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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2020. 5. 20. 12:25Book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음복"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김봉곤 "그런 생활"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김초엽 "인지 공간"

장류진 "연수"

장희원 "우리의 환대"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등단한 지 10년이 채 안 된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소설 중에서 가장 눈부신 성취를 보여준 일곱 편의 작품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전에 "소설가로 산다는 것" 리뷰를 하며 국내 작가 중 좋아하는 작가로 김승옥 작가, 김영하 작가, 김애란 작가, 박완서 작가 등을 꼽으며 영미권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고 상대적으로 국내 루키 작가들을 잘 모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요즘엔 신경 써서 국내 작가 책을 본다.

 

 

우리나라 신인 작가들을 한눈에 보기에 이것보다 더 적절한 책이 있을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이 책 한 권만 봐도 요즘 트렌드가 어떤지. 사회상이 어떤지. 단박에 알 수 있겠더라. 차별, 성별 간, 세대 간 갈등, 대립, 불평등. 불공정, 편견.

 

 

강화길 작가의 "음복"을 읽으며 며느리한테는 시시콜콜 집안의 가정사를 전부 다 이야기하고 세상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어 놓았으면서, 자기 아들한테 만큼은 비밀로 해달라는 말에 넌더리가 났다. 더 솔직히 말하면 오물 같았다. 본인 아들은 끝끝내 아무것도 모르고 동화 속에 살며 마냥 해맑기만을 바라면서도,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한테는 몰라도 될 진실을 털어놓는 게 구역질이 났다. 

 

 

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읽으면서 운전 레슨을 받는 짧은 에피소드 만으로 이러한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이 아닌 자식의 삶으로 행복한 순간을 갱신하는 엄마를 보고 옅게 경멸하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하였으면서도, 운전 레슨 선생님을 구할 때는 맘 카페에서 본 내용을 신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로웠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거나 넌지시 자신의 미래까지 멋대로 짐작하는 운전 선생님을 보며 불쾌해하고 거리를 두면서도, 그녀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며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 역시 재밌었다. 일곱 개의 작품 중에서 가장 감정이입이 많이 됐던 작품이다. 

 

 

 

 

이제 내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일곱 개의 작품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 이번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선 여성 서사의 이야기가 많았다. 난 여성이고 위에 소설들에선 약자의 입장이지만 그건 재미없으니까 익숙한 구도를 뒤집어보고 싶어서. 이성애자인 입장에서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내 스탠스가 약자가 아닌 강자로 그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서.

 

 

김봉곤 작가는 게이다. "그런 생활"이라는 작품이 봉곤 씨의 진짜 이야기인지 남의 이야기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농밀하면서도 현실적이어서 놀랐다. 선배와의 대화창에서 필터 없는 노골적인 단어가 그랬고, 자신의 성향을 밝히는 부분에서

 

"굳이 말하자면 하리수가 아니라 홍석천이야~" 

"꽃자 아닌 강학두~"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깊게 설명할 필요 없이 딱 저 한마디면 정리되니까. 봉곤 씨는 홍석천 씨, 강학두 씨처럼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다.

 

 

봉곤 씨와 엄마의 관계와, 봉곤 씨와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보통의 모자지간, 보통의 연인관계와는 조금 달라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아. 엄마가 점을 보셨는데 봉곤 씨와 엄마가 원진살이 끼어서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을 보고도 또 엄청나게 웃어버렸는데, 전혀 근거 없고 단순 띠로만 나뉘는 원진살이 아무 의미도 없는데 그렇게라도 서로 으르렁대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봉곤 씨의 어머님이 너무 귀엽지 뭐야. 봉곤 씨가 게이인 것을 주위 사람들을 통해 뒤늦게 아시고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시며 괴로워하셨지만 소설의 말미엔 봉곤 씨에게

 

"기죽지 말고, 어디 가서 기죽을 필요 없고, 미우나 고우나 내 아들이니까. 내 새끼다."

 

하시는 것을 보며 이런 것이 어미의 마음이 아니겠나 하고 감히 짐작하였다. 천륜이니까.

 

 

그래도 엄마와의 이야기보단 당연히 남자 친구와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 친구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얼마나 잘생겼길래 그런 사람인데도 관계를 고집하는 거야!

 

 

남자 친구의 비열한 외도 장면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고도 애써 침착하게 "일단 하나하나 정리하자."란 부분에서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스스로도 본인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뭐가 모자란 사람인 건지 생각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니까 용서하고 어떻게든 믿으려 하는 봉곤 씨를 보며 내가 다 속상했어. 

 

 

남자 친구의 바닥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닥의 사실은 저 지하 심연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봉곤 씨는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같이 못 배운 빡대가리 새끼는 이런 식으로 살고 이런 식으로 연애해?"

 

그 부분에선 솔직히 통쾌했어. 동시에 봉곤 씨가 남자 친구를 얼마큼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었는데 저만큼 심한 수위의 언어 폭행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게 크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 애정이 없다면 말싸움조차 아까워서 단박에 관계를 정리했을 테니까. 저렇게 밑바닥까지 내려가 다투진 않았을 거잖아.

 

 

"그런 생활"에서 그들이 연애하는 모습은 보통의 커플과 다른 것은 없었다. 바람기가 많고 성욕이 강한 남자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고 아파하면서도 결국 사랑해서 또 용서하고 다시 한번 믿어보는 이야기.

 

 

김봉곤 작가는 스스로를 퀴어 작가라고 이야기했는데, 난 퀴어라고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여태껏 리뷰한 작품 중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정도가 내가 리뷰한 퀴어 영화가 되려나. 난  그 영화 리뷰에 퀴어나 동성애나 게이라는 단어를 한 마디도 적지 않았다.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필요 없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끝은 함께 자전거를 타며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둘의 사랑이 어떻게 이어질진 모르겠지만 부디 행복하게 사랑했으면 좋겠어. 뭐 어쩌겠어요. 친한 선배 말마따나 머리 좋은데 멍청한 사람 좋아하는 게 봉곤 씨 취향이라는데. 난 봉곤 씨 사랑 존중하니까. 

 

 

 

 

 

ps. 국내 신인 작가들 작품을 한눈에 읽기에 이만한 책이 없어요. 신인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출간 후 1년 동안 5천 원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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