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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서평 원명희 작가 l 어린이 도서 추천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서평 원명희 작가 l 어린이 도서 추천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서평 원명희 작가 l 어린이 도서 추천

2020. 8. 15. 11:00Book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서평 원명희 작가 l 어린이 도서 추천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

원명희 작가 

 

 

보통은 서평의 줄거리를 첨부하지 않는데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번은 줄거리를 알려드릴게요.

 

줄거리

재건축을 앞둔 상가 안에 새로 생긴 의문의 세탁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동화입니다.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하늘. 그렇지만 학교와 집 어디에서도 하늘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괴로운 나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하늘의 눈앞에 무엇이든 세탁해 준다는 세탁소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곳에서 하늘은 아픈 기억과 자기 몸에서 나는 악취를 없앨 수 있게 돼요. 형태와의 오해를 풀고 친구로 되돌아가고, 더 이상 진우를 비롯한 119 패거리에게 끌려다니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어젯밤 새벽에 제목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읽은 책이에요. 아이들이 보는 어린이 도서입니다. 이전에 이현 작가의 작법서 "동화 쓰는 법"을 읽고 나서 가끔가다 어린이 도서를 보고 있어요. 생각보다 재밌어요. 내포 독자를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설정하시고 쓰신 것 같은데, 에필로그에 작가님의 도서를 보고 마음속 큰 위로를 받았다며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어린이 독자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의 세계를 성인의 눈으로 그려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이들이 감응할 수 있는 글을 쓰시는 게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보고 나서 아이들 역시 감정적으로 성인보다 덜하거나 둔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거든요. 더불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치원 때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만만한 때는 없다는 것까지도요. 성인보다 아이들의 눈에서 슬픔을 보면 가슴이 더 미어져요. 왜 그런진 잘 모르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하늘이 역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적응하지 못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 왔지만, 거기에서도 진우한테 찍히고 말았어요. 새로 지내게 된 학교에서도 이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돼요.

 

 

때리면 맞아야하고 싫은 소리를 하면 들어야 하고 최대한 진우가 시험지 성적을 고치라고 하면 티 안 나게 고쳐야 하고 여의치 않을 땐 100점짜리 자기의 시험지와 이름을 바꿔서 건네주기도 해요. 

 

 

제가 재밌다고 느낀 부분은 형태가 등장하면서부터인데요. 형태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목발을 짚고 있어요. 하늘이는 처음에 형태를 보았을 때 자기처럼 약자라고 생각해서 어쩌면 자신이 겪고 있는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거든요.(저는 하늘이의 굉장히 이기적이고 나쁜 속마음을 보고 흠짓 놀랐어요.) 그런데 하늘이의 예상과는 달리 형태는 조금의 구김살도 없고 당당히 자신의 소개를 마치기에 "쟨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반 아이들이 형태 주위에 모여들고 형태를 좋아하지 뭐예요. 그 나쁜 진우까지 말이에요.

 

 

저는 목발을 짚고있는 형태의 태도부터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다리가 불편해서 친구들한테 주눅이 드는 게 아니라, 당당해요. 목발 따위 형태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만약에 친구들에게 무시를 받고 주눅이 잔뜩 든 몸이 불편한 친구를 주인공 역시 무시하다가 갑자기 각성하게 돼서 그 아이에게 "우리 친구가 될래?"라고 손을 내밀면 그 아이는 "응. 우리 친구 하자."같은 설정이었다면 저는 바로 책을 덮어버렸을 거예요. 

 

 

여기에서 약자는 하늘이에요. 그리고 형태는 강자예요. 형태는 강한 자에겐 강하고, 약한 자에겐 약한 자거든요. 진우 패거리들이 마마보이 하늘과 놀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아요. 나중엔 계속 괴롭히면 하늘이처럼 너도 똑같이 왕따를 시킬 거라고 해도 듣지 않아요. 강골이죠. 

 

 

하늘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하늘이가 겪는 감정 변화가 참 재밌어요. 진우 패거리가 그렇게 싫으면서도 어울리고 싶어 하는 그 마음. 형태가 좋은 친구라는 걸 알지만 다시 왕따가 되고 싶지 않은 간절함. 어린애들도 다 겪잖아요. 그런 거. 어쩌면 어린아이들이어서 더 독한 것 같기도 해요. 잘 모르니까.

 

 

하늘이는 지나칠 정도로 진우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지독하게도 괴롭힘 당하고 끌려다니거든요.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요. 원명희 작가는 하늘이에게 "악취"라는 설정을 넣었는데 이건 타인은 느끼지 못하고 하늘이 혼자서 느끼는 거예요. 행복 세탁소에 가서 하늘이가 자신의 마음을 씻어줄 수 있냐고 했던 건, 자신의 마음이 옳지 못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악취가 심해지는 걸 하늘이 스스로 인지했다는 것이기도 해요. 옳지 못한 행동을 악취로 표현한 것이 재밌더라고요.

 

 

담임 선생님은 방관자예요. 솔직히 우리 알지 않나요? 어린애들 조금만 관심 기울이면 안 보이는데서 괴롭힘 당하는 거 말하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잖아요. 우린 어른이니까. 반 아이가 괴롭힘 당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아이들에게 "난 너희들 모두가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건, '문제 생기는 게 싫으니까 너희들이 나 모르게 행동하는 건 알 바 아니고 겉으로 보이기에는 문제없이 보이게 해 줘!'로 들렸어요. 실제로 이런 선생님이 대부분일 것 같아서 씁쓸하단 생각이 들었네요. 하늘이가 혼자서 해쳐나가야 하니 담임 선생님이 방관자인 것이 필수적이었겠지만요.

 

 

진우는 이 소설의 메인 빌런인데, 그 아이에게도 당위성은 주고 있어요. 처음에 엄마가 태워주는 차에 타고 온 하늘이에게 "마마보이"라고 놀리고 유달리 괴롭히는 걸 보면서 엄마가 없는 결손가정에서 크는 아이가 아닌가 했는데, 맞더라고요. 진우는 엄마가 도망갔어요. 그리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맞으며 크고 있고요. 진우가 아이들을 때리는 것 역시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겠죠. 하늘이는 우연히 진우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걸 보기까지 했으니, 진우는 얼마나 하늘이가 싫겠어요. 

 

 

악역인 캐릭터에게까지 사전 배경을 충분히 해주고, 왜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건지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설정이 좋더라고요. 그냥 걘 나쁜 애야. 걔는 애들 괴롭히는 거 좋아하는 애야. 가 아니라, 왜 아이가 그렇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이 되어서야 하늘이는 진우와의 악연을 끊어내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형태와 우정을 회복하면서 끝이 나요.

 

 

판타지적인 요소와 함께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학교 생활하며 겪을 수 있는 관계에 대한 문제를,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재밌게 봤어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가둬 키우려고만 하는 엄마에 대한 설정도 재밌었고요. 하물며 아이들이 읽는 도서도 이렇게 탄탄한 서사인데, 성인이 보는 영화 시나리오를 사소한 디테일 싹 다 무시하고 개연성 없는 전개에 공중에 붕 뜬 캐릭터로 만드는 작가들은 정말....

 

 

보통 어린이 도서를 읽으면 서평은 쓰지 않는데, 무엇이든 세탁해 드립니다는 서평을 써보았어요. 직접적으로 아이를 상대하는 선생님들이나,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도 좋은 도서가 될 것 같았어요. 우리는 어렸을 때의 상황과 마음을 어른이 되면 쉽게 잊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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