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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영화 뜻 l 고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스틸라이프 영화 뜻 l 고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스틸라이프 영화 뜻 l 고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2022. 9. 10. 20:37Film

스틸라이프 (Still Llife) 2013
감독 : 우베르토 파졸리니
출연 :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갯, 카렌 드루리, 앤드류 버칸, 팀 포터, 폴 앤더슨

 

줄거리

런던 케닝턴 구청에 소속된 22년 차 공무원인 존 메이는 고독사 한 이들의 장례를 치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의 유품을 통해 생전의 그를 추억하는 추도문을 작성한다. 살아있는 동안 인연이 있었을 이들을 장례식에 초대하기도 한다. 평소 같은 어느 날, 존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반대편에서 살고 있던 빌리 스토크라는 자가 죽은 채 발견됐다. 같은 날 회사에서 해고를 통보받은 그는 마지막으로 빌리 스토크의 장례를 치르고 퇴사하게 됐다. 존은 그의 마지막 의뢰인인 빌리를 위해서 생전 그의 삶을 좇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외롭게 고독사 한 그였지만 그의 인생을 추적하는 과정은 존에게도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 영화 <스틸라이프>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고귀하지 않은 삶은 없다


종종 연인과 영화를 본다. <스틸라이프>는 그가 고른 영화였는데 배우 원빈 님이 이 영화가 몹시 맘에 들어서 판권까지 구입했다가 고사하게 된 작품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랬을까 궁금해서 봤다.

 

영화를 본지 좀 되었다. 그런데도 밀린 리뷰를 쓰는데도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떠올라 또 눈물을 떨굴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스틸라이프는 정물이란 뜻으로 고요한 삶을 뜻한다. 존 메이의 삶이 그랬다. 

 

그의 삶은 단조로웠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늘 무채색의 옷을 입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를 하고 회색빛의 도시와 건물을 지나 구청으로 출근한다. 그의 사무실 역시 무채색이다. 22년 동안 반복했을 그의 일상이다.

 

구청 소속 공무원인 그의 업무는 좀 독특하다. 연고 없는 고독사 한 인물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인데, 직업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삶과 죽음에 관련된 일이라도 오랫동안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무뎌지기 마련이고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될 테니까.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근데 존은 매우 이상했다. 이 지독하고 멋없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기계적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해도 충분한 일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었던 타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면서. 죽은 이처럼 빛을 바란 유품 속에서 생전의 모습을 상상해가며 마치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아름다운 추도사를 써주기까지 하면서. 아무도 추억하고 그리워하지 않는 이의 장례식장에 홀로 서서.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추모하냔 말이야.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왜.

 

구청은 자선단체가 아니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장례에 진심이기에 당연히 업무 속도가 느렸을 존에게 불만을 품은 상사는 그를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그의 말에도 그는 마지막으로 빌리 스토크만큼은 마무리 짓고 퇴사하겠다고 했다.

 

존은 마을을 벗어나 그의 삶을 추적한다. 그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빌리 스토크는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존은 그 과정에서 빌리 스토크의 딸인 켈리 스토크를 만나게 된다. 

 

존이 켈리를 만났을 때 늘 무채색의 옷을 입던 그가 처음으로 비교적 컬러풀한 옷을 입었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평생 일만 하고 죽은 이들의 삶을 좇았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동화 같은 결말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갈겨버린다. 

존이 갑자기 별안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멍해서, "이거 맞아? 이거 미친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렇다. 존 메이는 죽어버렸다.

평생을 홀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장례를 치르고 추모사를 써줬던 그의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의뢰인들처럼, 존 역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추모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그의 장례식은 곧 끝나고, 그의 시신은 무연고자의 무덤으로 향한다.

 

같은 시각, 빌리 스토크의 묘에는 생전의 존 메이가 찾아갔던 빌리의 지인들의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그것을 지나쳐 존 메이의 시신이 묻힌다. 

 

무언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존 메이는 그렇게 죽으면 안 됐다. 저런 쓸쓸한 장례식도 안 됐다. 저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허망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다음 장면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무연고자의 무덤이 가득한 그곳에서 무덤의 주인들이 하나씩 걸어 나와 존 메이의 무덤으로 향하는 연출이었다.

 

이미 죽은 뒤였기 때문에 사진으로 만났던 존 메이의 의뢰인들이다. 그중에는 빌리 스토크도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대해준 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존 메이는 쓸쓸하게 죽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해줬으니 정말이지 잘 산 삶인 거다.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될 <스틸라이프>의 주연을 배우 유해진 님이 맡게 됐다고 들었다. 존 메이라는 캐릭터와 무척 부합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만이 떠안고 있는 이슈들이 있다. 청년 고독사에 대한 문제도 있고. 리메이크된 작품이 원작과는 다른 우리만의 서사를 잘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명징하게 나눌 수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존 메이가 갑작스레 사망한 것처럼,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고 그렇게도 가까운 것이 죽음인 것 같고.

 

누구에게든. 어떤 삶을 살았든. 그런 것은 모두 차치하고, 마지막 순간만큼은 단 한 명이라도 그를 기억해주고 추모하는 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존은 생각했던 것 같다. 내내 지루할 만큼 잔잔하게 흘러다다가 막판에 퍼붓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컥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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