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3. 22:31ㆍBook
파인드 미 서평 l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편 l 안드레 애치먼
파인드 미 (FIND ME)
안드레 애치먼 지음 (Andre Aciman)
※ 무척 개인적인 서평입니다.
파인드 미는 새뮤얼에서 엘리오로 엘리오에서 올리버로 바통을 이어받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새뮤얼이 미란다와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서로 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엘리오가 미셸과 만나 그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과정. 마지막으로 올리버가 에리카와 폴이란 가림막으로 엘리오를 떠올리는 과정까지.
새뮤얼이 미란다를 만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가 맘에 들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는 걸 보면서 나이 듦이라는 게 어떤 걸까 생각해봤다.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게 있다면 바로 공감능력이니까.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이혼하고 장성한 아들이 있는 50대 중년 남성인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무언가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서글펐다. 무력했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상대만큼 젊지 않아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나, 새뮤얼과 미란다가 대화를 나눌 때의 그 팽팽함이 좋았다. 맘 편히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선수와 선수가 서로의 기분을 살피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에 대한 촉각을 곤두 세우며, 절대 긴장을 놓지 않고 서로를 파악하는 것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이라면 많은 쪽 역시 그럴 테지만, 적은 쪽이라고 다르지 않다. 서로 나이차가 혹여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 두려울 거다. 미란다가 처음 본 그를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과감함이 좋았다. 여태껏 오랫동안 만나왔던 사람보다 기차 안에서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한 그가 미란다를 더 많이 알게끔 한 것이 좋았다. 그와 진지한 관계가 되기 전에, 그 어떤 벽도 없애고 싶어서 너무 짐스러워 없앨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린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은 것이 좋았다. 미란다가 새뮤얼을 처음 만난 날 그만한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그 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은 없었을 거고, 귀여운 리틀 올리버 역시 태어나지 않았을 테니.
전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미적지근한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야. 파인드 미를 읽으며 올리버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 같았다. 난 올리버가 정말이지 미웠다. 당연하게 자신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내보이거나 터치하면 상대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그 오만부터, 엘리오가 평생 동안 결국 그의 잔상 속에 살아가는 게 싫었다.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고 있어도 결국 맘 속에 단 한 사람을 품고 사는 게 싫었다. 올리버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던 오랜 사랑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럴듯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도 싫었다. 엘리오에게 "난 모두 다 기억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싫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엘리오가 미셸을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는 정말 미셸을 사랑했다. 미셸은 엘리오가 두려워하는 걸 알았고 영혼을 잃었다고 말하는 엘리오에게 "당신은 날 아프게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게끔 하는 것을 보며 그가 참 사려 깊다고 느꼈다. 미셸은 엘리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떠난 올리버를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엘리오는 미셸의 부탁대로 스스로 '당신은 날 아프게 하지 않아요'를 읊으면서 스스로 안심하게 되었으리라.
나, 결국 사랑하게 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여름 이탈리아에서 17살의 엘리오와 24살의 올리버가, 20년이 지났어도 그 순간부터 단 한 살도 나이 먹지 않았음을 느꼈고, 그 둘이 다시 재회하여 엘리오의 아버지인 새뮤얼과 미란다가 낳은 아이의 이름이 '올리버'인 것을 보며. 그 둘이 나누는 대화를 보며. 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느꼈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거. 우리가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어느 순간 결국 만나게 됐을 거라는 거. 나와 내 남자 친구가 나누었던 대화는 소개하지 않을 거지만. 엘리오와 올리버의 대화는 소개해볼까 한다.
"네 이름 누구 이름을 따서 지은 건지 알아?" 올리버가 물었다.
"알아."
"누군데?"
"아저씨."
