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1. 15:54ㆍTV series
워킹데드 시즌10 19화 리뷰 l good and evil
이번 시즌을 다 끝내면 통틀어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이번 회차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지난 회차에는 데럴의 플래시백으로 몇 년 전 우연히 만나 함께했던 여자와의 이야기를 보여줘서 늘 데럴을 쫓아다니던 커다란 강아지가 언제부터 그의 곁에 있게 된 건지 알 수 있었고, 이번 회차에선 신부님인 게브리엘이 어떤 사람으로 변모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회차로 꾸려졌다.
게브리엘과 애론은 식량을 찾기 위해 꽤 먼 곳까지 나왔다. 아무리 찾아도 식량은 찾을 수 없었는데 그러던 도중 안식처를 찾았다. 둘은 위스키와 얼덜결에 잡은 보어 고기로 만찬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하게 술에 취해 속마음을 털어놓던 둘을 보며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는데, 역시.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다.
안식처의 원 주인이 나타나 게브리엘과 애론에게 러시안 룰렛을 권한다. 그자는 이미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선'이라는 것은 진작에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동생이 자신을 배반했고, 모두들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만든 이론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하려 게브리엘과 애론에게 러시안룰렛을 권한 자다.
의심과 증오와 혐오로 가득찬 그에게 아직 세상엔 좋은 것이 남아있다 설득하고 회유한 것은 가브리엘이었다. 애론이 자신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잘나 그 남자는 애론을 저지시켰고 결박시켰던 끈을 풀어주며 자신의 이름이 메이스라고 밝혔다. 게브리엘의 이야기에 감복한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망한 세상에서 홀로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아집으로 지내왔던 메이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을 보며 '그래, 역시 세상은 살만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였으니까.
결박된 끈이 풀어지자마자 게브리엘은 메이스를 죽여버렸다. 자신의 동생을 죽인 위험한 사람을 우리 마을로 데려갈 수 없다고 하면서.
게브리엘은 이전 시즌에서 릭의 일행이 사람을 죽였다고(식인을 하는 집단이었다) 밝혀 알렉산드리아에서 퇴출시키려 했다. 그런 세상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 하는 자였다. 이유 불문하고 사람을 야만적으로 죽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어떤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누구든 좋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였다.
수많은 집단을 만나고 게브리엘이 겪었던 무수한 일들은, 선과 악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게브리엘에게 심어준 듯하다. 상황이 안전하지 않을수록 사람은 더욱더 보수적으로 변하니까.
허나 니건이 변한 것처럼. 메이스 역시 기회가 있었다면 변화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메이스를 죽이고 나서 그가 지내는 거처를 찾아내 통조림 식량을 무심히 챙겨가는 게브리엘을 보니 몹시 허탈한 느낌이 들었는데, 동시에 릭이 등장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전의 어느 회차에서 릭이 어떤 낯선 이에게 호의를 베풀어 자신의 샌드위치를 주었지만, 그는 릭을 배신했다. 릭은 그를 손쉽게 죽이고는 그에게 들려있던 샌드위치를 다시 집어 주머니에 넣어 돌아온다.
게브리엘이 술에 취해 한 이야길 들어 보면, 이미 이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갈 일도, 세상에 신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 것 같다. 악한 사람은 세상의 도덕적 관념이 아니라, 자신들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서 행동한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걸 보며 게브리엘과 메이스가 몹시 비슷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편향적인 시선으로 구축한 그릇된 사고가 진짜라고 믿고, 타인에게도 그게 맞다 강요하는 거.
게브리엘이 여태껏 겪어온 참담한 상황에서 메이스를 죽인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생의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동생을 오랫동안 구금해온 그는 어쩌면 끝끝내 악한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근데 난 믿고 싶다. 안 되도 또 믿고 싶고, 일이 어그러지더라도 또 믿고 싶다.
결국은 선한 것이 이긴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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