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 시험 리뷰 후기 l 우리 은희 정말 예뻐

리코더 시험 리뷰 후기 l 우리 은희 정말 예뻐

2020. 8. 31. 10:14ㆍFilm

리코더 시험 (The Recorder Exam) 2011
감독 : 김보라
제작 : 조수아
각본 : 김보라
출연 : 황정원, 박명신, 정인기

리코더 시험 줄거리

1988년 서울, 9살 은희는 리코더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시험을 잘 보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발표회를 할 수 있어서다. 은희는 열심히 리코더 연습을 하지만 가족들은 은희에게 관심이 없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보고 은희의 초등학생 때를 다룬 리코더 시험이 바로 보고 싶었다. 벌새를 보고 봐서 그런지 프리퀄같은 느낌으로 봤다. 은희의 결핍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거구나. 고작 9살이었을 때부터..

※ 리코더 시험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9살의 은희

은희는 실수로 리코더를 챙겨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가져다 달라했지만 방앗간 일로 바쁜 엄마는 거절하신 모양이다. 리코더를 가져오지 않아 은희는 수업시간 내내 손을 들고 서있어야 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은 '한나'는 이름부터 세련됐다.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고, 리코더는 딱 보기에도 은희의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한나의 엄마는 한나의 방에 들어갈 땐 꼭 노크를 하신다. 한나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은희는 오빠에게서 리코더를 물려받았다. 기분 탓인지 리코더가 낡아서 소리가 맑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은희는 언니인 수희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데 수희는 종종 몰래 남자 친구를 방에 데려온다.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한 은희는 옷장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곤 한다. 오빠한테 맞고 울 때도 은희는 옷장 안에 들어가 숨는다.

이렇게 한결같을 일이야?

은희가 오빠에게 폭력을 당했던 것도 꽤나 오래전부터 지속된 것이었구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맞았다고 말해도 아빠는 우는 은희에게 시끄러우니 그만 울라며 원숭이 같다고 말한다. 동생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하는 아들을 절대 혼내지 않는다.

은희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바람을 피우던 아빠는 역시 은희가 초등학생일 때에도 외도를 하고 있다. 재밌는 건, 은희의 엄마는 여기서도 아빠의 외도를 알고 있다는 거다. 엄마는 집 밖에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은희에게 아빠가 뭐하냐고 물었을 때, 은희는 아빠가 "나도 사랑해"라고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말하는 걸 들었음에도 엄마에게 아빠가 자고 있다 거짓말을 한다. 은희는 9살밖에 안 됐으면서 일이 돌아가는 생리를 알아버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엄마 마음이 아플 것을 알아서 그랬을 거다.

벌새에서도 엄마는 오빠 밥을 챙겨주라고 말했다. 리코더 시험에서도 9살짜리인 은희에게 끽해야 한두 살이 더 많을 오빠 밥을 차려달라 부탁한다.

은희의 언니인 수희는 1988년도에도 남자를 몰래 방에 들여오고, 늦게 들어와 아버지한테 혼이 난다. 수희가 계속 남자 친구를 사귀고 집에 데려오는 것도 수희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희가 숨통을 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는 장남을 제외한 다른 자식은 전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거든.

우리 은희 정말 예뻐

은희를 보면, 왜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10살도 안된 아이가 왜 부모의 관심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하는 걸까. 자꾸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 은희의 부모가 원망스러워졌다.

은희가 엄마에게 자신이 예쁘냐고. 귀는 예뻐? 코는 예뻐? 눈은 예뻐?라고 계속 묻는 걸 보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무래도 아빠의 외도 때문에) 기운이 없고 복잡해 보였던 엄마는 다행스럽게도 은희의 의중을 알고는 꼭 안아주었다. 걱정했다. 엄마가 은희의 마음을 못 알아봐 주면 어쩌지 하고.. 근데 엄마니 모를 수가 없었을 거야.

은희가 자기가 계속 예쁘냐고 묻는 건, 자신을 사랑하냐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으리라. 그 조그만 게 이미 사랑이 고픈 게 눈에 보이는 걸. 우리 은희는 이런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