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9. 19:18ㆍFilm
영화 콩나물 리뷰 l 윤가은 감독 l 콩나물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콩나물 (Sprout) 2013
감독 : 윤가은
각본 : 윤가은
출연 : 김수안, 김소진, 오동주, 정옥광, 김형중
콩나물 줄거리 * 스포 포함
보리네 할아버지 제삿날, 보리의 엄마는 할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콩나물을 깜박했다. 작은할아버지가 아신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터. 보리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던 할아버지의 콩나물을 사기 위해 밖을 나선다. 금방 사 올 수 있을 것 같던 콩나물을 사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시장 속 야채가게를 찾았지만 보리는 무엇을 사가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늦은 밤 제사가 시작됐고 어른들은 콩나물이 제사상에 없는 것을 알지 못한다. 보리가 여행길에 아빠의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쓰고 계시던 할아버지께 건네받은 해바라기 한 송이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콩나물은 윤가은 감독의 20분 내외의 단편 영화로 7살짜리 꼬마 아가씨 보리가 콩나물을 사는 귀여운 여정을 담고 있다. 7살짜리 아이가 혼자서 차와 오토바이가 불쑥 나타나는 구비 구비한 골목길을 걸어가는 걸 보면 혹시 다치진 않을까 싶어서 마음을 졸이게 되더라.
보리는 큰 강아지를 만나자 이웃 아줌마가 주셨던 빵을 유인해 좁은 골목을 지나가기도 하고 시장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택배 기사 아저씨를 보고는 엄마를 찾으며 급히 도망치기도 한다.(보리 어머니가 교육을 참 잘 시키셨다) 언니 오빠들이 오락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어떤 언니와 다툼이 나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도 한다. 평상에서 막걸리를 먹고 노는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도 얻어먹으며 재롱 잔치도 선보인다.
그러다 아빠의 밀짚모자와 같은 모자를 쓰고 계신 한 할아버지를 따라가고 그 할아버지에게서 해바라기 한 송이를 건네받았다. 할아버지는 보리에게 시장의 위치를 일러주시기도 했다.
겨우겨우 시장을 찾아 야채가게를 찾았지만 보리는 콩나물을 사야 된다는 걸 잊어버렸다. 집에 도착한 보리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 옆에 해바라기를 놓아드렸다. 보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진 속 할아버지는 오늘 보리에게 시장이 어딘지 일러주시고 해바라기 한송이를 건네주시던 인자한 미소의 할아버지다.
초등학교 일 학년 이 학년 즈음이다. 엄마는 가끔 나와 동생에게 오천 원 정도를 건네주시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라고 하셨다. 내가 보리만 한 나이일 때 5천 원은 큰돈이었고 가게에 가서 자잘한 식료품을 구입하면 마치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단 느낌이 들곤 했다.
몇몇의 채소와 김구이 정도를 사서 집에 오면 엄마는 장바구니를 확인하시곤 장을 잘 봐왔다며 나와 동생을 칭찬하셨다. 뭘 샀는지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 손을 잡고 마트에 가던 조금 들떴던 기분은 선명히 기억난다.
윤가은 감독은 영화 콩나물을 어릴 적 어머니가 심부름을 제대로 해내었던 경험과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그리움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밝혔다. 그는 20분짜리의 단편 영화로 이렇게 내 유년기의 기억까지 끄집어내는구나. 항상 아이들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눈높이로 작품을 만드는 그의 작품을 보면 그 나이 때의 내가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지고 만다.
보리는 결국 콩나물을 사지 못했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했다. 이 영화는 '콩나물'을 사기 위해 처음으로 집 밖을 혼자 나서는 꼬마 아가씨 보리의 이야기이지만 콩나물을 사는 것보다 보리가 콩나물을 사러 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험이 훨씬 더 의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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