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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엔의 사랑 결말 줄거리 l 도전했으니 실패도 해보는 거야 벡엔의 사랑 결말 줄거리 l 도전했으니 실패도 해보는 거야

벡엔의 사랑 결말 줄거리 l 도전했으니 실패도 해보는 거야

2021. 6. 4. 12:00Film

백엔의 사랑 (100 Yen Love) 2014
감독 : 타케 마사하루
각본 : 아다치 신
주연 : 안도 사쿠라, 아라이 히로후미, 이나가와 미요코, 사오리

 

백엔의 사랑 줄거리

서른두 살의 아치코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백수다. 이혼 후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여동생과 대판 싸운 어느 날, 엄마는 둘 다 집을 나가버리라고 선언하셨다. 이치코는 자신이 나가겠다며 자취방을 얻었고, 밤에 자주 들리던 백엔샵에서 야간에 근무하게 됐다. 아치코는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가져가는 노숙자, 바나나만을 사가는 남자, 기분 나쁜 변태 동료, 우울증에 걸렸지만 인간미 넘치는 점장. 그러다가 생전 처음으로 사랑하는 남자도 만나게 됐다.

 

큰 기대를 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다. 아마 일본의 B급 감성이 가득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웬걸. 아마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 들 때마다 반복해서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늘었다. 영화 리뷰를 작성하면서 여간해선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라고는 잘 말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꼭 한 번쯤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응원하고 싶어 진다. 아니. 열심히라는 대단한 부사가 붙지 않더라도(우리는 '열심히'라는 말. '노오력' 따위의 말에는 진절머리 나니까) 무언가를 도전하고 해 보려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 진다. 내가 힘이 닿는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서른두 살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처음으로 사랑을 하고 처음으로 무언가에 골몰하여 있는 힘껏 도전하는 이치코를 나는 정말이지 응원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 백엔의 사랑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32살 백수 이치코


안도 사쿠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 만난 적이 있다. 몹시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독특하고 매력 있는 마스크여서 기억하고 있다. 영화를 보며 이치코의 역할을 안도 사쿠라만큼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치코를 32살 백수라고 규정짓기엔 무척 부족하다. 백수도 다양한 백수가 있으니까. 이치코는 구직을 하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다. 이것에는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회사에 넣는 것이나, 혹은 자신의 스킬을 연마하여 라이센스를 취득하든가 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데 이치코는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정말 퓨어한 백수다.

 

이치코는 골초다.

이치코는 조카와 함께 비디오 게임을 즐긴다.

엄마의 도시락 가게에서 일손을 돕는 동생과 달리 이치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동생이 만든 돈가스를 맛없다고 욕할 줄은 알지만, 제가 만들 줄은 모른다.

이치코의 관리되지 않은 머리는 이미 한 뼘 이상 뚜껑이 자랐다. 이치코의 상태를 대변해주는 하나의 장치일 텐데, 하필이면 꽤나 밝은 색으로 염색해서 새로 자란 까만 머리는 더욱 두드러진다. 아마 잘 감지도 않는 것 같았고.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을 혼자 키우며 열심히 일하는 동생의 눈엔, 언니인 이치코가 한심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다. 매일 날을 세우던 둘은 부모님 앞에서 심하게 싸웠고, 엄마는 둘 다 나가버리라고 하셨다. 이치코는 자신이 나가겠다며 아마도 처음으로 집 밖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남의 돈을 버는 이치코


이치코가 취직한 곳은 밤에 식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자주 가곤 했던 백엔샵이다. 이치코가 면접을 볼 때 점장님은 이왕이면 심야에 근무하는 것이 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하며 야간 일을 권했고 이치코는 야간에 근무하게 됐다.

 

아치코가 백수 시절 편의점에 갔을 때 점원의 인사에 말로 인사를 하진 않지만, 목인사는 꼭 하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서는 날이 가득 서있고 세상을 모두 놓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밖에서는 조금 부끄럼이 많고 사회성이 없긴 해도 행동 하나하나가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다.

 

그를 오랫동안 고객으로서 만났던 점장이 이치코를 바로 고용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이유다.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이치코는 백엔샵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가져가는 노숙자. 그리고 선한 심성을 지녔지만 우울증이 있는 점장님. 시종일관 ㄱ소리 시전 하는 변태 동료. 어째선지 맨날 바나나만 사가는 남자까지.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치코는 그렇게 적응을 해나간다. 

 

이치코는 처음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 자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가 생겼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이치코는 왜 자신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냐고 물었다. 상대의 대답이 가관인데 "거절당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이치코는 조금 시무룩했지만 이내 잊어버린 듯했다.

 

바나나맨인 카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나나를 잔뜩 사고 돈이 없으니 이걸 대신 주겠다며 자신의 경기표를 건넸다. 일부러 엄청나게 많은 바나나를 사고 일부러 현금이 없다면서 표를 건네는 남자. 이 남자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연애하는 데에 몹시 서툰 사람이구나 싶었다.

