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Analytics Made Easy - StatCounter
드라마 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 줄거리 리뷰 드라마 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 줄거리 리뷰

드라마 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 줄거리 리뷰

2020. 12. 3. 14:57TV series

드라마 스페셜 일의 기쁨과 슬픔 줄거리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KBS 드라마 스페셜 2020)
연출 : 최상열
극복 : 최자원
원작 : 장류진 작가의 동명 소설
출연 : 고원희 오민석 강말금
일의 기쁨과 슬픔 줄거리

우동마켓(중고 상품 거래 앱)에는 해비 파워 셀러가 있다. 하루에도 몇 백개의 새 제품을 최저가보다 살짝 낮은 가격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 셀러의 이름은 '거북이알'이다. 우동마켓의 사장은 거북이알이 자신들의 앱을 도배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만나 프로필 사진 좀 바꾸고 도배하지 말고 적당히 올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한다.

거북이알을 만나기 위해 그가 판매하는 캡슐커피머신을 회사 근처 판교의 커피숍에서 거래하기로 한 안나는 거북이알이 중고 물품을 대량으로 올리는 이유가 포인트로 월급을 받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안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

 

※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19년 출판되었던 장류진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장류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그의 작품을 드라마화했다. 알랭 드 보통의 수필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이 작품은 판교에서 근무하는 스타트업 회사들의 직원들을 위로하고 울렸던 테크노밸리의 고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퍽 범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정도면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뜬금없이 재벌 3세의 남자와 평사원인 직원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엉덩이 밀어 넣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였으니까.

 

일의 기쁨과 슬픔은 무척 핫했던 소설이다. 하지만 구태여 읽고 싶지 않았다. 책을 통해서까지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한 사회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소설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 무력감을 줄 것 같단 느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드라마화된 것과 본래의 소설이 얼마만큼 다른 이야기인진 모르겠지만 드라마만 보았을 때는 적당한 결말에 훈훈한 이야기이지 않았나 싶다.

 

안나가 근무하고 있는 '우동 마켓'이 직급을 없애고자 영문 이름을 사용하는 시도가 우스워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의 시도라도 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만큼도 안 하고 지독한 위계질서와 수직적인 분위기로 사내 분위기를 유지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한국의 실리콘벨리라는 '판교'에 위치한 스타트업 회사여서 가능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등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영문 이름을 부른다고는 하지만, 우동 마켓에 해비 유저가 글을 많이 올린다고 해서 고객에게 찾아가 프로필 사진이 징그러우니 프로필 사진을 바꾸어달라고 해달라니. 이것이 말인가 방귀인가. 고객이 어떤 사진을 쓰든, 얼마나 많은 글을 올리든 고객의 마음이지 그걸 왜 컨트롤하려고 하는지? 어뷰징도 아니고 덕분에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고 우동 마켓의 평판도 올라가고 있는데.

 

커피 믹스 단가를 50원 낮추겠다고 더 맛없는 커피를 주문하고, 그런 대표님의 의도에 반항하고자 어떤 직원은 일부러 두 개의 커피 믹스를 한 번에 먹는다. 500원만 더 주면 접착력이 짱짱한 테이프를 구입할 수 있는데도 대표님이 최대한 싼 제품을 구입하는 바람에 우동 파는 가게가 아니라고 붙여놓은 종이가 자꾸만 떨어지고 만다. 뭔가 웃프다.

 

루즈했던 극의 분위기는 안나가 거북이알님을 만나면서부터 장면의 전환을 맞는다. 미온적인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다가 거북이알님이 왜 하루에도 백개 넘는 게시물을 올렸는지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됐을 때부터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중고마켓 앱에 최저가보다 조금 싼 가격으로 가전제품을 올리게 된 사연.

 

거북이알님은 대표의 인스타 갬성을 헤아리지 못한 죄로 1년 치 월급을 현금 대신 카드사 포인트로 받게 됐다. 그 순간이 거북이알님이 처음으로 직장생활 15년 차에 회사에서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고. 처음엔 포인트로 부모님의 선물을 사고 포인트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나중엔 포인트를 현금화하기로 했단다. 직원이기 때문에 훨씬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거북이알님은 안나에게 이상하단 생각을 안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 머리가 이상해져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의 밸런스를 맞추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안나는 거북이알님과 걸어가던 중 매일 속을 썩이고 사회성이 전혀 없는 케빈이 전에 근무했다던 네이버 직원들을 본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걷고 있던 그들을 보며 케빈을 떠올린다. 아마 저들과 평탄히 어울리지 못했을 개발자 케빈을.

 

포스트잇을 분명히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발견한 안나는 케빈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케빈이 처음 우동마켓에 입사한 날, 자신이 얼마나 사회성이 있고 협력을 잘하는 인물인지 대표님에게 언급했던 것을 기억했던 안나는 케빈에게 레고를 선물하며 사과를 구했다. 이번 리뷰의 제목을 '미안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라고 정한 것은 여기에 있다.

 

아직 어리고 사회 경험이 적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을 종종 본다. 고등학생이나 할 법한 정치질을 한다거나, 초등학생도 안 할 조롱을 한다거나. 애들이야 어려서 그렇다 쳐도 다 큰 어른들 중에서도 나잇값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자들이 제법 된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본디 성숙한 어른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근데 이 당연한 것도 할 줄 모르는 자들이 세상엔 너무 많더라. 미안한 걸 미안하다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인정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자라면 충분히 기본은 되는 자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그들이 이상하단 생각을 안 하고 살려면 얼마나 더 많은 인내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걸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익숙해지는 걸까?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아서 괜스레 씁쓸해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