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8. 18:44ㆍTV series
기대를 많이 하던 작품이었다. 다름 아니라,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니까.
한국 드라마를 전연 보지 않는데도 <시그널>과 <킹덤>을 봤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온 자라면, 누구나 깊이 감응할 수밖에 없을 만한 플롯이었고, 장르물을 사랑하는 나에게 그의 작품은 언제나 만족감을 줬다.
킹덤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전지현 님이 등장했고, 지난 7월 스핀오프 작품인 <킹덤: 아신전>이 릴리즈 됐다.
김은희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의 시선에 몹시 감탄했다. 시대극에서 한국은 늘 '약자'였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나약한 식민지 조선. 혹은 오랑캐에게 능욕을 당하는 비참한 조선. 몽골에게 침탈당하는 약해 빠진 고려.
<킹덤 아신전>은 아신이란 인물이 반기를 품게 된 정당한 서사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늘 수탈당했던 조선이 아니라, 반대로 이민족을 철저하게 이용하며 배신하는 조선이 등장하는 것이다. 낯설었다. 그런 조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처음이었어서.
킹덤 3을 제작하기에 앞서 끼워 맞추기 구실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악역인 '아신'의 탄생기를 킹덤 시리즈와 별개로 탄탄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김은희 작가가 역사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 공부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쓸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 속에서 우리 역시 똑같이 비겁했음을. 똑같이 야만적이었음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런 김은희 작가가 이번엔 '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애초에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운 점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별로다.
<지리산>은 중국의 OTT 서비스인 아이치이로부터 300억 투자를 받아 제작되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된다.
근데 우리 다 알지 않나. 중국 돈 먹은 작품이 종국에 어떻게 되는지.
PPL
너무나 노골적이고 작위적이다. 그것이 극의 흐름을 깨게 만든다. 차라리 제품에 대한 언급 없이 슬쩍 나오는 것이 오히려 입소문을 탈 수 있는 방법 아닐까. 꼭 트루먼쇼를 보는 것 같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레인저의 삶을 그려내는데, 시종일관 등장하는 PPL 때문에 극에 몰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가 촌스러워진다.
특히 네파 광고가 굉장히 심한데, 전지현이 모델인 네파는 현재 판매 부진을 겪는 중이다. 하나 애초에 네파가 핫한 브랜드인 지부터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네파를 즐겨 입는 연령층이 2030이 아니잖아.
올해 아빠 생신에 네파의 바람막이와 카라티를 선물해 드렸다. 그 브랜드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4050이 즐겨 입는 브랜드인데 아무리 배우들이 네파를 입고 등장해도, 젊은 층의 구매를 불러일으킬 순 없는 거잖아. 지현 언니 탓이 아니지.
조악한 CG
둔한 편이어서 CG 등에 특별히 민감하지 않은데도, 심한 수준이었어서.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큰 산이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얼이 스며있는 곳이고 그러다 보니 관련된 설화도 무궁무진하다. 지리산의 장엄하고 웅대한 대자연의 모습은 몹시 매력적이지만, 그와 별개로 조잡한 CG는 아쉬움이 남는다.
배우
눈에 익은 실력파 배우들이 등장한다. 주조연 모두가 그랬다. 그나마 새로운 인물을 찾으라면 <스위트홈>에 등장했던 고민시 정도.
근데, 전지현 씨가 이렇게 연기를 못했던가. 별그대를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건데, 이런 장르극을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고, 서이강의 너무나도 단조로운 연기톤에 '응?' 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당연히 극에 몰입이 안 되는 건 덤.. 배우 전지현이 연기를 못한다고 느낀 첫 번째 작품인 것 같아.
이것과는 별개로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지현 언니를 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언니 모습은 똑같아. 참 신기해.
굳이 영적인 존재여야만 했나
레인저였던 <강현조>는 현시점 산악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다. 그는 빨치산이 서로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만들었다는 심벌을 이용해서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의 위치를 짚어준다.
20년을 가로질러 무전으로 연락했던 <시그널>은, 이런 위화감이 없었는데, 솔직히 잘 몰입이 안 돼. 강현조는 어째서인지 조난자의 생사와 위치를 환영으로 보았고, 그를 해한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상정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지리산에서 펼쳐지던 굿판에서, 어린 소녀가 현조에게 죽어도 산에 묶일 팔자라고 말하던 복선처럼, 그의 몸은 병원에 있지만, 혼은 지리산에 있는 모양새다.
이 방법이 최선이었을까... 아쉬워.
아무리 김은희 작가였어도 '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20년 전 산 관련 드라마가 한 번 나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이유가 있을 테니까. CG는 뒤로 하더라도, 과도한 PPL은 김은희 작가여도 무리수였을 거야. 제작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오징어게임같은 작품을 기대할 수가 있겠나.
김은희 작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6화까지 꾸역꾸역 시청했다. 그 기대감만으로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시청하는 건 무리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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