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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1960) 리뷰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1960) 리뷰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1960) 리뷰

2020. 6. 3. 02:11Film

이 생명 다하도록 (To the last day) 1960
감독 : 신상옥
원작 : 한운사의 동명 소설 
출연 : 김진규(김기안 역), 최은희(정혜경 역), 남궁원(미스터 조 역), 전영선(선경 역)

 

 

평소에는 줄거리를 첨부하지 않는데 아마 대부분 영화를 보지 않으셨을 것 같아서 줄거리를 알려드린다.

 

6.25 전쟁에 참가한 김 대위(김진규)는 척추를 부상당해 하반신 불구가 된다. 아내 혜경(최은희)은 남편을 극진히 간호한다. 혜경 가족이 대구로 피난을 가던 도중, 둘째 딸 선경이 죽는다. 혜경은 첫째 딸 선경(전영선)과 남편을 수레에 태워 피난길에 오른다. 피난지에서 김 대위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혜경은 좌판 장사로 생계비를 번다. 혜경은 그녀의 좌판 옆에서 물건을 팔던 미스터 조(남궁원)을 만난다. 전쟁 통에 고아가 된 미스터 조는 혜경에게 누님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두 사람은 급속하게 가까워진다. 미스터 조는 집을 마련하고 혜경에게 한 집에서 살자고 제안한다. 미스터 조를 사랑하게 된 혜경은 미스터 조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느 날 집에 찾아온 남편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혜경은 미스터 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환도한다. 혜경 부부는 갈 곳 없는 전쟁미망인과 그 아이들을 위해 모자원을 설립하여 새로운 희망을 꿈꿨지만 선경이 교통사고로 죽자 다시 절망에 빠진다. 미망인들이 모자원을 떠나려던 찰나,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던 혜경이 정신을 차리고 나와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는다.

 

 

 

최은희 배우와 신상옥 감독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는 납북됐다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극적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만나니 재밌었다고 해야 하나. 나에겐 신상옥 감독의 첫 영화다. 부부끼리 함께 영화를 찍는 건 어떤 것이었을지? 

 

 

박완서 작가의 소설인지 에세이였는지. 아마 에세이였던 것 같은데 이런 문구가 있었다. 오래돼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전쟁이 휩쓸고 간 상처는, 된장국과 나물반찬 네댓 가지를 놓고 빙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과 같았다."라고. 그 당시 어느 집 아들이 죽고, 어느 집 남편이 죽고, 어느 집 손자가 불구가 된 것들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만연했다는 이야기다. 별 다를 것 없는 반찬을 놓고 밥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한국 전쟁이 한창인 시기다. 내가 염려스러웠던 부분은, 영화가 개봉한 게 1960년도인데 53년도에 휴전하고 7년의 시간밖에 채 지나지 않았을 시기인데 국민들이 이 영화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아직 전쟁의 아픔이 깊었을 테고, 상흔이 아물지 않았을 시기인 것 같은데, 마주 보기 불편하지 않으셨을까 하고.

 

 

원작인 한운사 작가의 소설 "이 생명 다하도록"은 라디오 드라마에서 굉장히 인기 있었다고 한다. 자료조사를 해보니 이 소설은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신상옥 감독이 당시 이 소설의 시나리오를 월급이 채 만원이 안 되던 시절 무려 150만 원을 주고 사갔다고 하더라. 원작 소설의 줄거리를 훑어보니 영화는 옅게 원작을 변용한 듯했다.

 

 

1959년에 영화를 촬영했다는데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여서 6.25 당시 사용하던 전쟁 용품이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고증이 잘 된 탓인지 영화 초반부 잠깐 등장하는 전쟁 씬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나, 탱크와 사이렌 소리, 폭격 소리는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마치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실제 같단 느낌을 받았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생명 다 하도록"은 굉장히 교훈적인 성격이 짙은 영화다. 혹 국가에서 이런 방향으로 만들라고 지시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남성성을 잃은 김대위


김대위는 전쟁 중 하반신 불구가 됐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고자가 됐다. 옆에 있는 전우가 부상이 심해 얼마 못 사는 것이 본인보다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고자가 됐으니 온갖 히스테리는 부인에게 다 부린다. 다리도 못 쓰면서 두 손으로 부인은 어찌나 잘 때리던지.

 

 

김대위의 행동이 추하고 못났단 생각이 들면서도 짠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하루아침에 남성성을 잃은 것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고 부인에게 같이 죽자고 울부짖기도 하고  동정심에 자신 곁에 있다고 생각하여 날 떠나라고 윽박지르면서도 부인이 떠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며  겁내 하는 김대위는 무척이나 연약하게 느껴진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항시 필요한 남편.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는 남편. 부인인 혜경은 불구가 된 남편과 두 딸을 책임져야 한다. 혜경의 동생인 혜정의 말대로 혜경은 죽으래야 죽을 자유조차 없는 몸이다.

 

 

 

 

가장이 된 혜경


대구로 피난 가던 도중 갓난아기 옥경은 폐렴이었던 건지 죽어버리고 말았다. 혜경은 아이를 묻어주었고, 남편과 선경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피난길을 이동한다. 이 장면은 주변에 피난 보따리를 이고 지고 이동하는 피난민들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실제 같단 느낌을 받았다. 여성 혼자 수레를 끌고 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게 야속하게 느껴졌다. 군용 차량이 그들을 지나쳐 갈 때마다 이대위는 상이군인인데 좀 도와주면 안 되나 싶었다.

