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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결말 l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결말 l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결말 l 사랑

2020. 12. 29. 21:02Film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결말 l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원작 : 다나베 세이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 이누도 잇신
주연 :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줄거리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는 우연히 소문으로만 듣던 조제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나게 됐고 그와 사랑에 빠졌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됐던 건 고등학생 때다. 야자시간에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내가 듣던 라디오 프로의 코너 중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가 진행하는 '귀로 듣는 영화'란 코너가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기억하고 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어린 내가 '결말이 뭐가 이래?'라는 불만이 들었을 만큼 해피엔딩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기로 하고 며칠 전 남자 친구에게 이 영화를 볼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이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어땠냐고 물었더니 '현실적이었어'라고 답했다. 현실적?

 

영화를 보는데 오래 걸렸다. 아플 것 같았거든. 다 보고 난 지금은 가슴에 멍울이 진 것 같이 먹먹하고 자꾸만 눈물이 찬다.

 

조제는 장애가 있다. 다리가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장애인과 비 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사랑 얘기다. 서로에게 끌려 사랑했다가 그 마음이 점차 시들해져 자연스럽게 이별한 사랑 이야기. 큰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별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멀어진 것이다.

 

조제의 할머니가 조제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말씀을 계속하시는 것이 불만족스러웠다. 그것이 내심 미웠는데 조금 지나고선 알았다. 조제에게 너의 다리가 불구이며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계속 주입시키셨던 건, 추후에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믿었을 때 받게 될지도 모를 상실감과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조제에 대한 감정이 호감 일지. 어쩌면 얄팍한 호기심일지도 모를 츠네오에게 다신 찾아와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던 것 역시 조제를 지키시려던 것이었을 테고.

 

할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조제는 퍽 용감하다. 그리고 동화 속에 살지 않는다. 이것을 꼭 말하고 싶었다. 조제는 정. 말. 용감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츠네오에게 가라고 윽박지르고는 정말로 그가 문을 나서자 '진짜 가라고 해서 가라고 하는 놈이라면 가버려.'라면서 우는 것을 보고 조제가 연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야. 조제는 강해.

 

누구나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겁을 낸다. 조제는 처음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알았다. 츠네오가 자신을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걸. 끝을 알고도 사랑을 시작하는 거라면 조제는 정말이지 강한 사람이다. 

 

옛 보육원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가 찾아와 그 남자 집에 찾아가 결혼을 하는 거냐 물었을 때, 조제는 담배를 피우며 자조적인 표정을 짓고는 대꾸했다. "결혼? 무슨 결혼."

 

조제를 데리고 집안 제사에 참석하여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시키겠다던 츠네오는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 

 

휠체어가 망가진 후로는 조제는 항상 츠네오의 등에 업혀서 이동한다. 츠네오는 휠체어를 새로 구입하자고 하자 조제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네 등에 업히는 게 좋다고 했다. 츠네오는 "나도 언젠간 늙는다고"라고 하자 조제는 대답하지 않는다. 조제는 안 것이다. 츠네오가 조제를 업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늙었을 때엔 조제의 곁에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조제가 조금씩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내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진다. 보려던 물고기를 결국 보지 못했던 날 온천여관으로 가자는 츠네오의 말을 무시하고 조제는 물고기가 간판에 그려진 '물고기의 성'이라는 숙박업소에서 묵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곳에만 가면 그럴듯한 상을 준다고 하면서.

 

그곳에서 조제와 츠네오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있잖아. 눈 감아봐

깜깜하기만 한데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몇 달을 더 살다 그 둘은 헤어졌다. 눈물 콧물을 짜거나 서로를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마치 잠깐 외출을 나가는 것처럼. 곧 집에 돌아올 것처럼. 츠네오는 그렇게 조제와 이별했다.

 

조제와 츠네오는 사랑했고 이별했다. 그 과정이 너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그리고 둘 중 누구도 잘못이 없어서. 둘 중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어서. 그래서 싫었다.

 

츠네오가 단순히 조제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이 안쓰러워 동정심에 조제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다. 그는 그냥 '조제'란 사람을 사랑했다. 그들이 헤어졌다고 해서 그들이 나눈 사랑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조제가 별로 외롭지 않다 했던 건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건 진실이었겠지만. 조제는 대단했다. 이별할 것을 알고도 그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가 퍽 대단했다. 자신이 싫어진 건 아니지만 조금씩 미온적으로 변해가는 츠네오의 태도를 보며 조제는 그에게 화를 낸다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될 것 역시 조제는 전부 다 알고 있었으니까.

 

모든 사랑이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런 사랑도 있고. 저런 사랑도 있는 거지. 이번 리뷰의 제목을 '보편적인 사랑'이라고 지었다가 앞에 보편적인을 떼 버리고 '사랑'이라고 지었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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