 

카노는 이치코가 자신을 좋아해서 귀찮아 죽겠다고 거짓말하던 동료를 흠씬 패주었다. 이치코가 단순히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데이트를 신청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복싱을 시작하게 된 이유


이치코가 사회에 나와서 그의 인생을 뒤흔들만한 이벤트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 하나는 시종일관 불쾌한 느낌을 풍기던 동료 직원에게 물리적으로 폭행당한 후 성폭행당한 것.

 

사랑하는 사람은 복싱 선수였다. 37세가 돼 더 이상 복싱을 할 수 없다 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이와 접점을 늘리고 싶어서 복싱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이치코는 처음부터 끝까지 ㅁㅊ사람 같았던 동료 직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물리적으로 제압당하고 폭력을 행사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처음이라고 말하자 그런 말을 듣고도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야'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이치코는 제 스스로 강해지고 싶어서 복싱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에 미친 듯 골몰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치코가 복싱을 진심으로 시작했다는 것이지.

 

도전했으니까 실패도 하는 거야


도전을 해 보았으니 실패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해 봤으니 거절도 당해 보는 것이다.

사랑을 해 보았으니 이별도 하는 것이다.

사랑했으니 죽을 만큼 아파 보기도 하는 것이다.

태어났으니 죽기도 하는 것일 테고.

 

여자는 32살까지 프로로 데뷔할 수 있다. 이치코는 딱 32살이다. 복싱은 장난이 아니라며, 관장님도 반대했지만 이치코는 결국 도전했다.

 

링위에서 이치코의 상대를 봤을 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치코는 절대 이길 수 없겠구나.

 

이치코는 단 한 번의 펀치도 날리지 못한 채 두드려 맞는다. 정말 두들겨 맞는다. 피떡이 될 정도로 맞는다. 이렇게 맥을 못 추나 싶을 정도로 맞는다. 1라운드가 끝나고 입을 헹구자 핏물이 나오고, 숨에 헐떡이느라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서도 괜찮냐고 묻는 관장님의 말에 "괜찮아요. 안 힘들어요.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이치코를 보며 울어버렸다. 

 

대견해서였는지. 기특해서였는지. 아니면 그의 도전에 감화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맞으면서 한 대도 때리지 못하는 것이 속이 상해서였는지..

 

이치코의 경기를 지켜보는 엄마와 아빠와 동생이 있다. 딸아이가 속절없이 맞아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것을 보며 부모님을 눈을 떨군다. 동생은 피투성이 된 언니를 보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의 연인이었던 카노는 이치코에서 지더라도 일어나서 지라고 소리 지른다. 이치코는 일어나서 상대의 배를 가격한 후 그가 잘 쓰던 왼쪽 손으로 펀치를 날렸다. 단 한 번이었다. 물론 그것은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하는 충격을 주진 못했고, 그 후에 날아온 상대의 공격에 이치코는 나자빠졌다.

 

물론 이치코는 졌다. 3:0으로 졌다. 경기가 끝난 후 이치코는 상대를 안으며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자신과 대결을 해준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서 한 소리였을 테다.

 

씩씩하게 경기를 마치고 나온 이치코는 마치 엄마를 본 어린아이처럼, 카노를 보자마자 아이처럼 엉엉 눈물을 흘린다.

 

이기고 싶었다고.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다고. 패배자가 아니고 싶었다고. 성공해보고 싶었다고. 

 

우리 이치코는 처음으로 지는 법을 배웠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는 것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치코는 앞으로도 수 없이 실패하고 질 테지만 괜찮다. 실패는 경험이라는 결괏값을 낼 테고 그를 한껏 성장시킬 테니. 이것은 내가 경험해봤으므로 자신할 수 있다. 실패는 나를 성장시킨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이치코의 또래로 그와 비슷한 나이다. 이치코의 이야기에 이렇게도 감화됐던 이유일 테다.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 결심한 게 있다면, 실패할까 주저하지 말고 무조건 해보자는 것이었다. 20대의 나는 실패가 두려워서, 일을 벌이기 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몸을 사렸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고,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든 나에게 좋은 영감을 준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이치코는 조금씩 변해간다. 이치코를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이치코가 변했다는 것을 단번에 아셨다. 그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생기와 웃음. 복싱을 한다는 이치코의 말에 아빠는 "그래, 젊을 땐 뭐든 도전해야지."라고 하시자 "나 안 젊어."라면서 멋쩍게 웃었다.

 

이치코.  넌 젊어.

 

우리가 나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할 수 없는 건 아이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32살에 복서로 데뷔한 것처럼.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어. 이치코.

 

보통 읽는 분들을 생각해서 글의 분량을 조절하는 편인데, <백엔의 사랑>의 리뷰는 몹시 길어졌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해버렸다. 그만큼 이 영화가 너무나도 좋았다. 이치코가 사회인으로서 거듭나는 것이 좋았다. 이치코의 도전과 실패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복싱이든. 사랑이든. 관계이든.

지는 법을 배우는 건, 아주아주 중요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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