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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시즌1 8화 결말 리뷰 l 미국이 만든 조선인의 드라마 파친코 시즌1 8화 결말 리뷰 l 미국이 만든 조선인의 드라마

파친코 시즌1 8화 결말 리뷰 l 미국이 만든 조선인의 드라마

2022. 4. 29. 20:02TV series

파친코 (Pachinko) 2022
감독 : 코고나다, 저스틴 전
원작 : 이민진의 동명 소설
출연 :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정은채, 노상현, 정웅인

 

파친코 줄거리

고국을 떠나 있는 힘껏 생존해 냈던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꿈과 삶을 그려낸다. 일제 강점이 부산의 영도 갯마을서 태어난 '선자'는 스토리의 중심에 있다.

 

※ 애플 TV 파친코 시즌1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미국이 만든 조선인의 드라마


애플 TV에서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첫 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이거 대하드라마구나. 토지 같아."였다. <파친코>에서는 박경리 작가나 박완서 작가의 작품 같은 느낌이 났다.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작품. <파친코>는 그런 작품이었다.

 

무려 4대에 걸친 이야기였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80년대 일본 버블이 한창일 때까지. 한국의 부산 영도, 일본의 오사카, 미국의 뉴욕까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환영받지 못하는 타국에서 삶을 지속해온 선자와 그의 남편, 그의 아들, 그의 손자의 서사가 진행된다.

 

5화까지 공개됐을 때부터 봤다. 에피소드 다섯 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미국 플랫폼에서 미국인들이 만든 이야기였으므로 <파친코>는 철저히 미국인들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이것은 미국 티비 시리즈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에 <팝 컬처 해피 아워>가 있다. 파친코를 다룬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그들은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두 국가 간의 이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국인들이 이렇게 핍박받는 삶을 살았던 건 파친코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했다. 출연했던 모든 패널이 그렇게 말했다.

 

한국인인 나에게는 생경한 내용이 아니었으나(오히려 몹시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미국인인 그들의 눈엔 꽤나 낯설었나 보다. 난 그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지만, 굳이 관계없는 타국의 이야기니 상관이 없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우리도 서유럽의 국가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를 어떻게 식민지배했는지 알고 있어도, 결국 여행하고 싶어 하고 동경하는 나라로 유럽을 꼽는 것처럼. 그들 역시 일본의 잔인했던 면모를 알고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극동의 조그만 나라의 역사를 그들이 어떻게 알까 싶다. 세계사 배울 때 한국전쟁 파트에서나 코리아가 잠깐 등장하겠지. 우리의 기구한 근현대사를 그들이 무슨 수로 어떻게 알아. 

 

<파친코>는 이주의 역사였다. 피지배국의 역사였다. 때때로 에피소드가 전부 끝난 뒤에는 실상에 대해 에피소드를 부연하는 짤막한 자막을 함께 내보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7화의 메인 주제였던 요코하마의 '관동대지진' 같은 것.

 

7화는 세상 양아치인 한수가 왜 그런 양아치가 됐는지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서사였다.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가겠다는 선자에게 "거기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겪어봐서 알아."라고 말하며 비웃었던 이유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서사였으니까.

 

그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탄다는 헛소문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의 소설 <오싱>에서도 그 당시 죄 없는 조선인이 수없이 살해당했다는 워딩이 있을 만큼 일본인에게도 익숙할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 소용돌이에 '한수'가 있었다. 한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를 도왔던 일본인들 때문이었다.

 

그 에피소드에서 주목할 것은, 자신보다 약했던 분노의 대상을 찾던 일본인들 틈 사이에서 조선인을 보호해주던 일본인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단 두 명이었지만 그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파친코>가 전반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경우에 따라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이 드라마 없는 얘기를 하진 않는다.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에 기반한 서사였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꽤나 완곡하고 옅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선자가 금자의 집에서 밥 한술을 뜨고는 조선 쌀인 것을 바로 알아차리던걸 에피소드를 보고 그게 말이 되냐는 소리가 있던데, 난 그게 왜 못 알아들을 건지 모르겠다. 내 나라 쌀 맛을 왜 모르겠나. 더 맛있고 맛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국의 쌀맛이기에 알아차린 것일 텐데.

 

솔직히 쌀 맛이라고 하면 60년대 이후로 품종 개발 않고, 남으면 군부대 납품하고 그래도 남으면 가축 사료로 줘버리는 한국 쌀보다 꾸준히 품종 개발한 일본 쌀이 더 맛있다. 쌀 맛 구분한 게 뭐라고 뭘 그렇게까지 확대 해석을 하는지.

