달 전 글쓰기 강의를 수강했다. 총 6회 차 정도의 짧은 수업이었지만 수업 전 항상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했다. 강사님이 에세이의 주제로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에세이를 써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던 적이 있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주제는 그 어떤 에세이 주제보다 어려웠다.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를 생각했다. 막연하게 '행복'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보려고 행복했던 것이 언제였더라를 끊임없이 복기했다. 은근 멍청한 구석이 있다.
강사님이 다른 수강생들에게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어떤 이는 "캠핑 가서 불멍을 할 때가 행복해요."라고 답했고 어떤 이는 "남편 출근시키고 애들 학교 보내고 저 혼자 커피 마시면서 집에 있을 때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그때 생각했다. "맞아. 행복은 별 게 아니잖아."
난 추운 겨울 따뜻한 물에 입욕제를 풀어 아이처럼 거품목욕을 할 때 행복하다. 햇살이 비치는 나른한 오후 침대에 누워 오디오북을 들을 때 행복하다. 가장 예쁜 내 고양이 임자를 품에 안으면 세상이 내 품에 있는 것 같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비로소 9월이 됐을 때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속 따스한 가을볕과 선선한 바람을 좋아한다. 자기 전 남자 친구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느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하고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잠들 때 행복하다.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하라면 이렇게 염세적인 나도 수백 가지를 읊어낼 수 있다.
"나는 걷는 게 좋아. 나는 사탕이 좋아. 난 피자가 맛있어."
영혼 22에게 조 가드너는 이것이 흔한 노후생활이라 말했지만, 이것 모두 불꽃이 될 수 있다. 이것 모두 행복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느끼고 맛볼 수 없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지구로 떨어진 영혼 22에겐 모든 것이 신기했고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볼 때.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린아이를 볼 때. 머리를 자르며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었을 때. 다채로운 맛의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지하철 속 이름 모를 음악가가 불렀던 곡에 감동하여 베이글을 나눠주었을 때. 지하철 환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을 때.
그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갑자기 울컥 사무쳤다.
태어났으니까 산다란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태어났으니까 모두 소중하다. 모두 고귀하다. 모두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하다.
하늘이 맑아서. 바람이 시원해서. 빨래가 잘 말라서.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초콜릿이 너무 달콤해서.
살아야지.
마지막으로 좋았던 소울의 대사를 소개해드리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모두 행복하시길.
평생의 꿈을 이룬 날 밴드 연주를 마친 조 가드너와 그를 고용한 도로테아 윌리엄스가 나누었던 대사
다음엔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내일 밤 다시 연주하는 거죠. 왜 그래요, 선생?
저는 이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어요. 다른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고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물고기는 나이가 많은 물고기에게 가서 물었대요. '저는 바다를 찾고 싶은데 바다는 어디에 있나요?'라고요. 나이가 많았던 물고기는 '당신이 있는 곳이 바다예요.'라고 대답했대요. 그러자 물고기는 '여기요? 이건 물이잖아요. 전 바다에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어요. 내일 봐요.
조 가드너가 위대한 사후로 가기 전 영혼 22가 어떻게 지구 통행증을 받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의 대사
22의 목적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뭐라고요?
22의 불꽃이요. 음악? 생물학? 걷기?
우린 목적은 부여하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피아노가 있잖아요. 제가 타고난 거요. 내 불꽃이에요.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에요. 당신의 열정, 삶의 의미.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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