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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풍경 줄거리 결말 해석 l TV 시네마 통증의 풍경 줄거리 결말 해석 l TV 시네마

통증의 풍경 줄거리 결말 해석 l TV 시네마

2021. 11. 10. 15:47TV series

KBS 드라마 스페셜 2021 TV 시네마 통증의 풍경
연출 : 임세준
극본 : 임세준, 송슬기
출연 : 안내상, 길해연, 백지연, 차순배, 이신기

 

통증의 풍경 줄거리

빈촌. 낡고 어두운 월세방이 가득하다. 성직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신부 '가부리엘'은 자신이 사람을 죽였으며 앞으로도 사람을 죽일 거라고 예고하는 한 사람의 고해성사를 듣는다. 병원을 가보라고 권하고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점차 사람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고해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상정한다.

 

 

※ <통증의 풍경>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빈촌이 아니었다면 진행될 수 없었던 플롯

 

몇 달 전 <청년 고독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혼자 얼마나 눈물을 삼켰는지 모른다. 고독사라고 하면, 노인이 대다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사는 많이 접했다.

 

하나 '청년'과 '고독사'라는 두 어휘는 '사탕'과 '핸드폰'같이 전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잖아. 너무 낯선 두 단어의 조합은 내 생각보다 깊게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문제였더라고.

 

너무나도 젊은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사회로부터 단절돼서. 혹은 조직에게 배척당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분들의 사연이 소개됐다.

 

가장 기억 남는 분은, 겨우 30대 중반에 유명을 달리한 남성분이다. 사망하고 몇 달이 지나서 발견되신 분이었는데, 옷장에 옷이 겨우 다섯 벌 정도 남짓뿐이었다. 30대 중반이면 사회생활을 활발히 할 나이고, 옷이 많이 필요할 연령인데, 기본적인 티셔츠와 바지를 모두 합쳐도 다섯 벌이었다. 그 흔한 수트 한벌 걸려있지 않았다.

 

냉장고에 음식 다운 음식이 하나도 없었던 것.

방 안에는 컵라면 용기와 술병만이 있었던 것보다도,

너무나도 간소했던 그의 옷가지가 내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그것 만으로도, 그분이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소외된 자들


<통증의 풍경>은 허름한 빈촌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해가 잘 들지 않아 집안에선 낮과 밤을 구별하기가 어렵고, 하염없이 가파른 언덕들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낡은 집에서 월세 살이를 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근처에 위치한 성당에서 근무하는 신부 '가브리엘'은 소설 속, 혹은 미디어 속의 전통적인 성직자와는 굉장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브리엘 신부가 처음 등장한 곳은, 카지노였다.(기계를 통한 도박인데, 정확한 용어를 모르겠음) 당연히 권태로운 삶을 사는 중년 남성일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그 후 다음 장면에선 가브리엘은 신부님의 옷을 입고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해하는 신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파친코를 하던 그 남성은, 무려 신부님이셨던 거다.

 

고해를 듣는 '신부님'도,

신부님이 자신의 말을 발설할 수 없다는 것을 악용하는 '노파'도,

그런 노파에게 살해당하는 청년과 어르신도.

 

소외된 이들이라고 뭉뚱그려도 될까..

 

연쇄 죽음이 단순 고독사로 추정되는 이유


20대 청년이 목을 매 사망했고,

젊은 청년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했던 노인 역시 목을 매 사망했다.

 

같은 마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기이에 죽음에 주민들도 대부분의 경찰들도 타살을 염두하지 않는다.

유서가 없다는 것과, 특정할 수 있는 죽음의 동기가 없음에도 당연하게 자살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런 집에 사는데,

이런 꼴로 사는데,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이들인데,

그깟 유서 없이,

특정한 동기 없이,

죽어버릴 만도 하지.

 

라는 태도.

 

수상쩍은 죽음에 의문을 품는 건, 곧 정년퇴직을 앞둔 여성 형사뿐이다.

그마저도 고해를 들은 가브리엘 신부가 형사에게 언급하지 않았다면, 죽음의 배후에 노쇠한 할머니가 있다는 것을 누구도 상정할 수 없었을 테다.

 

부촌이었다면,

그들이 약자가 아니었더라면,

폐지를 주워 살아가던 노파는 경찰의 눈을 피해 그렇게도 많은 이들을 죽이지 못했다.

 

모호한 연쇄살인의 동기


특별한 원한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노파가 유영철이나 강호순처럼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야만 살 수 있어서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 어떤 이유도 살인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지만, 이 할머니의 경우는 굉장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신부님에게 고해하는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굉장히 경멸한다. 그런 사람쯤이야 벌레나 다름 없으니 얼마든 죽어도 된다는 태도다.

 

할머니는 이름도 없다. 폐지를 주워 살아가는 할머니는 한 번이라도 삶에 있어 누군가에게, 혹은 조직에서 소속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삭막한 세상은 할머니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눈치 잴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것을 할머니 역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관조적인 서사


감독은 작품 속 냉혹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덜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의 삶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진행된다.

 

결국 노파는 잡히지 않았다. 

 

<통증의 풍경>은 1화 <희수>와는 굉장히 다른 층위의 문제를 그려내는 에피소드였다. 희수보다 훨씬 현실과 밀접한 이슈를 녹여냈다고 본다.

 

누구도 소외된 이들의 삶은 궁금해하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그들의 삶을 조망하는 플롯은 그 자체로 희소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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