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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2020. 5. 30. 20:15Film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The truth, La vérité) 2019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카트린 드뇌브, 쥘리에트 비노슈, 이선 호크, 뤼디빈 사니에, 마농 끌라벨

 

 

순전히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어서 보았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그의 여느 작품답게 가족 드라마 색이 짙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인으로, 프랑스와 일본의 가치관과 문화는 굉장히 다를 텐데,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인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녹여내어 대단하단 느낌을 받았다. 자료조사를 해보니 캐스팅도 직접 하였다고 한다. 그의 전 작품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 전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나 문제가 많았던 가족 구성원들이 종국엔 상처를 딛고 무지함을 깨우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플롯이었는데 이번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극 중 배우인 "파비안느"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는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던 파비안느가, 나쁜 엄마 나쁜 친구여도 좋은 배우인 편이 낫다는 파비안느가 비로소 딸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타인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카트린 드뇌브는 프랑스 배우로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다. 세기의 배우란 호칭 답게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탑의 자리에 있으셨고,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운 배우. 영화 속 파비안느 역시 배우기 때문에 더 아리송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 영화인 "내 어머니의 추억"에서 주연 역할을 맡은 마농 끌라벨은 영화 속 실제 이름 그대로 등장한다. 진짜인지 허구인지 헷갈리는 설정.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파비안느는 배우다. 오랜 기간 동안 세기의 배우였던 인물. 실제 카트린 드뇌브와 비슷한 설정이어서 더 몰입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영화 속 파비안느는 정말이지 단 일분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거만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인의 공로와 노고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가 인정받으면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남의 노력을 쉽게 폄훼하고 깎아내리며 조롱하는 사람.

 

 

딸인 뤼미르가 엄마에게서 도망쳐 뉴욕에 자리를 잡은 것이 조금은 공감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누구라도 파비안느 같은 사람과 있으면 가스 라이팅을 있는 대로 당해 제정신으로 견디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파비안느의 딸인 뤼미르가 엄마의 자서전 출판을 기념으로 파리에 방문하며 시작한다. 파비안느는 딸네 가족이 등장하자마자 인터뷰어에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부분이나 뤼미르가 남편에게 엄마 흉을 보는 것을 보며 두 모녀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진실이라곤 전혀 없네요."


뤼미르는 파비안느의 자저선을 보며 분노한다. 자서전 안에 진실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서전에 등장하는 파비안느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바쁜 배우로 살면서도 딸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던 엄마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분노하는 뤼미르에게 파비안느는

 

"나는 배우라서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아. 진실은 전혀 재미없거든."

 

이라고 대답한다. 파비안느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추한 진실보다 아름다운 허구가 훨씬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인물.

 

 

파비안느는 "배우"라는 직업이기에 사람들에게 거짓을 보여주는 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배우라는 직업이 모든 거짓에 면죄부라도 주어진 것인 마냥. 파비안느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쁜 엄마, 나쁜 친구여도 좋은 배우인 편이 나아. 네가 용서 안 해줘도 세상은 나를 용서해."

 

전 남편을 깎아내리고, 딸을 깎아내리고, 딸의 남편을 깎아내리고, 후배 배우를 깎아내리고 그들의 무수한 노력으로 얻은 성과를 폄훼하며 70년 넘게 고고히 살아온 인물. 누가 이렇게도 고매한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었다.

 

 

 

 

"걔가 그런 상태면 네가 같이 갔어야지."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사라." 뤼미르에게도 파비안느에게도 가까운 인물이었던 걸 알겠는데 좀처럼 누군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엔 혹시 죽은 딸인가 했다. 알고 봤더니 동료 배우였던 모양이다. 배우로서 가능성도 많았고 입지도 갖췄던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뤼미르와 가까웠던 사이였으며 그녀를 많이 사랑했었던 것처럼 보였다. 마치 엄마처럼.

 

 

뤼미르가 말하길 영화 "벵센 숲 마녀"에서 사라가 주인공이었지만, 파비안느가 감독과 잠자리를 가지고 역할을 꿰찼다고 했다. 사라가 죽은 것도 엄마 때문이라고 하자, 파비안느는 뤼미르를 탓했다. "내가 설사 그랬다고 해도 배우라면 상처를 딛고 연기로 승화해야지." 라면서.

 

나중엔 딸인 뤼미르를 탓했다. 사라가 죽은 게 뤼미르의 잘못이라는 것처럼. "걔가 그런 상태였으면 네가 같이 갔어야지. (걔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혼자 뒀니?)"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솔직히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파비안느에게 도무지 감정이입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되어도 좋은 배우인 편이 낫고, 딸인 네가 용서해주지 않아도 세상은 나를 용서해줄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쁜 엄마가 될 거면, 그냥 엄마를 안 하면 되지 않나. 배우 생활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왜 굳이 아이를 낳았을까 싶었다. 나쁜 친구가 될 거면 친구를 안 만들면 되지 않나. 동료 배우의 역할도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뺏을 거면 애초에 친구를 왜 사귀냔 말이다. 세상 혼자 살면서 배우만 하면 되잖아.

