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6. 21:59ㆍFilm
낙원의 밤 결말 줄거리 l 박태구는 옳았다
낙원의 밤(Night in Paradise) 2021
감독 : 박훈정
출연 :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낙원의 밤 줄거리
조직의 타깃이 된 남자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여자가 삶의 끝자락에서 서로 맞닿은 이야기를 그린 느와르 작품.
신세계, 브이아이피, 마녀를 연출했던 박훈정 감독의 6번째 작품.
신세계는 내 뇌리에 강력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너무 무서워서 영화관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끝까지 보았던 영화였거든.
이번 <낙원의 밤>은 전작 신세계처럼 느와르 작품이지만 그것과는 다른 층위의 느와르라고 느꼈다. <신세계>가 거친 하드보일드였다면, <낙원의 밤>은 몹시 서정적이며 낭만적이다. 느와르 장르와 서정적이라는 것은 상반적이지만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퍽 쓸쓸하며 공허하다.
결국 모두가 죽어버리는 엔딩에서. 낙원이 절대 아닌 그곳에서. <낙원의 밤>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조차 작품의 쓸쓸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꽤나 어울리는 제목이 됐다.
※ 낙원의 밤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엄태구
처음 배우 엄태구를 만난 건 <택시운전사>였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택시 안 필름을 눈 감아준 군인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저 배우 누구지?"하고 추후 작품을 눈여겨볼 만큼 충분한 임팩트를 줬다.
엄태우 배우는 목소리가 참 독특하다. 그리고 그것이 몹시 잘 어울린다.
재밌게도 엄태구가 연기한 배역의 이름이 "박태구"인데, 꼭 엄태구가 박태구인 것처럼 찰떡이다. 박태구 역할에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그에게 주연 역할을 맡긴다는 것이 모험이었을 텐데, 박훈정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박태구는 자신의 인생 전부였던 누나와 조카를 황망하게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못 할 일이 없다. 태구도. 재연도. 가슴 깊이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그 둘이 짧은 시간 동안 깊은 유대를 쌓았는지도 모른다.
<낙원의 밤>이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이유
본지 오래되어서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박정훈 감독의 전작 <신세계>는 오롯이 남성들의 이야기로 마초 영화였다. 배우 송지효가 등장하긴 했지만 무척 소비적인 캐릭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세계>가 작품에 힘을 뺄 수 있는 쓸데없는 로맨스를 빼고, 철저히 느와르 서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장점이었다면 <낙원의 밤>은 로맨스를 가미했다.
그것이 극의 분위기를 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느와르 영화를 몹시 아름답고 감성적이게 만든다.
사랑하는 누나와 동생을 잃고 살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여자.
낙원 같은 섬 '제주'에서 삶의 끝자락에 버티고 서있는 여자와 남자의 조우.
이 작품 꽤나 클리셰적인 요소가 많고 극적인 부분도 많지만, 작품 컷 하나하나 쓸쓸하고 처연한 것이 것이 담뿍 묻어난다.
그리고 태구와 재연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 '재연'
재연은 조폭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여성이다. <신세계>와 대비되는 것이 있다면, 재연은 소모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라는 점이다.
조금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할 말도 다 한다. 삼촌은 어떻게든 재연을 살리려고 하지만, 재연은 이미 오래전에 그런 기대는 접어둔 듯 보였다. 잃을 게 없으면 주저할 게 없고, 재연은 그래서 용감하다.
엔딩신은 '재연'의 독보적인 활약으로 이루어지는데, 태구를 보내고 나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아침이 되자 조폭들이 묵었던 펜션에 전화를 걸어 어떤 횟집을 추천해주셨나 묻는다.
조용히 횟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자신에게 걸고 저속한 농담을 하는 조직원들에게 말 한마디 지지 않고 전부 다. 죽여버린다. 삼촌을 죽인 사람을. 엄마 아빠를 죽인 사람을. 태구를 죽인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
그 장면이 몹시 강렬한데. 한편으론 공허하다.
재연은 이미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었고, 삼촌도 잃었고, 짧은 시간이지만 깊게 소통했던 태구도 잃었다. 태구를 보내며 몇 달 일찍 가면서 쪼잔하다고 했지만, 재연은 태구가 떠난 바로 다음날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
서사의 빈틈을 대체하는 캐릭터의 핍진성
태구와 재연. 그리고, 잔인하긴 하지만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셈도 치를 줄 아는 마이사도. 그 외 다른 캐릭터가 하나하나 살아있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답다.
잔인하지만, 서정적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낙원의 밤>이 지니고 있는 서사의 빈틈을 매워주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그 모든 클리셰와 짜 맞춰진 전개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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