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3. 10:00ㆍFilm
넷플릭스 그 남자의 집 결말 해석 l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악귀
그 남자의 집 (His House) 2020
감독 : 레미 위크스
주연 : 운미 모사쿠, 소프 디리수, 맷 스미스
그 남자의 집 줄거리
부부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바다를 건넜다. 수많은 죽음을 뒤로하고 영국에 발을 내디뎠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겨우 영국 정부로부터 임시 거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영국에서 부부의 집은 그들에게 가장 안온한 장소가 되어야 하지만, 가장 위협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 남자의 집을 보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감독인 레미 위크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서칭 하는 것이었다.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경험이 녹진히 스며있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고, 그가 난민으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소재의 작품을 만들기 어려웠을 것 같아서.
레미 위크스가 진행하였던 인터뷰를 읽어 보았다. 레미 위크스는 런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 남자의 집에서 부부가 겪었던 모든 일들은 그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살아가는 난민의 입장만을 다루진 않는다.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무척 강하기 때문에, 단순히 호러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난 단순히 귀신 나오는 호러 영화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것만 놓고 보자면 완전히 잘못 고른 셈이다.
※ 그 남자의 집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망명
이 부부는 망명하는 과정에서 딸을 잃었다. 영국 땅을 밟긴 했지만 오랫동안 집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 부부가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는 그 신에서, 부부와 부부를 인터뷰하는 인터뷰어의 태도는 무척 두드러진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비스킷을 드시는지? 나 같은 경우엔 과자나 초콜릿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땐 과자를 먹지 않는다.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짧은 러닝타임에 많은 것을 농축한 영화를 볼 때도 행여 중요한 것을 놓칠까 싶어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는다.
뜬금없이 과자 이야기를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부부를 인터뷰하는 심사관들은 비스킷을 먹으며 난민들을 심사한다. 크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일. 설렁설렁 티비쇼 보듯 할 수 있는 일. 인터뷰어가 비스킷을 입에 넣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를 이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레미 위크스 감독이 무척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반대쪽에서 질문을 받고 있는 부부는 심사관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다리를 공손히 모으고 앉아 마치 기도를 하듯 양 손을 맞물리고는 간절하게 대답한다.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어필한다.
이들의 인터뷰는 심사관들에겐 티비보듯 시시껄렁한 직무이지만, 난민 부부에겐 그들이 죽을 고비를 뚫고 도착한 영국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린 문제이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것은 영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며, 일정 기간을 주고 이들이 영국에 살기 적합한지를 평가하는 트라이얼 기간일 뿐인데도 말이다.
난민
그 남자의 집은 다양한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배정받은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을 때, 남자는 기사님에게 이 버스가 어디로 가냐고 물었지만 기사님은 대답은커녕 부부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도착하고 나자 부부의 짐을 쓰레기 버리듯 도로 한복판에 던져버린다. 그는 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부부를 쳐다보지 않았다.
상황이 매우 불합리하기 때문에 기사님에게 항의를 할 수도 있지만 부부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다. 그의 무례한 태도에 분노하는 기색도 없었다.
여자는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진을 받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때,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흑인 학생들에게 길을 묻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므로 악센트는 있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알아듣기에 어려움은 없다. 그 학생들은 여자가 어디에 가고 싶어 하는지 분명히 알아들었음에도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척을 하며 교묘하게 조롱한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종차별이다.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눈치챈 여자가 등을 돌리자 너네 나라로 돌아가며 욕지거리를 한다.
이 부부는 그런 괄시와 대접이 너무나도 당연해질 만큼 만연하게 겪어온 것이거나, 아니면 난민 입장으로서 행여나 문제를 일으킬 시 강제 추방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거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보다도 전자일 거라고 느껴졌던 이유는, 그 부부에게서 자신들을 향했던 만연한 적대감에 대한 분노를 찾을 수 없어서다. 부부는 그들이 감내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지쳐 보였고 무력해 보였다.
은행원
그들에게 배정된 사회복지일을 담당하는 맷 스미스가 영국인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고 본다.
남자는 그가 영국에 오기 전 본국에서 은행원이었다고 말했다. 맷 스미스 역시 이 일을 하기 전엔 은행원이었다고 말했다. 은행원이었던 그가 어떤 연유로 난민들에게 집을 배정받는 생업을 갖게 되었을까.
내 배가 불러야 남 배곯는 소리 듣는다는 말을 아시는지. 예수님 부처님 아니고서야 내가 여유가 있고 내가 안정이 돼야 남이 어려운 것도 보이고 남이 배고픈 것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권고사직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당했을 맷 스미스는 자신은 부부가 배정받은 집보다도 훨씬 작고 열악한 집에서 살고 있다. 은행원이었지만 난민들의 집을 배정해주는 일을 한다. 그럼에도 이 집이 맘에 들지 않으니 집을 다 허물고 다른 집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남자가 너무 과도한 걸 요구한다 느끼는 건 어쩌면 퍽 당연할 것이다.
딸
여자는 딸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우리 딸이 죽었잖아."
이 부부는 둘만 있을 때도 영국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본인들의 언어로 대화하지 않고 영어로 대화한다. 망명하는 과정에서 딸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여자에게 딸 얘기 좀 그만하라고 여기에 정착해서 살아야 한다며 다그치는 남자를 보며 당연히 그들에게 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딸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총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남의 딸을 데려다가 우리 딸이니 제발 버스에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본인들의 딸이 아니다. 남의 딸을 데려갔다.
그렇게 남의 딸아이와 함께 지중해를 건너는 과정에서 아이는 사망했다.
그 남자의 집은 과거와 현실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부부가 망명하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건 딸아이뿐만이 아니다. 총이 난자하는 아수라 속에서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뒤로한 채 부부는 살아남았다.
트라우마가 공포가 됐을 때
'그 남자의 집'이란 이름은 심플하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뒤로한 채 죽은 이들을 밟고 넘어 살아남은 부부를 좇은 악령은 사실 그들 본인이 아니었을까. 부부가 저질렀던 악행 끝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이 그제야 발현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렇게라도 죗값을 치르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부부가 행했던 악행을 악마로 타인화하여 그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살아남았던 과정에서 부부가 겪었던 트라우마는 그들이 비로소 얻게 된 안락한 집에서 괴물로 형상화되어 발화한다.
그리고 부부는 그들이 뒤로하였던 수많은 마을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그 집에서 함께 하며 끝이 난다. 그들이 저질렀던 악행과 만행을 오롯이 껴안고 죽은 이들과 함께 그 집에서 살아가겠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 남자의 집'에서 남자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우린 좋은 사람이에요. 저는 착한 사람이에요"였다. 누굴 만나든. 어디를 가든. 어떤 주제로 대화를 하든. 대화의 끝엔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였다. 자신도 모르게 시종일관 병적으로 본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어필하고 각인시켜야 하는 사람. 그가 한껏 웃음을 머금은 채 상대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마다 위화감이 들었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드라마적인 요소와 사회 이슈를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감독의 시선이 편향되어 있지 않았고 다양한 입장을 적절하게 다룬다. 가볍게 재미로 볼만한 영화를 찾는 분들에겐 이 작품을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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