 

 

 

 

파비안느의 진심


파비안느는 조금씩 변해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내보였다. 사라와 닮아서 마농이 주인공인 영화에 출연하였고 속으로 그녀를 칭찬하면서도 겉으론 그녀의 배우적 재능을 인정하지 않다가, 마지막 촬영 날 마농을 불러 사라가 생전 가장 아끼던 옷을 선물한다. 그리고 그동안 사라와 마농이 얼마나 닮았다고 느꼈는지, 사라가 얼마나 배우로서 뛰어난 인물인지 칭찬한다. 마농에게 "제2의 파비안느가 되는 건 어때요?"라며 자신의 타이틀을 물려주려 했던 건 파비안느에게 배우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마농에게 최고의 찬사가 아니었을까.

 

 

파비안느는 딸에게 왜 "뱅센 숲의 마녀"에 출연했는지 고백했다. 사실은 뤼미르가 그 책을 너무나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뤼미르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딸아이에게도 사주었다는 대사가 있고, 영화에 잠깐 이 동화책을 딸에게 읽어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매일 그 동화책을 읽어주는 건 사라였고, 자기는 딸도 사라에게 빼앗겼는데 네가 이 책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 배역만큼은 내가 꼭 맡고 싶었다고.

 

 

그녀는 뤼미르가 어릴 때 출연한 공연을 보았던 것에 대해서고 고백했다. 사실은 남편과 딸아이의 공연을 전부 다 보았지만, 딸의 연기가 너무나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너 연기에 소질 없어."라는 진실 대신, 공연을 보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뤼미르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할이 아닌 사자 역할을 맡았는데 파비안느는 그 당시 뤼미르가 연기하였던 대사를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대화할 때도 자기가 이제 배우로 끝난 것 같냐며 물었고, 이내 대답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진실을 알아 버리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다고. 

 

 

 

파비안느는 대중에겐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잘도 하는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상처 받게 될 진실을 말하느니, 차라리 미움받는 쪽을 택했던 파비안느. 파비안느는 오랫동안 그녀의 독특한 방식으로 딸을 사랑해왔던 거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도 말이다.

 

 

사실 딸과 비로소 묵은 오해를 해소하는 장면에서도 왜 오늘 마지막 촬영에서 이 감정을 쓰지 못한 거냐며 아무래도 촬영을 다시 해야겠다 말하는 파비안느를 보며 "이 상황에서까지 저럴 일이야?"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지만, 뭐 어쩌겠나. 그녀가 뼛속까지 배우인걸.

 

 

히로카즈의 작품을 세 개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난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따뜻한 온기와 분위기가 좋다.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설정도 그의 손을 거치면 무척이나 아름다워지는 이유는 그가 섬세하면서도 잘 단련된 감독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의 에세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으로 짐작하건대 난 그가 영화의 진심을 믿는 감독이라는 것을 안다. 국적이 아닌 영화인으로 자신의 바운더리를 정하는 것도 그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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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느는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새삼스럽게 저렇게 많은 스태프들 사이에서 저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평소에 영화 촬영 장면을 볼 기회는 적으니까.

 

 

영화 속 영화인 "내 어머니의 추억"은 병에 걸려 우주로 떠난 어머니의 이야기다.(영화 속 영화 조차 가족 영화인 설정. 히로카즈 당신은 대체..) 지구에 있으면 2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딸아이와 남편을 두고 우주로 떠난 어머니의 이야기. 우주에 가면 늙지도 않고 병이 악화되지도 않고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되는 게 그 영화의 세계관이다. 그 엄마는 7년마다 딸아이를 만나러 돌아온다. 딸의 생일마다 돌아와 딸아이를 보고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 파비안느는 73세인 딸 역할을 맡았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편 두고, 예쁜 아이 두고, 왜 우주로 갔을까. 남은 시간이 2년이라면 2년 동안 아이와 남편과 충분히 예쁜 추억을 오래 만드는 것이 낫지 않나 하고. 도대체 사랑하는 부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남편은 무슨 죄며,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는 또 무슨 죄냐고.

 

 

영화 말미에 뤼미르가 딸아이에게 할머니께 가서 "할머니가 우주선을 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가 배우인 모습을 보실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라며 일러준 대사를 통해서야 짐작했다. 2년 동안 아이와 있어주는 것보다 떨어져 있더라도 7년에 한 번뿐이라도 평생을 딸 생각만 하며 그리워하더라도, 커가는 아이를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었던 거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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