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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 2020 l 이렇게 안 무섭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루지 2020 l 이렇게 안 무섭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루지 2020 l 이렇게 안 무섭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2020. 10. 5. 18:12Film

그루지 2020 l 이렇게 안 무섭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루지 (The Grudge) 2020
감독 : 니콜라스 페스케
각본 : 니콜라스 페스케, 제프 불러
출연 : 앤드리아 라이즈버러, 데미안 비쉬어, 존조, 린 샤예, 재키 위버
그루지 줄거리

일본 도쿄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던 피오나 랜더스는 이상한 느낌을 느끼고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왔다. 주온의 저주가 가득한 집에 머물렀던 피오나는 카야코의 저주가 묻었고 그는 미국으로 주온의 저주를 업고 왔다. 카야코의 저주는 멜라니에게 옮겨졌으며 그 집에 발을 들인 자들은 주온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을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그루지 2020을 보았다. 그루지 시리즈가 잘 되었던가. 일본의 정서와 미국의 정서는 매우 다르므로 일본의 공포를 미국 스타일로 녹여내는 것은 꽤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루지 2020은 무서운 건 고사하고 잠이 쏟아지는 수준이었다.

 

니콜라스 페스케 감독은 그루지 2020을 그루지 시리즈와 배경이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말하였는데 차라리 다 갈아엎은 리부트였으면 이것보다 낫지 않았을까 싶네.

 

 

※ 그루지 2020의 스포일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며 무척 개인적인 글입니다.

오프닝 시퀀스는 그럴듯했다


When someone dies in the grip of a powerful rage, a curse is born

It gathers in the place of death, but cannot be contained

Once you encounter it.. it will never let you go

 

사람이 강력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사망하게 되면 저주가 생겨난다.

저주는 죽음이 만들어진 곳에서 응집되며 막을 수 없다

저주와 한 번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주온은 한국말로 '주원'인데 저주의 주와 원한의 원을 합친 말로 감독이 직접 만든 말이다. 주온은 미국에서 제작되면서 The Grudge라는 이름이 붙었다. Grudge는 주온의 반의 반절의 의미도 내포할 수 없는 단어다. 완벽히 치환될 수 없는 어휘라면 차라리 주온이란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루지라는 제목은 관객에게 주온 만큼의 강력한 공포감을 주지 못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4자와 死의 발음이 같이 때문에 4자를 꺼려하는 미신을 차용한 것인지 주온의 온상이 되는 집 주소가 44번지라든가. 11시 44분과 같은 4를 활용한 미장센을 보여주더라. 하나도 안 무섭다는 게 문제지만.

 

호러영화라는 이름을 달고 이러면 쓰나


러닝타임은 채 100분이 되지 않는다. 최근에 본 호러 영화 중에서 이렇게 지루하고 싱거운 작품은 없었다. 신박해.

 

2004년 도쿄에서 카야코를 수입해 온 피오나와 부동산 업자인 스펜서 부부 내외. 사건을 파헤치던 윌슨 형사. 2005년에 레이번가 44번지에 살게 되는 메드슨 부부와 자살을 돕는 상담사, 2006년 남편의 죽음 후 크로스리버로 이사 온 멀둔 형사까지. 원 작품인 주온처럼 비선형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독립된 사건처럼 보여도 레이번가 44번지 주택이 각 사건을 연결지어주는 유기점으로써 역할을 해야 하는데 사건과 캐릭터간의 연결고리가 매우 적다.

 

딱 잘라 말하면 일본의 '주온'은 미국의 '그루지'로 변화하며 미국의 문화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변주하는 것에 실패했다. 각 인물들이 죽음을 맞는 부분은 지루하다 못해 고루할 지경이다. 4라는 숫자를 자꾸 넣으면 그게 동양에서 온 공포가 되나. 핏기 없는 창백한 귀신 대신 피로 칠갑한 귀신이 되면 미국의 공포가 되나.

 

굿맨은 왜 주온의 저주에서 자유로운가


파트너 형사였던 윌슨은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권총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아 정신 병동에서 지내고 있다. 둘 다 그 집에 발을 들였는데 왜 굿맨은 저주에서 자유로울까

 

넷플릭스 시리즈 주온 저주의 집 리뷰에서 카야코가 부동산 업자와 이야기꾼인 오다지마는 살려두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집에 발을 들이는 모든 인물에게 저주를 묻혀버려 죽여버리면 주온의 저주는 퍼져나갈 수 없으므로 계속 그 집에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와 저주의 이야기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도운 오다지마를 살려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일종의 숙주 같은 개념으로.

 

그렇다면 굿맨은 왜 살 수 있었을까? 주온 저주의 집에선 카야코가 두 인물을 살려놓았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허나 그루지 2020에선 굿맨을 살려둔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 집에 잠깐 발을 들인 부동산 업자에게도 묻었고, 잠깐 발을 들인 상담사 역시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잠깐 발을 들인  윌슨 형사는 권총 자살을 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스스로 제 눈을 찌르기까지 했다. 그럼 굿맨은 왜?

 

굿맨은 그 집이 저주가 들린 집이라는 걸 안다. 주위 형사들도 그 집 얘기를 굿맨 앞에서 꺼내지 않는 걸 보면 동료들 역시 학을 뗐다는 걸 알 수 있다. 굿맨은 레이번가 44번지의 저주가 계속 퍼져나갈 수 있게 돕는 사람이 아니고 계속 그 집에 사람을 불러 모으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겐 저주가 묻지 않았을까?

 

그가 의도적으로 피해서? 재수 없는 집과 엮이지 않으려고 해서? 스치면 최소 사망인 저주의 힘을 눈치채서?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전 유추가 힘드네요.)

 

임팩트 없던 예상 가능한 결말


오프닝 시퀀스에서 분명히 경고했다. 

 

Once you encounter it.. it will never let you go

한 번이라도 저주와 마주하게 된다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멀둔은 저주받은 집을 불태워버렸지만 결국 주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멜린다와 피오나는 이사를 한 듯 싶었다. 레이번가 44번지에서 멀둔 형사의 집으로. 

 

마지막 엔딩에서 멀둔은 버크인 줄 알고 꼭 껴안았지만 그건 멜린다였고 결국 피오나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간다.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다. '아 드디어 이 지루한 영화가 끝났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더라.

 

한줄평 : 안 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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