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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을 기다리며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을 기다리며

오세연 감독의 영화 성덕을 기다리며

2022. 9. 26. 16:31Film

즐겨 듣는 팟캐스트 <듣똑라>에 오세연 감독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99년생인 오세연 감독의 밝은 분위기가 평소에 진중한(?) 듣똑라의 분위기도 한껏 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 청자인 팟캐스트에 젠지 세대 그 잡채인 게스트라니.

 

오세연 감독의 <성덕>은 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큰 관심을 받았던 영화다. 본인 스스로도 이런 관심이 얼떨떨하여 '내가 왜..?'라는 생각을 자주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몹시 사적일 수도 있는 경험을 영화인이라는 장점을 살려 다수의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 나는 퍽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행 내내 자신이 덕질을 했던 그 연예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는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오빠는 바로 '정준영'씨다. 어언 10년 전 K팝스타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고, 추후 대한민국 연예계 역사상 전무후무하고 가장 치명적이고 더러운 오명을 남긴 아티스트.

 

음주운전. 탈세. 도박.(물론 이것들도 굉장히 나쁘지만)과는 비견할 수도 없는 성범죄를 저지른 그 정준영 씨. 연예인 생명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며 죄질이 너무 나빠 아예 재기가 불가한 정준영 씨.

 

오세연 감독은 성덕이었다. 그의 오빠는 그의 이름을 알았고 그가 쓴 글에 댓글까지 손수 달아주는 사이였거든. 그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올곧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며 타인에게 모범이 되기를 자처하며 살아왔다. 한데 정준영 씨의 범행이 탄로 된 후로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덕질이 모두 무용하게 되어버렸다. 무용만 하면 다행이게? 수치스러움, 죄스러움,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했지.

 

오세연 감독이 그 사건이 터진 이후에 충격은 있었지만 놀라진 않았다고 했다. 성덕이었던 만큼 아티스트 평소의 됨됨이와 사생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는 그것에서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늘 그런 사람들이 신기하면서도 기이했다. 원체 내가 남한테 관심이 없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나와 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기꺼이 쓰면서 아무 조건 없이 그가 잘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것이. 나는 그럴 시간과 돈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소비하는 사람이라서.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어도 맹목적으로 지지해주는 팬덤이 있는 걸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부모도 저렇게는 못해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세연 감독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내 연인밖에 모르고, 그 외의 사람에겐 전연 관심이 없어서 누구에게도 기대가 없으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어서다.

 

요즘 정말 맘에 들고 예쁘게 보는 친구들이 뉴진스 친구들인데 대중적인 아티스트를 대할 땐 라이트한 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딥한 감정을 느끼기는 어렵고.

 

그러니까 오세연 감독은, 자신이 사랑하던 오빠가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죄를 졌다는 걸 완전히 알아차린 뒤 그를 사랑했던 자신을 이렇게 바보로 만든 것에 대해 울고 슬퍼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반으로 본인과 같은 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는 세연님 같은 자세가 건강한 팬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랑하는 마음은 우선 차치하고 그가 마땅히 타당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진짜 팬들이 등 돌리면 안티팬보다 무섭다던데 그게 딱 오세연 감독과 그가 인터뷰한 인터뷰이들이 아닐까. 정준영 씨는 그렇게 살아놓고도 참 영리하고 똑똑한 팬을 두었다.

 

세연님은 스스로 말하길 자신이 왜 이렇게 잘 되는지 모르겠어서 얼떨떨하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가 왜 잘됐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그의 영화는 이틀 뒤 9월 28일 개봉한다.

한 시간 내외의 인터뷰에서도 너무나도 빵빵 터졌어서 영화가 얼마나 재밌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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