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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리뷰 다가오는 말들 리뷰

다가오는 말들 리뷰

2020. 5. 9. 12:11Book

 

다가오는 말들(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같은 리뷰입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쓰기의 말들에 이어서 내가 세 번째로 만난 그녀의 책이다. 처음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그녀에게 반해버려서 빠른 기간 안에 그의 세 작품을 접하니, 이제 은유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은유 작가의 문체. 내가 어디서 은유 작가의 쓴 글을 읽으면 아무리 짧은 글이라고 해도 '이거 은유 작가가 썼구나.'하고 알 것 같은 느낌.

 

 

감응을 중요시하는 은유 작가는 (여태껏 읽어본 그녀의 책으로 유추하건대) 평소에 독서량이 엄청나며 문장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번 책에서도 굉장히 많은 책을 인용하였다.  다가오는 말들은 그녀가 겪은 일, 들은 말, 읽은 말들로 엮는 에세이 집이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라는 부제답게 그의 경험담과 사유를 진솔하게 기록하였다. 소외된 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글밥을 먹었기 때문에 은유 작가에게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뗄레야 뗄 수 없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모처럼의 연휴라 그동안 읽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삼십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모조리 읽었다. 은유 작가의 책을 읽을 땐 필사를 꼭 한다. 해서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시간이 곱절 이상이 걸린다. 은유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알지 못했던 내 모국어의 어휘를 습득하는 것도 좋고(지난번에 소개하였던 고졸 하다와 같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잘 읽혀내려 가며 글을 쓰는 은유 작가의 필체가 좋기도 해서 내 맘을 살랑살랑 건드는 예쁜 문장을 필사하다 보면 내 마음도 저절로 치유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 길지 않은 에세이를 완독 하기까지.

 

 

이번 작품 "다가오는 말들"역시 이전의 작품들과 결을 같이 한다. 다양한 책을 인용하였고, 그에 대한 은유 작가의 사유와 경험담을 적었다. 2019년 2월에 출간된 작품으로 가장 최근의 작품이라서, 비교적 최신 이슈들이 나오는 것이 흥미롭더라(예를 들면 안희정 전 지사 같은)

 

 

은유 작가는 주로 가진 자보다 못 가진 자, 중심이 되는 자보다 변두리에 있는 자, 꽃같이 살아온 자보다 외지에서 온갖 수모를 겪은 자, 즉 소외된 자, 약자,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세월호 유가족들, 성폭력 피해자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병을 얻어 사망한 이들의 유가족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가 쉬이 지나쳐버릴 그런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자녀를 군대에 보내고 아들의 양말을 무심코 개다가 은유 작가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를 생각했다. 죽은 아이를 남들처럼 군대를 보냈다고, 유학을 보낸 거라고 거짓으로 인식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털어놓았던 그들을 생각한 것이다. 은유 작가의 아이는 군생활을 마치면 돌아올 테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그럴 수 없으니까. 아이를 군대에 보내 놓고도 불안하고 걱정하다가, 그는 아이를 영영 잃은 다른 부모를 생각했다. 은유 작가는 "내가 입은 군인 엄마의 옷은 유가족 엄마가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옷이고, 유가족 엄마가 입은 슬픔의 옷은 어느 날 내게 입혀질 수도 있는 옷이다."라고 하였다. 언제든 자신에게도 그런 불행이 올 수 있다는 것. 짧은 형식의 글이었지만 내 마음이 시큰해졌다.