 

<파친코>에는 다름으로 인한 다양한 차별이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멸시를 받고.

미국에 가서는 동양인이기에 멸시를 받고.

 

더 훌륭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지만, 그보다 못한 회사에 들어가 멍청이 틈 속에 있어야 자기의 자리가 생긴다는 여직원의 말도.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리고 있음에도 동료들이 승진하는 걸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솔로몬도.

 

너는 절대 그 사람들처럼 되지 못해. 그들은 네가 조금 더 노력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다고 믿을 정도까지만 너한테 여지를 줄 거라던 하나의 말도.

 

그들은 각기 다른 입장이지만, 같은 층위의 문제를 겪고 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궁금해졌다. 왜 우리였을까. 왜? 왜 1000억이라는 규모를 투자해서 미국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4대에 걸친 조선인의 이주의 역사를 선택했을까.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라면 우리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우리만큼 악독한 수준으로 당했던 국가는 우리가 아니어도 많다. 근데 왜 조선인의 얘기일까. 왜 애플티비가 한국인을 선택했을까. 난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도 이주의 역사였다. 미국인의 영화였지만, 한국인의 이야기였다. 나는 타국으로 떠나 삶을 꾸리는 '이주'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다만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바라고 꿈과 희망을 품었던 이주였다면, <파친코>는 벼랑 끝에 몰려 선택권이 없었던 이주였던 게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우리의 서사를 선택했던 건, 우리 얘기가 전 세계적으로 팔리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지난했을 식민지를 겪으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우리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상정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우리와 다르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민족이나 순응했던 민족들도 많았으니까. 

 

파이널 8화 에피소드에서 남편인 이삭은 경찰에 잡혀갔다. 선자는 김치를 담가 시장에 나가 팔기로 했다. 아주버님은 예전에도  선자가 자신의 돈문제를 해결했던 것을 못마땅해했던 것처럼,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하고 선자에게 심술을 부린다. (난 그것을 심술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당장 아이 둘을 먹여야 하는데 선자에게도 선택권이 없었을 것이다. 

 

김치를 큰 통을 정갈하게 나눠 담고 시장으로 향하는 그에게 멸시와 시선과 모욕의 말이 수도 없이 떨어진다. 그들에게 김치는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다. 선자와 김치를 보고 코를 막고 손사래를 친다. 오줌을 갈겨버리겠다는 이도 있었다. 나는 선자가 담갔던 김치가 한국인을 함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자는 자리를 잡아 짧은 일본말로 김치를 판다. 파는 도중에 에피소드가 끝이 났지만 아마 선자는 김치를 다 팔았을 거고, 남편이 없었어도 두 아이들을 배 곯리지 않으면서 훌륭하게 잘 키워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선자'는 조선 여성을 상징하는 그 자체 같았다. 배우지 못해 글 조차도 읽고 쓸 줄 모르지만,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리했다. 사리분별이 명확했고 올곧았다. 선자는 부산에서 가장 좋고 가장 큰 집을 사다 줄 테니 자신의 첩을 하라던 한수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것은 부끄러운 삶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를 무척 사랑하면서도 그랬다.

 

선자는 정도를 걷는 사람이었다. 부끄러운 것이 뭔지 알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알았다. 바르고 올곧은 이는 결국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다. 난 선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특히 젊은 선자의 이야기가 가장 재밌었다. 가장 서글펐던 것도 젊은 선자의 이야기였다.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보다 선자에게 조금 더 포커싱을 맞췄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8개의 에피소드는 몹시 부족하다. 선자에게만 포커싱해도 보다 다채롭고 일관된 서사가 나올 것 같았는데.

 

느낌상 시즌 2에는 선자의 큰아들 노아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없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자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 파친코를 하겠다고 선언한 솔로몬의 서사에 보다 집중되지 않을까 싶다.

 

한 번에 몰아 봤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넷플릭스처럼 전 에피소드를 한 번에 공개했다면 보다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났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어렵겠지.

 

애플티비는 월 구독료가 6500원이고, 일주일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구독료가 타 OTT보다 저렴한 만큼, 아직 애플 티비엔 그럴듯한 오리지널 시리즈가 부족하다. 이제 전 에피소드가 릴리즈 됐으니 애플티비 무료 이용권으로 <파친코> 몰아보기를 하셔도 좋을 듯싶다. 단차원적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느냐에 집중하시기보다, 그런 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버텨냈는지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때때로 몹시 울컥했다. 나에게 그런 핍박의 역사는 무척이나 익숙한데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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