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17. 19:11ㆍFilm
조제 결말 후기 l 이별의 연유가 중요할까
조제 (Josee) 2020
감독 : 김종관
원작 : 다나베 세이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이누도 잇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주연 : 한지민 남주혁 허진 박예진 이소희
조제 줄거리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조제는 책을 사러 나섰다가 우연히 영석을 만났다. 조금씩 천천히 서로에게 스민 조제와 영석은 서로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공유했다.
※ 영화 조제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멜로 영화라면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하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 그리고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텁고 명성이 자자한 원작을 리메이크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다. 리메이크 영화를 볼 때마다 원작과는 얼마나 다르게 만들어냈는지. 얼마큼 잘 변주하여 그려냈는지를 중점에 두고 영화를 보는 편이어서 조제 역시 김종관 감독이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그의 시선으로 얼마나 잘 변용하였을지를 살폈다.
원작의 조제가 조금 더 용감하고 당찬 구석이 있다면, 영화 조제의 조제는 그보다 서정적이고 쓸쓸하다. 원작의 츠네오가 자유분방한 느낌이라면, 조제의 영석은 훨씬 점잖다.
영석은 어느 지방의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 조건 없이 도와줄 줄 아는 청년임과 동시에, 남자 친구가 있는 담당 교수와 잠자리를 가지는 대범한 학생이기도 하다.
원작 속 조제는 처음부터 츠네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말도. 식구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겠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영화 조제의 조제는 처음으로 영석과 살이 맞닿았던 날. 만약 영석이 떠난다면 모든 사람에게 네가 날 범했다고 말할 거라는 겁박 아닌 겁박(?)을 한다. 조제는 그만큼이나 영석이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원작 조제와 비견하였을 때 훨씬 연약하며 의존적이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만큼 방 안에서 갇혀있고 싶었다던 조제는, 물고기를 보러 수족관을 가서는 영석이 자신을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읊조린다.
원작에서 조제가 물고기를 결국 보지 못하고, 물고기 컨셉으로 꾸며놓은 모텔방에서 츠네오와 함께 하던 날. "난 원래 혼자였고 또 혼자가 될 테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던 것과 무척 대비된다.
궁금했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이별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원작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이별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잠시 외출을 하는 것처럼. 곧 다시 돌아올 것처럼. 조제와 웃으며 이별하고 나온 츠네오가 길 한복판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함께 가슴이 저릿해졌던 이유는, 대단한 이벤트가 있어서 이별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너무나도 싫어져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멀어져 이별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기 때문이리라.
스민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흠뻑 스며든 사람이 내 삶에서 사라지는 건, 이별한 순간보다 그 이후가 훨씬 힘든 법이거든.
평온한 나날 속에서 시점은 5년 후로 이동하였고 조제와 영석은 한적한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여행을 즐기는 모양새다. 영석이 조제에게 계속 곁에 있을 거라고 말했던 거. 정말이었구나. 원작과 다른 결말을 보여주려는 거구나. 너희는 이별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조제의 곁에 있던 영석은 한순간 사라진다.
사회인이 된 영석의 곁엔 5년 전부터 그의 곁을 맴돌던 대학 후배가 있다. 대학생 때도 경제적인 이유로 판자보다 얇아서 다 들린다는 고시원에서 살던 수경은 맞춰진 그들의 청첩장을 내밀며 겨울에 결혼하는 것이 싸고 좋다 말한다.
영화 조제는 조제와 영석의 이별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석과 조제가 이별하게 된 이유가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아예 이별의 장면을 담지 않았나 보다 생각했다. 이제 막 사회에 나가려는 영석에게 장애인인 조제가 퍽 버거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떠나지 않을 거라는 그 마음이 자연스레 소원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자신을 짝사랑하던 수경에게 마음이 갔을 수도 있다.
이별이 이별이지. 구구절절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네가 나에게 걸어오던 발걸음 소리를 기억한다던 조제는 "날 떠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날 범했다고 말할 거야."라고 말했지만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영석과 성숙한 이별을 하였던 모양이다.
다행인 건,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조제가 너무나도 잘 살고 있다는 것. 원작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조제의 뒷모습을 보고 조제는 씩씩하게 잘 살아가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던 것처럼, 영화 조제의 조제 역시 혼자서 자동차도 운전하며 방 안 세상에만 갇혀있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되지 않았다.
조금은 늦게 조제를 보았다. 혹평이 많았거든.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원작에서 모티브를 적절히 차용하고 김종관 감독의 시선으로 변주하여 원작과 다른 조제와 영석을 만들어 낸 것. 그리고 왜색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원작은 원작대로.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조제대로 좋았다.
조제를 재밌게 보셨다면 원작도 꼭 보시길 추천드린다. 리메이크 작과는 달리 두 캐릭터에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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