 

 

이번엔 나도 책을 읽으며 반성했던 부분이 있어서 소개해보려 한다. 은유 작가는 강연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청소년 강연을 갔을 때의 일화를 담았다. 10대 청소년들이 쓴 글과 그들의 생각이 너무 훌륭해서 "청소년인데도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놀랍네요."라고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같은 뉘앙스의 말을 삼가야 했었는데 말이다. 한 청소년이 은유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작가님에게 누군가가 여자치고 글을 참 잘 쓴다고 하시면 기분이 어떻겠어요?"라고. 은유 작가는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고 은근히 하대한 내 무지를 깨우쳐준 은덕을 입어놓고 다정함까지 바라는 건 염치없다고 한 자각에 이르렀다."라고 말하였다. 이 대목을 읽고는 나도 반성할 수밖에 없었는데, 몇 년 전 고등학생이 쓴 글을 보고 탄복해서, 우리 학생들이 글을 정말 잘 쓰는구나! 하고 친구들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청소년들을 나보다 어린 존재. 나 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존재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몇 달 전 넷플릭스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떤 미국 배우였나. 아버지와 함께 동남아 여행을 하는 여행 다큐멘터리였는데 그 에피소드는 다름 아닌 "태국"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요즘 상황이 상황이라서 대리 만족이라도 할 겸 보았는데 재밌게 방송을 보다가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져 꺼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 배우는 태국의 역대 왕들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ㅇㅇ왕이 동양인임에도 서양인 수준으로 엄청 훌륭하고 지혜로웠다고 하더라고요." 이 부분을 보고 난 내 귀를 의심했지 뭐야. 그 사람은 그게 칭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인인 주제에 서양인 수준으로 영리했다는 칭찬. 듣는 동양인인 나는 기분이 확 나빠져 "저거 미친 건가?" 하고 생각하였다. 자기 딴에선 칭찬이고 칭송의 말로 했겠으나, 저 칭찬의 저변엔 동양인과 서양인을 동일선상에 보지 않고 동양인을 한층 낮춰 보는 인식에서 나올 수 있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서 극동에 위치한 우리 한국도 인종 차별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이 많다. 예전에 어떤 아이돌은 유명 흑인 여가수를 "흑인 치고 참 예쁘죠."라고 말해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유명 국회의원이 흑인 자원봉사자를 두고 피부색을 보고 말을 함부로 해서 이슈가 됐던 적도 있다. 내가 나열한 것 말고도 무수하게 많다. 아시아 대한민국의 동양 여성인 나는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토악질이 난다. 부아가 치민다. 한대 머리를 쥐어박고 싶다. 대단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적어도 편견 없는 사람이 되자. 부끄럽지 않게 살자. 하는 게 내 인생 모토이기에 인종 차별하는 자들을 가장 최하로 생각한다. 상종하지 않는다. 편견 없이 살려고 노력하였고 편견 많은 자들을 가장 혐오하였으면서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낮춰 볼만큼 난 너무나도 부족하고 구멍 많은 사람이었다.

 

 

부끄럽지만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내가 청소년 때는 내 사고가 미성숙했던 것 같아서, 난 잘 몰랐던 것 같아서. 근데 그건 내 얘기고 요즘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도 어느새 꼰대 마인드가 돼서, 고등학생이 글을 잘 쓰고 생각이 성숙하면 "어린데도 생각이 참 성숙하고 어른스럽네!" 라며 꼴에 칭찬이라고 해댄 것이 부끄럽더라. 이렇게 배우는 것 아니겠나. 무안하고 창피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뭐. 나 역시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게. 생각이 깊네. 소리를 들으면 언짢았는데 말이야.

 

 

"다가오는 말들"을 읽으면서도 그가 인용한 책들 중에서 눈에 가는 책이 너무나도 많아서 노트에 하나하나 기록을 해두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밥 먹는 것만큼 생존에 가까운 일이었던 그녀가 좋다. 먹고사는 일에 치중되어 글을 읽고 쓸 시간이 사라져 가는 것이 그녀 자신의 일부가 사라져 가는 것으로 동일시했던 그녀가 좋다. 글밥을 먹고사는 그녀를 응원한다. 마음속 커다란 구멍을 갖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글쓰기를 통해 메워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그녀를 응원한다. 다음번엔 그녀가 집필한 소설이나 르포르타주 에세이를 읽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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