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1. 18:19ㆍFilm
미나리 영화 결말 후기 l 모두에게 감응한 이유
미나리(Minari) 2020
감독/각본 : 정이삭
출연 : 스티븐 연, 한예리, 앨런 킴, 노엘 케이트 조, 윤여정, 윌 패튼
미나리 줄거리
80년대 아칸소에 정착한 한국 가족. 농장을 가꿔 가족들에게 무언갈 이뤄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는 열심히 농장을 가꾸고 엄마 역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가 그들과 함께 살게 됐다.
※ 미나리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대단한 이벤트가 있지도 않다.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화 충격이나 가치관의 다름이 아니라, 비빌 언덕 하나 없는 곳에서 가족이 똘똘 뭉쳐 살아가는 이야기.
늘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해왔다. 한 곳에서 오래 정착해서 산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20살부터 타국에서, 타지에서 살았고 그것이 나와 잘 맞았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했다. 내 고향에도 내 모국인 대한민국에도 크게 미련이 없었다. 타국에서 느끼는 향수병은 얼마든지 괜찮았다. 외로운 거. 낯선 거. 그런 건 전혀 문제가 안 됐다.
근데 미나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기라면 못 갈 것 같아. 저런 상황이면 못 갈 것 같아. 잘 살 자신이 없어.'라고.
<미나리>는 참 신기한 게, 난 엄마가 아닌데도. 가장이 아닌데도. 할머니가 아님에도.
제이콥의 마음을. 모니카의 심정을. 순자의 혜안을 모두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정착하고 잘 사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변변치 않은 집에 사는 걸 엄마에게 내보였을 때. 부모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 모니카는 엄마 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런 딸아이의 심정을 다 헤아리시고, 바퀴 달린 집이라 재밌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감사했다. 몹시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가 그런 곳에 살고 있는 걸 보셨으면 억장이 무너지셨을 텐데도, 딸 앞에서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딸이 속상해할까 봐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역시 어른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 음식 먹고 싶을 테니 고춧가루며 멸치며 바리바리 싸가시고, 딱딱한 밤을 아이가 먹으면 아플까 봐 밤을 쪼개어 손주에게 건네주시고. 손주가 오줌을 먹이는 장난을 쳐도 아이 때리지 말라고 감싸신다.
심장이 조금 좋지 않은 데이빗이 천당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하니, 순자는 데이빗을 꼭 안으시고는 "할머니가 너 죽게 안 놔둬. 누가 감히 우리 손자를 무섭게 해. 걱정 마. 할머니가 너 죽게 안 놔둬. 누가 감히 우리 손자를. 괜찮아. 천당 안 가도 돼."라고 말씀하신다.
순자가 데이빗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던 부분이었어서. 그런 순자를 보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맏아들로서 형제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제 식구를 위한 안온한 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가족에게 멋진 아빠, 근사한 남편이 되고 싶어서.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내고 이뤄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골 마을에서 농장일을 하는 제이콥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가장의 무게를 지고, 타국에서 제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압박감이 얼마나 컸을지 말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병아리를 구분할 수 있는 일을 마치고 공장 밖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제이콥을 보니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80년대. 미국. 아메리칸드림.
지금처럼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네임벨류가 있던 때가 아니다. 80년대 미국인들에게 '한국'이란 국가를 떠올리면 한국 전쟁. 빈국이라는 것밖에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게 어땠을지 감도 오지 않는다.
제이콥은 아들 데이빗에게 수놈은 맛도 없고 알도 못 낳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 폐기시킨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쓸모가 없으면 폐기되는 수컷 병아리처럼. 미국에서 이민자라는 존재가 그런 것이었을까.
몹시 한국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당연히 감화되었을 것이고, 꽤나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낯선 땅에 발을 붙였던 모든 이민자 역시 감응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은 어떠한 국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국적을 운운할 필요가 없다.
미나리 미나리 했던 이유가 있었네.
영화는 퍽 사실적이다. 사실적인 것을 넘어선 하이퍼 리얼리즘.
조금의 꾸밈도 없다. 미화도 없었다.
영화를 보며 자꾸 눈물을 흘렸다.
제이콥이 가장의 무게를 견뎌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고.
모니카가 엄마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죄스러워 울어버리는 것을 보고.
순자가 데이빗을 꼭 안고 아무도 우리 손자 못 데려간다고 으름장을 놓고 손주를 안심시키는 것을 보고.
데이빗과 앤이 순자가 실수로 불을 내 작물을 다 태워버리고는 집과 반대 방향으로 가자 순자를 막아서고는 "우리 같이 집에 가요"라며 순자의 손을 잡고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것을 보고.
다 태워 없어졌어도.
가족이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가족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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