 

 

 

피난지에 도착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혜경은 좌판에서 장사를 시작한다. 남편은 병원에 있고, 혜경과 선경은 국가가 제공한 여관에서 묵고 있다. 양부인들도 함께 묵는 여관이어서 아이 교육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은 "육군 대위 남편을 둔 덕분에 여관방에 무료로 있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라고 말한다. 혜경과 김대위가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은 이것이다.

 

 

김대위는 소령으로 진급하였고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함께 입원한 전우들에게 자랑하고 부인에게도 자랑하며 내보이자 혜경은 훈장을 받아 들고는 인상을 쓰고 이내 내팽개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 하반신 하고 바꾼 걸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해져서 그래요."

 

김대위는 "그래도 이건 상처투성인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나한테 고맙게 주는 유일한 보답이야."라고 답한다. 

 

 

남편도 부인도 모두 다 이해가 갔다고 해야 하나. 다리와 맞바꾼 훈장이 꼴 도보기 싫게 느껴지는 혜경도, 다리와 맞바꾼 대가로 진급과 훈장을 받고 김대위가 위안을 받는 것도.

 

 

 

 

혜경과 미스터 조


혜경은 좌판을 하다 미스터 조를 만났다. 전쟁통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여동생을 잃어버렸다는 미스터 조는 혜경에게 누이가 되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누이가 되어달라는 그의 말이 불순하게 보이진 않았다. 부모도 죽고 여동생 생사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남겨졌으니, 어떻게든 정 붙일 사람이 필요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둘은 사랑에 빠졌다. 미스터 조가 전재산을 털어 마련한 집에 혜경과 옥경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혜경은 미스터 조를 사랑했지만 선을 넘지 않았다. 선을 넘을 뻔했으나, 남편 생각이 나서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난 혜경이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느꼈다. 여성으로서 근사한 남자에게 끌리는 것도, 미스터 조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도, 몸이 불편한 남편을 버릴 수 없어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외도한 사실을 알고 이대위는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며 혜경에게 매달렸다. 혜경은 마음을 다잡았고 미스터 조에게 이별을 고했다.

 

 

 

원작에서는 양부인이 된 혜경의 고등학교 동창이 나왔다고 하는데, "이 생명 다하도록"에선 미스터 조의 여동생이 양부인으로 등장했다. 미스터 조의 동생인 영선은 오빠를 우연히 만났고, 미스터 조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며 여동생을 나무란다. 영선은 단지 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영선은 자살하였다. 그 당시 시대상이 농밀히 묻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죽음으로 밖에 대신할 수 없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미스터 조가 동생을 비난할 게 아니라 보듬어주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을 텐데 전쟁통에 부모 형제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양부인을 한 게 잘했단 게 아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신 안 하게 도와주면 되지 않나. 피붙이라곤 저 하난데, 그렇게 모질게 말했어야 했을까. 

 

 

 

 

"우리 또다시 살아봅시다. 이 생명 다하도록"


서울로 환도한 후 죽은 영선이 남겨준 돈과 혜경이 조금씩 모은 돈으로 이대위는 모자원을 설립했다. 오갈데 없는 부인들과 그의 자녀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고 함께 미싱공장을 운영하는 것을 보며 아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되나 보다 했다.

 

 

부모님에게 학교를 잘 다녀오겠다던 선경은 등굣길에 군용 차량에 치어 사망했다. 기어코 이 영환 가장 선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구한 존재를 죽여버렸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나. 전쟁통에 불구가 되고, 갓난쟁이 둘째 아이를 잃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도우려던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선경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는 부부를 보고 모자원의 부인들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혜경은 마음을 다잡고 부인들에게 말했다. 살자고. 같이 살자고.

 

 

'이 생명 다하도록' 앞에는 '우리 또다시 살아봅시다'가 있었다. 전쟁통에 다리를 잃었고 고자가 됐고, 두 딸아이를 전부 잃었지만, 그래도 우리 또다시 살아보자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의 피해자다. 전쟁 중 상이군인이 된 김대위도, 전쟁통에 두 아이를 잃고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혜경도, 부모를 잃고 혼자 남겨진 미스터 조도, 양부인이 된 영선도. 전쟁이 없었더라면 혜경과 김대위는 행복하게 살았을 거고, 선경과 옥경이 두 딸 모두 건강하고 예쁘게 컸을 거다. 미스터 조도 학업을 마치고 근사한 엘리트가 되었을 거고, 그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학교육을 받았던 영선 역시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거다. 선경이 보통의 승용차가 아닌 군용 차량에 치어 사망하는 설정을 넣은 건, 선경 역시 전쟁이 죽인 거라는 감독의 의도가 녹아 있었다고 본다.

 

 

서두에 영화의 교훈적 성격이 짙다고 언급한 이유 중 하나는 김대위의 대사가 무척이나 작위적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몇 대사를 소개하자면

 

레인코트를 사달라는 딸아이 선경에게

"사치품을 좋아하는 습성을 조장시키면 안 된단다."라고 대답하는 부분이나 

 

남편을 잃은 부인들을 모아놓고

"우리나라 형편이 정부나 혹은 사회에 의뢰해서 살아갈 형편이 못됩니다. 오직 우리들은 다 같이 힘을 합해서 살아나가야 하겠습니다."라는 대사 때문이다.

 

김대위는 하반신이 불구가 되자 "내 몸은 우리 조국을 닮아서 두 동강이가 났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대위가 하는 말은 국가가 이대위의 입을 빌려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말 같았다. 난 본래 교훈적인 영화를 꽤나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예외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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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 장면에서 혜경은 부인들에게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성생활이 없는 여자입니다." 하는데 웃을수밖에 없었다. 남편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남편둥절.

 

 

2. 배우 신성일 님이 신인으로 나왔다고 하였는데 도통 찾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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