나는 마지막 대화를 들으며 목이 메는 듯했다. 우리가 말하지 않았고 말할 시간이 없었거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너무도 많은 것이 도드라졌다. 미완의 선율을 해결해 주는 마지막 화음처럼. 너무도 긴 세월이 흘렀고 헛된 낭비인 줄 알았던 그 많은 시간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누가 알까.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아이는 우리의 아이와 같았고 내가 갑자기 분명히 알게 된 것들을 너무도 단호하게 예언해 주었다. 저 아이의 이름이 올리버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부터 올리버는 내 핏줄이었고 늘 이 집에 살았으며 이 집이었고 내 삶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오기 전부터,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 세대 전에 조상들이 초석을 놓기도 전부터 이미 여기에 있었고 시간이라는 여정표에서 우리가 떨어져 지낸 세월은 아주 사소한 차질에 불과했다. 기나긴 시간, 기나긴 세월, 우리를 스치고 떠나보낸 모든 삶이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설령 그렇더라도 시간은, 우리가 껴안고 늦게 잠들기 전에 그가 한 말처럼 시간은 언제나 아직 살지 않은 삶에 치르는 대가다.
올리버는 그의 입으로 말하길 인생이 우회로였다고 말했다. 바이섹슈얼인 그가 폴과 에리카에게 미친 듯이 끌렸던 이유도. 사실은 엘리오를 그리워한 것이었음을. 그럴듯한 가림막이었음을. 엘리오의 가슴에 평생 회복할 수 없는 구멍을 뚫었지만 영영 치유되지 못했던 건 바로 그였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고 돌아 결국 함께 한 것은 좋았지만, 난 미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엘리오의 표현대로라면, 미셸은 엘리오보다 두 배의 나이가 많을지언정 무척이나 근사하고 멋있는 사람이었을 거다. 엘리오는 올리버와 이별하고 15년이 지난 후 미셸을 만났다. 그리고 5년이 또 지나 올리버와 재회하였을 때, 올리버가 자신은 미콜이 있었고 엘리오는 미셸이 있었다고 말한 걸 보면 엘리오와 미셸은 제법 오래 만났던 거다. 미콜과 미셸을 버리고 그들은 서로를 선택했다.
내가 미셸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는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알았다. 엘리오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알았다. 그는 절대 엘리오에게 올리버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 그 둘의 대화를 인용해볼까 한다.
프랑스 시인이 말했지. Le temps d'apprenda a vivre il est deja trop tard.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즈음이면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하지만 타인이 마감하지 못한 장부를 대신 작성하고 그들의 마지막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완성해 줄 수 있는 위치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이 있을 거야. 내 삶도 채우고 완성하는 게 언제나 타인에게 달려 있음을 아는 것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우리가 사랑했고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말이야. 내 경우는 항상 너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 우리가 헤어진다고 해도. 내 눈을 감겨줄 사람이 누구인지 벌써 알고 있는 기분이야. 난 그게 너였으면 해. 엘리오.
미셸의 말을 들으면서 내 눈을 감겨줬으면 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지만 바라건대 그는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감싸주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올 것이다. 내가 그의 눈을 감겨주기 위해 그렇게 할 것처럼.
넌 내가 이 삶에서 갖지 못할 뻔한 카드야. 오늘 속속들이 들여다보니 역시나 너에게는 한 사람뿐이라는 걸 알아. 그게 내가 아니란 것도.
올리버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어쩌면 영영 쎄컨 러너가 될 수 있음에도 엘리오와 사랑을 지속했던 미셸이 올리버보다 더 눈에 들어왔다. 만약 나였다면.. 상대의 마음속에 누군가가 가득 차있다면, 난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미셸은 결국 언젠간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돌아갈 걸 본능적으로 알았으면서도 엘리오와 함께 있는 순간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그를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결국 올리버에게 돌아가게 됐어요." 라며 이별을 고하는 엘리오에게 미셸은 그를 있는 힘껏 안아주며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었을 것이다.
늦은 새벽 책을 다 읽고 나자 무언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파인드 미 역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처럼 영화화될 예정이며 전편에 출연하였던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할 예정이다. 영화에서는 그 둘의 사랑이 어떻게 그려질까. 마지막으로 올리버가 술에 많이 취해 그의 맘 속에 있던 엘리오와 하던 대화를 소개해드리며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연락하지 않았지만, 사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그들은 단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너는 알 거야. 내가 긴 세월 동안 내내 허우적거린 거 너는 잘 알 거야."
"알아요.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는걸요."
"그럼 넌 잊지 않은 거구나."
"당연히 잊지 않았죠."
2020/04/06 - [Film]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줄거리 결말 명대사_날 네 이름으로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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