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8. 17:18ㆍFilm
13층 (The Thirteenth Floor) 1999
감독 : 조셉 러스낵
원작 : 대니얼 갤로이 <시뮬라크론 3>
출연 : 크레이그 비에코, 그레첸 몰, 아르민 뮐러 슈탈, 빈센트 도노프리오
줄거리
컴퓨터 개발자인 해넌 풀러는 자신이 발견해 낸 사실을 동료인 더글라스 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가상세계 속 가상의 인물에게 편지를 맡겼다. 하나 그는 그날 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졸지에 그의 동료인 더글라스가 살인 의심을 받게 된다. 더글라스는 해넌이 남겨둔 편지와 해넌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그와 함께 개발했던 1937년 LA의 가상현실로 들어간 후 비로소 진실을 깨닫게 된다.
가상현실. 가상 캐릭터.
영화를 보며 비슷한 소재인 다양한 영화와 시리즈가 떠올랐다.
매트릭스, HBO의 웨스트 월드, 아바타.
반전적인 요소가 꽤 많이 분포된 영화였다. 간혹 반전에 매몰돼 서사가 흐릿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이름을 잘못 지었다. 작품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13층은 멋이 없고 모호하다. 서구권에서 13이라는 숫자가 꽤 불길하고도 의미 있는 숫자이기에 그것을 노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임팩트가 적다. 이 영화가 만약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다면 이것은 영화의 제목 탓이다.
※ 영화 <13층>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결국은 사랑
1930년대 LA 다운타운. 클래식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오프닝 시퀀스를 보자마자 아련한 향수에 빠진 듯했다. 뒤이어 멀끔한 옷을 차려입은 노신사가 등장한다. 그는 펜시한 호텔 라운지 바에 도착한 뒤 익숙한 듯 여러 여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텐더에게 존 퍼거슨 앞으로 메모를 전달했지만 교활한 바텐더는 주인에게 메모를 전달하지 않았다.
결국 메모는 존 퍼거슨. 즉 더글라스 홀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편지의 내용은 그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다. 결국은 모두가 가짜라는 거. 더글라스는 이미 자신이 아는 사실을 왜 메모를 남겼을까 골몰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모든 것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제인에게 더글라스가 속한 현실 역시 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멍했다.
수천 개의 가상공간이 있다고 하면, 평행 세계라고 해도 옳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원할 때마다 접속해서 살아가는 삶이라니. 이 영화의 세계관에선 가상 세계를 만든 자들이 조물주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한데, 자신들만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을 가상 캐릭터가 깨닫게 되었으니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다. 입을 막아야 하니 죽여버릴 수밖에.
해넌의 딸이라고 주장했던 제인이 의심스러웠다. 빌런이 아닐까. 혹은 가상 세계에서 넘어온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가 조력자였던 것도 재밌는 점이었다.
가상 세계에서는 만난 적이 없던 그들이지만 현실에서는 결혼까지 한 사이인 그들이 분명 처음 만났음에도 어딘가 서로를 익숙해하거나 어딘가에서 만난 것처럼 느껴하고 현실처럼 가상세계에서도 서로에게 끌리는 것도 묘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사랑만이 다른 우주마저도 초월한다고 했던 것처럼.
영화 <13층>에 서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캐릭터 "제인 풀러"가 꽤나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졌다는 점 때문이다.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그는 현실 세계의 진짜 남편이 어느 순간 너무나도 악해지고 도덕적 가치관이 붕괴되어 버린 것을 견디지 못한다. 제인은 자신이 거슬리는 행동을 한다면 그의 남편이 가상 세계에서 살인을 저질렀듯 현실의 자신도 쉬이 살해할 것이라는 것도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제인은 남편의 옛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그의 선함이 선연하게 남아있는 가상현실의 더글라스 홀을 사랑하게 된다.
제인은 그를 사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상 세계로 직접 들어가 현실의 남편을 죽이고 가상세계의 더글라스를 현실 세계로 불러온다. 그가 원하는 사랑을. 그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쟁취해낸 것이다.
현재도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여성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그려져 멋없이 소비되는 작품이 많은데, 1999년에 개봉한 13층의 제인은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영리한 여성으로 그려진 것이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이 작품은 꽤나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실과 다름없게 구현해낸 가상현실.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갖고 살아가며 선택하는 캐릭터들. 가상공간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현실의 인간과 가상의 캐릭터는 본질적으로 같았다.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을 기다리며 (0) | 2022.09.26 |
---|---|
범죄도시 2 실화 후기 l 이토록 순수한 악 (1) | 2022.09.18 |
스틸라이프 영화 뜻 l 고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0) | 2022.09.10 |
비상선언 결말 후기 l 5년 전이라면 통했을 수도 (0) | 2022.09.09 |
또 다른 365일 결말 리뷰 l 이렇게 끝난다고? (0) | 202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