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2. 00:10ㆍBook
선택적 필사의 힘 (작가의 생각지도를 훔쳐라!)
이세훈 지음
※ 사적이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필사에 관련된 책을 한 권쯤은 꼭 읽어보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선택적 필사의 힘." 다른 것보다 '선택적'이라는 말이 좋았다. 내가 선택적으로 필사를 하고 있기도 하고,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라서.
내가 스스로 필사한다고 인지하지 못하면서 필사를 해왔는데 내 북리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본 걸 또 보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한 번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은 100에 1에 가까운 일인데, 당연히 머리도 좋지 않으니 아무리 감응한 부분이어도 아무리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라도 금세 까먹어버린다. 해서 책을 읽을 때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필사해왔다.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짧게 요약해서. 모든 일은 경제성이 중요하니까. 하나하나 베껴 적는 것도 일이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 대부분은 자기 계발서였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필사하는 일은 없었다.
요즘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에서 만난 문장을 필사한다. 나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보단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최근에 우리말 문장에 매료되어 이것저것 많이도 수집하는 중이다. 덕분에 책 읽는 시간이 배로 드는 것은 함정이지만. 여러 글쓰기 책을 읽으면서 필사에 대해 찬미하는 작가들을 많이 보았다. 필사가 글쓰기 실력을 함양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해보니 의외의 재미도 있다. 예전에 컬러링북이 유행하고 색칠하는 액자가 유행했던 것처럼. 소일이지만 마음이 안정되고 힐링되는 기분이 든다. 수련하는 느낌도 들고.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필기구가 샤프라 샤프로 필사를 해오다가 요즘엔 연필로 필사를 한다. 늦은 밤에 연필로 필사를 할 때 사각사각 나는 소리가 좋다. 혹시 필사를 해보시려는 분들은 다른 어떤 필기구보다 연필을 추천드린다. 요즘에는 만년필로도 필사를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만년필도 한 번 구입해볼까 싶다.
선택적 필사의 힘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필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담았다. 오로지 필사에만 집중된 책. 이세훈 작가가 말하길 필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책을 출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필사의 종착지는 내 책 쓰기. 필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본인 책도 쓸 수 없다고 했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스스로도 베껴 쓰기로 필력을 키우셨고, 특히 아들 부부 내외에게 태백산맥 필사를 시키셨다는 이야기는 (작가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인지) 많은 곳에서 들었는데 그만큼 필사가 저자의 생각과 안목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인가 보다. 은유 작가의 에세이에도 필사에 관련한 글이 많다. 글쓰기 수강생들이 써온 글에서도 맘에 드는 문장은 꼭 필사를 하셨다고 했다. 마음이 답답한 기분이 들면 근무 중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서 필사를 하곤 하셨다고. 나 역시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다 보니 즐겁게 필사를 하고 있다. 어쩔 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밑줄을 치거나 북마크만 하고 넘어갈까? 하다가도 역시나 아쉽다. 노트에 끄적끄적 적어야 속이 편하다.
선택적 필사의 힘에서 소개받은 필사의 방법 소개를 해보자면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변형하여 필사하기. 난 항상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필사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는데 내 문장으로, 내 표현으로 변형하여 필사하는 방법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필력이 너무나도 부족하지만 종종 해보려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한 번의 필사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필사할 것. 필사할 때 문장을 두 번 세 번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심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 번으로는 문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체화할 수 없으니 맘에 드는 구절은 여러 번 필사하기. 마지막으로 천천히 꾹꾹 눌러 담아 쓸 것. 이것도 사실 어렵다. 난 성격이 굉장히 급해서 글씨를 참 못쓴다. 흘려 쓰는데 너무 악필이라 나만 알아볼 수 있달까. 이세훈 작가는 필사할 때 날림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꾹꾹 마음에 새기듯이 필사를 하라고 하였다. 이건 조금 힘들 듯싶다. 성격상 천천히 글씨를 쓰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날림으로 쓴다고 해서 그 문장이 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자는 필사를 하기 좋은 책으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추천하였다. 역시 내 리뷰를 봐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난 국내 작가 중에서 손꼽히게 김승옥 작가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대표작인 무진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항마력 딸리는 주인공인 윤희중에게 도무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어서다. 유려한 필치가 가득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이 가득한 것을 물론 알고 있지만 난 문장보단 서사를 탐하는 사람인지라. 김세훈 작가 말고도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필사를 권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유시민 작가도 무진기행과 또 추천해주신 것이 박경리 작가의 "토지"다. 토지는 다 읽지 못하였다. 4부를 읽다가 관두었다. 읽기가 힘들었다. 완독 하지 못한 이유는 내 감정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배경이 배경인지라 인물 하나하나가 다 연민이 갔고 지금과는 다른 가치관도 한몫했다. 부인을 피떡이 되도록 때리는 남편이 많았다. 읽은 지 오래돼서 이름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애초에 노름꾼에 술꾼에 망나니 같은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해도, 분명 멀쩡하고 사람 좋은 캐릭터인데도 그마저 집에 오면 죄책감 없이 부인을 때렸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하지도 않았고, 맞는 부인조차 마찬가지였다. 때리는 사람은 때릴만하니까 때린다고 생각하고, 맞는 사람도 맞을 만하니까 맞는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아들조차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1800년대 구한말 때부터 이미 시골 마을에까지 왜인들이 조선땅을 측량하기 위해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든 왜인을 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에서도 울화통이 터졌다. 어떻게 되어 먹은 나라가 타국에서 온 무장한 군인이 시골 마을 곳곳에 만연하게 주둔해있는데 어떻게 몇십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었을까. 세상 답답하고 속 터져서. 여러 작가들이 박경리 작가의 토지 이야기를 하시니 한 번 꾹 참고 다시 읽어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다. 10권이 넘어가는 장편소설은 읽기 힘든데 한번 슬슬 도전을 해볼까.
아. 그리고 저자가 동양 고전을 추천하셔서 한 번 읽어볼까 하고 노트에 적어두었다. 동양의 3개 잠언집인 <명심보감> <채근담> <유몽영>. 혹시 앞서 소개한 것이 범위가 너무 방대하고 어렵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은 <동양고전 잠언 500선> 나 역시 동양 고전을 읽기엔 힘들 것 같아서 주제별로 엄선된 구절을 모아놓은 책부터 읽어볼까 한다. 정말 세상에 안 읽어본 책들이 너무 많구나.
저자가 말하길 "필사의 밑바탕에는 필사를 통해 필력이 향상되고 새로운 분야의 책을 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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