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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각의 여름 l 현실아 너를 어쩌면 좋을까 영화 생각의 여름 l 현실아 너를 어쩌면 좋을까

영화 생각의 여름 l 현실아 너를 어쩌면 좋을까

2021. 9. 4. 14:04Film

생각의 여름 (Midsummer Madness) 2020
감독 : 김종재
주연 : 김예은, 곽민규, 오규철, 신기환

 

생각의 여름 줄거리

시인 지망생인 현실은 공모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써서 제출해야 하지만 내 맘 같지 않다. 시가 자꾸만 산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현실은 산으로 가기로 했다. 현실이의 꼬박 하루의 여행기. 내일의 현실은 오늘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잔잔히 진행되다 마지막에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하는 영화다.

 

현실을 연기한 배우 '김예은'은 일본 배우인 안도 사쿠라의 느낌이 났다. 전형적으로 아름다운 미인은 아니지만, 독특한 마스크와 함께 그 자체로 매력이 뛰어나 빨려 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배우.

 

<생각의 여름>은 시인 지망생인 현실의 하루를 꼬박 그려낸 작품이다. 공모전은 다가오는데 아무리 골몰해도 한 줄도 써지지 않자, 영감을 얻기 위해 무작정 산으로 떠났고 여정 중에 언니 선배 친구 전 남자 친구를 만난다. 

 

언뜻 보기엔 비슷한 하루를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현실은 미세하게 달라져 있다. 현실이 시인이어서 그렇고, 솔직한 시를 썼기 때문일 테다.

 

 

※ 영화 생각의 여름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시인 지망생 '현실'


현실은 시인 지망생이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지만 아직 등단은 하지 못했다.

사랑하던 남자는. 그래서 동거도 했던 남자는. 자신을 버렸다.

현실을 버린 것처럼, 자신의 자질구레한 짐까지 모두 버리고 떠나버렸다.

애잔하게도 현실은 아직 전 연인을 잊지 못했다.

현실의 가장 친한 친구 주영은 현실의 전 연인인 민규와 바람이 났다.

민규는 그래서 현실을 버렸다.

하물며 주영은 단짝 친구의 남자와 바람폈던 것을 시로 써 등단까지 했다.

 

환장할 노릇이다.

와.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제정신으로 사는 현실이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이쯤 되니 나는 간절히 바라게 된다.

현실아. 제발 잘 되어라.

제발 등단하고 제발 보란 듯이 성공해서

민규 새끼며 주영이 년이며 깔아뭉개버리자.

라고..

 

말 참 ㅈ같이 하네


돌아 돌아 현실은 민규를 만난다. 시간을 오래 뺏지 않겠다 하자 민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으며 놀이터에 나왔다.

 

현실은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냥 민규가 보고 싶었을 테다.

 

현실은 민규에게 마지막 생일 선물이라며 인형 뽑기에서 뽑은 인형과 시를 건넨다. 

 

민규는 인형은 좋아하지 않으니 필요 없고 마음만 받겠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이제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네. 마치 같이가치를 상실한 느낌?"

 

민규가 저렇게 말할 때 속으로 생각했다.

'ㅈ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현실이는 나와 거의 같은 소리를 했다.

"말 참 ㅈ같이 하네."

 

달라진 내일


다음날의 현실이는 묘하게 달라져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걷기 싫고 뛰기 싫은 어제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은 다르다.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웃음이 여려있다. 똑같이 호구와 산책하고, 공원에 비치된 기구로 운동을 하고, 똑같이 양치를 하고, 똑같이 뒹굴지만 현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웃음이 어려있다.

 

영화가 끝날 즈음, 화면이 까맣게 되어도 현실이가 시를 쓰는 타이핑 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아무리 누구에게나 쉬이 감응하는 타입이어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또래의 여성에게만큼 감응할 수는 없었을 테다.

 

황인찬 시인의 시와 김종재 감독의 영화


<생각의 여름>에는 황인찬 시인의 다섯 편의 시가 등장한다. 이렇게도 절묘할 수가 있나 싶다.

<희지의 세계>에 수록된 '실존하는 기쁨', '현장', '오수'와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 수록된 '소설'이다.

 

시를 영화에 접목하는 시도가 재밌다. 시라는 것이 영화의 영상미로 채워지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맨 마지막 시.

 

'소실'을 짓고 난 뒤 현실은 한층 성장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조우하게 한 시였기 때문일 테다.

몇 해 전 윤상의 '넌 쉽게 말했지만'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마치 내가 그러한 이유로 이별한 듯 심장이 덜컥했다. 눈물을 흘렸다. 현실이가 <소실>을 읊을 때도 난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듯 해 울어버렸다.

이 시만큼은 꼭 소개하고 싶다.

 

< 소실 >

 

해변에 가득한 여름과

거리에 가득한 여름과

현관에 가득한 여름과

숲 속에 가득한 여름과

교정에 가득한 여름

물 위에 앉은 여름과

테이블 맞은편의 여름과

나무에 매달린 여름과

손 내밀어 잡히는 여름

잡히지 않는 여름

 

눈을 뜨니

여름이 다 지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선풍기는 돌아간다

등이 젖은 남자애들이 내 옆을 지나가고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을 뽑는 이가 있다.

걸어놓은 교복은 빠르게 말라가고

 

또 보다 많은 것들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래도록 그것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이 손을 언제 놓아야 할까

그 생각만 하면서

 

-황인찬 <희지의 세계>

 

 

9월이다.

찌는듯한 여름도 드디어 가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올해도 다 지나가는구나 싶어 조금은 쓸쓸한 요즘이다.

토요일 오후에, 프렙의 곡을 들으며 밀린 리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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