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6. 18:14ㆍFilm
아이들은 즐겁다 (Happy Children) 2021
감독 / 각본 : 이지원
원작 : 허5파6 <아이들은 즐겁다>
출연 : 이경훈, 박예찬, 홍정민, 박시완, 옥예린, 이상희, 윤경호, 공민정
아이들은 즐겁다 줄거리
병원에 있는 엄마와, 바빠서 외박이 잦은 아빠. 그렇지만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 덕분에 9살 난 다이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병환이 짙어진 엄마가 병원을 옮겼고, 다이는 친구들과 함께 청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다이는 엄마에게 주려던 선물과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한다.
천진하고 무구하기만 하길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언제나 나를 무너뜨린다.
새로 이사 간 집. 이사를 갔다면 분명 아이가 들떠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느낌적으로 이전보다 좋지 않은 집으로 이사 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좋은 이유로 이사를 한 것이 아닐 거라고. 다이의 아빠는 아이를 두고 일이 바쁘다며 나가버린다.
다이의 엄마는 병원에 있다. 다른 환자들은 다이의 엄마보다 훨씬 연배가 있어 보였고, 게 중에는 두건을 쓰고 계신 분도 있었다. 영화에서 다이 엄마의 병명을 알려주지 않지만 느낌상 암병동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이의 엄마는 병원 욕실에서 다이의 머리를 감긴다. 다이는 엄마에게 선물한 화분에서 여름에 노란 꽃이 필 거라며 그때쯤엔 엄마가 집에 올 테니 같이 그 꽃을 보자고 한다. 엄마는 "응~"이라고 대답했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엄마는 안 것이다. 내년 여름에 다이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다이는 9살이다. 엄마가 몹시 필요한 나이다. 그 나잇대의 아이들은 혼자서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엄마의 손을 타지 않는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금세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다이의 아빠는 화물운전사로 일한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이 바쁜 것도 있지만, 부러 집에 가지 않고 차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한다. 집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모든 것들을 회피하고 싶어서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물론 거기에는 다이도 포함된다.
다이의 아빠는 다이의 친아빠가 아니다. 다이의 엄마는 "내가 죽어도 다이 키울 거야?"라고 묻는다. 다이의 아빠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이의 아빠는 과묵한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다. 그가 성실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것이 나는 몹시 안심이 되었다.
다이는 책을 좋아한다. 책벌레다. 책을 많이 읽어서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받아쓰기는 100점이다. 사교육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재경이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맨날 놀기만 하면서 받아쓰기를 100점 맞은 다이가 밉다.
다이는 단짝이 둘 있다. 민호와 유진이다. 유진이는 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사는 조부모 가정이다. 민호의 가족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은 없었지만, 아마도 민호의 부모님은 생계로 무척 바빠서 민호를 좀 더 챙기기 어려운 분들일 것 같았다.
다이와 민호, 유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면 그들만의 아지트로 간다. 민호는 다른 친구들보다 운동신경이 발달했고, 유진이는 미술에 소질이 있다.
선생님은 지난 주말 가족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냐고 묻는다. 다이는 엄마 아빠와 갯벌에 가서 조개를 잡아먹었다고 말했다. 재경이는 학원만 다녀왔다고 말한다. 노잼이라고 말하는 민호에게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낫거든?"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다이가 주말에 가족끼리 여행 갔다는 것이 거짓말일 것이라 단정하고 한 말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다이는 이전에 엄마를 보러 간 병원에서 유진이를 만나자 엄마가 병원에 계신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빠가 팔이 조금 다쳤다고 거짓말했다. 9살의 아이에겐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는 것이 콤플렉스일 수 있다.
엄마가 편찮으시다는 것을 친구들이 아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설사 다 큰 성인이라고 해도 그런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남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유진이의 할머니가 뺑소니로 사망한다. 가해자에게서 합의를 많이 받아 폭탄 돌리기 하던 유진이를 이 집 저 집에서 맡겠다고 난리다. 유진이는 졸지에 전학을 가게 됐다. 그리고 다이와 민호는 '시아'와 가까워진다. 시아는 다이처럼 책을 좋아한다.
다이의 엄마는 청주의 한 요양병원으로 입원했다. 어른인 나는 안다. 요양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엄마에게 선물한 화분에서 노란 꽃이 폈다. 다이는 엄마에게 이 꽃을 보여주고 싶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국 민호, 시아, 재경과 함께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시내버스를 타고 3시간 40분이 걸리면, 엄마가 있는 요양병원에 갈 수 있다. 이 겁도 없는 꼬맹이들은 그렇게 청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이는 병원에 도착해 엄마를 본다.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심장이 저릿했다. 엄마에게서 생의 기운이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9살인 다이에게도 그것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다이는 엄마에게 주려던 노란 꽃이 망가져서 죽을까 봐 도로변에 심어주었단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고." 다이가 망가진 꽃을 도로변에 심어주는 것이 꼭 엄마를 내포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망가진 꽃이 화분이 아니라 흙속에서 뿌리를 내딛고 사는 것처럼, 다이가 엄마를 하늘로 보내주는 것이겠구나 하고. 다시 만날 그때까지.
다이는 엄마와 이별했다. 엄마는 다이에게 동화책을 남겼다. 다이는 엄마를 잃었지만, 그를 사랑하는 아빠와 친구들이 있으니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클 것이다.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서 10대 친구들이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면 "너네 나이에 겪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크고 나면 그보다 더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하는 꼰대.
나의 유년기를 반추해본다면, 초등학생 때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요즘의 나는 내 얼굴만 한 크기의 리본핀을 칼라별로 구입해서 매일매일 하고 다니는데, 아마 초등학생 때라면 아무리 예뻐도 안 했을 것이다. 무리에서 튀는 것이 싫었고, 친구들에게 놀림받기가 싫었으니깐. 9살 난 애들이라고 해도 다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다. 그것은 어른의 것보다 결코 하찮지 않다.
다이는 엄마가 아프다.
유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다이보다도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워 보인다. 결국 할머니가 사망하고 왕래도 없던 친척집에 가야 했다.
시아는 가정에서 오빠의 그늘에 가려 부모님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재경이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엄마에게 부족하단 소리를 듣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교실이 떠나갈 만큼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다이를 보며 안심했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시아와, 영어문제집을 푸는 재경이는 그대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학 간 유진이까지 포함해서 이 다섯이 절친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윤가은 감독이 떠올랐다. 김보라 감독이 떠오르기도 했다. 당연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떠올랐다. 어린아이들의 무구하고 천진한 표정은 힘이 있다. 그것은 나를 무력하게 하기도. 씩씩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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