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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서평_세상에 영화를 위한 소설은 없다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서평_세상에 영화를 위한 소설은 없다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서평_세상에 영화를 위한 소설은 없다

2020. 6. 24. 19:44Book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 문학을 만나다)

이대현 지음

 

 

 

※ 개인적인 서평입니다.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신 구독자님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즉 서사에 매혹된 사람입니다. 이 책은 순전히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어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잘 만든 영화, 못 만든 영화, 그저 그런 영화 등을 잘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어요. 저자가 괜찮게 보았던 작품과 아쉬웠던 작품을 서술한 부분에서 거의 대부분 동감하였습니다. 역시 좋은 건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저는 영화든 미드든 원작 소설이 있다면 무조건 보는 타입이에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요. HBO 왕좌의 게임을 재밌게 보아서 원작 소설을 읽었고 빅리틀 라이즈를 보고도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 소설을 나중에 읽었어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 원작 소설을 읽었고요. 제가 작품 소개를 할 때 원작 소설이 있는 것은 꼭 포스팅하기 때문에 아마 여러분도 아실 것 같아요.

 

 

 

저 에이프릴이 원작 소설 대신 영화를 보라고 권하는 작품들

많은 분들이 통감하실 듯한데 원작보다 근사한 영화는 없다고들 하죠. 저도 단연컨대 원작 소설보다 나은 영화는 여태껏 한 작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미장센, 그리고 카메라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감. 이것은 영화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거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제 생각으로 원작보다 근사한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고전 소설을 영화화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엠마, 작은 아씨들, 보바리 부인 같은 영화들 말이에요. 영상이 글보다 나은 점은 단연 시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18세기 19세기 복식에 깊이 매료되더라고요. 동화 같은 풍경, 고졸한 건축물, 고풍스러운 복식, 하다못해 식기류까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져서요. 그것은 소설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고전 소설을 읽기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에게 대신 영화를 보시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물론 책과 영화를 다 보시면 더 좋습니다. 

 

 

 

오래전 작품이지만 현대상에 맞게 변용한 작은 아씨들과 빨간머리 앤

꼭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 원작을 충실히 옮겨내는 것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영화라는 것도 시대적 분위기와 사회적 통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문화 콘텐츠라고 생각하거든요. 100년 전, 200년 전에 나온 작품과 지금의 가치관은 무척이나 다를 거예요. 불과 10년 전 얘기여도 갸우뚱할 때가 많거든요. 그렇기에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감독의 재량으로 적절히 변주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봐요. 최근 종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도, 작년에 개봉된 '작은 아씨들'도 현재의 통념을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스스로 질문한 것이 있었습니다. '글과 영상은 다른 범주인데 어째서 항상 당연히 영화는 원작 소설보다 못 하다고 생각하였을까?' 하고 말이에요.

 

 

이대현 작가는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에서 소설과 영화가 다르다는 것을 명징하고 있습니다. 

 

치명적 오류는 바로 그 매력과 착각에 있다. 글(소설)이 가진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을 해체하고 파괴할 영상언어가 필요하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상상력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없다. 그것을 표현할 장치를 찾아내야 한다. 소설의 힘이 강하다고 그 힘에 의지하면 영화는 언제나 소설의 껍데기, 아류만 될 뿐이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싶은 욕구를 심어주기보다는 이런 작품이라면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는 어설픈 면죄부만 줄 뿐이다. 언제까지 소설이 가진 상상력의 자유로운 표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영화의 숙명이고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에는 어렵다고 변명할 텐가, 세상에 영화를 위한 소설은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81p)

이 문단을 보고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하신 말이 떠올랐어요. 작가들은 우주가 배경인 소설을 쓰고 싶으면 "여긴 우주다."라고 하면 된다고요. 제가 그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ㅋㅋ) 만약 우주가 배경인 영화를 만든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거예요. 실제 우주처럼 보여야 하니까요. 아마 김영하 작가는 글을 쓸 때 영화감독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자유롭다는 의도로 말씀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감독이 풀어내어 시각화된 것과 소설을 읽고 개개인이 상상한 것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원작소설은 일본이지만 한국의 정서에 맞게 변용한 영화 '화차'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에서는 여러가지 작품을 소개하였지만 저는 이왕이면 잘 만들었고 호평을 들었던 작품. 그리고 제가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이었던 "화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화차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만든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되기 전에 일본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저는 배우 김민희 님이 화차 때부터 연기력 논란이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원작 소설은 일본의 시대상에 기반하지만, 한국에서도 개인 파산이나 신용 불량자는 무척이나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죠. 저는 영화 화차에서 한국식에 맞게 변용을 무척이나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일본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할 때 왜색이 짙은 영화들이 있습니다.(리틀 포레스트, 심야식당) 물론 이것은 이것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저 그런 아류를 만들 것이면 뭐하러 영화를 만들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적어도 화차는 현재 한국, 그리고 시대상, 분위기를 녹여냈고 관객에게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여서 더 무서웠고요. 여담으로 화차의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출간한 소설은 거의 다 읽었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모방범'과 '그로테스크'예요. 혹시나 현대 추리물이 읽고 싶은 분들은 조심스럽게 그의 소설을 추천해드립니다. 현대 추리물 말고도 애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도 쓰십니다. 3권에 걸친 방대한 양도 단숨에 읽게 만드는 필력이니 혹시 이런 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

 

 

전문 서적이 아닌 교양서일 뿐인데 영화에 대한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수록 알면 알 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전혀 제 분야가 아닌 것을 학습하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고요. 적어도 전 이제 영화가 소설보다 못하다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6년에 출판된 도서여서 비교적 최신작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 간의 간극이 아닌, 포용과 변주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책을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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