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1. 02:40ㆍFilm
저는 고전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빨강머리 앤과 작은 아씨들을 꼽습니다. 시골에서 일어나는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일 뿐인데 왜 그렇게 좋은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작은 아씨들은 무려 7번이나 영화로 각색이 되었는데요.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반증이겠죠? 그중 작년 2019년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을 소개할게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감독 : 그레타 거윅
각본 : 그레타 거윅
원작 : 루이자 메이 올컷
출연 :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일라이자 스캔런, 티모시 살라메, 로라 던, 메틸 스트립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로 루이자와 그녀의 자매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 매사추세츠에 살던 귀족이지만 가난했던 네 자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어요. 전쟁 중이고 물질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자매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가족애가 많이 느껴져서 밝고 희망찬 정서가 많이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이 영화는 원작 소설과 큰 뿌리는 함께 하지만, 네 자매가 원작에 비해 더욱더 입체적이고 주체적입니다. 전반적으로 캐릭터 전부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졌어요.
사랑을 선택한 메그
메그는 원작에선 좀 더 속세적인 캐릭터입니다. 화려하고 허영적인 면이 영화에선 많이 드러나지 않았어요. 조와 에이미의 비중이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메그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메그는 결국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죠. 남편에게 자신이 남편을 얼마큼 사랑하는지 말하는 부분이 정말 예뻤어요. 메그의 결혼식에서 대고모가 오두막에서 궁상떨고 살면 나한테 미안할 거라고 하시니 큰 집 살면서 불행한 사람들보다 낫다고 말하는 거 보면 현인이에요.
자기감정에 솔직한 조
조는 루이자의 자전적 소설인 작은 아씨들에서 루이자 본인의 캐릭터입니다. 자기감정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감정을 잘 숨기지도 않아요. 자신의 소설에 대해 단점을 이야기해주는 프레드리히에게 자신처럼 재주도 없고 글도 잘 못 쓰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성질을 잔뜩 부립니다.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싫어해요.
그런 조의 성격이 잘 드러난 장면이에요. 오랫동안 조를 사랑했지만 조가 계속 피해왔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던 로리가 감정을 퍼부으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원작에선 이렇게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더 좋았어요.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지만 오랫동안 자기감정을 고백할 수 없었던 로리와, 결혼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보다 더 끈 꿈과 포부가 있었던 조의 대립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악화되는 자신의 몸 상태에 단념하고 자기가 죽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베스에게 조는 "신이 아직 내 뜻을 못 만나서 그렇다"라고 대답합니다. 조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조는 소설 헤로인의 결혼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선인세 500불을 포기하고 6.6%의 인세와 판권을 챙겨 왔어요. 대고모님의 말과 달리 여성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스스로 성공하게 된 거죠!.
원작보다 더욱더 주체적인 에이미
원작 소설에서는 조를 제외한 세 자매들을 수동적인 느낌이 강한데 영화는 그렇지 않았어요. 특히 에이미가 두드러졌습니다. 전 에이미가 좋았어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이기적이고 철없는 아가씨가 아니라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아가씨입니다. 에이미는 원작보다 훨씬 속이 단단해졌어요. 화가를 관두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려는 에이미에게 로리는 결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하면 안 되냐고 물으니 알지 않냐고 대답하죠. 에이미는 로리를 평생 동안 사랑해왔지만 자신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참지 않습니다. 부잣집 남자의 청혼을 거절한 것 또한 로리에게 가려고 선택한 게 아니에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평생 동안 사랑하는 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절한 거죠.
소설에서는 로리와 에이미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어요. 언니와 오랫동안 가까운 사이였던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이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 전개를 관객들이 납득할 만큼은 보여줘요. 둘은 충분히 사랑에 빠질만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착하고 예쁜 베스
베스는 한결같아요.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네 자매 중 가장 어여쁜 마음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크리스마스에 참전했던 아버지도 돌아오시고 온 가족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나 했어요. 원작과 방향을 달리해서 베스가 죽지 않는 건가 했는데 꿈이었네요. 베스를 살릴 순 없었을까요?
자애로운 마치 부인
아들 넷을 전쟁에 보냈는데 둘은 죽고 하나는 포로가 됐고 하나는 병원에 있다는 남루한 노신사의 말에 자신의 목도리를 담요에 함께 넣어서 드립니다. 이런 엄마 밑에서 컸는데 아이들이 예쁘고 바르게 크는 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본인도 어렵지만 그런 본인보다 더 어려운 분들을 항상 도와요. 마치 부인의 됨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 많습니다.
매력적인 로리
여성 중심의 서사다 보니 로리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습니다. 부수적인 캐릭터예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티모시 살라메가 맡았는데요. 여리여리하고 선이 고운 로리여서 새로웠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었고 외동으로 할아버지와 자랐기 때문에 복작복작하고 단란한 마치네 가족이 부러웠을 거예요. 로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 감정에 솔직했던 친구 같습니다. 네 자매들에게 남이 보는 가치가 아니라, 각자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매력을 알게끔 일깨워주기도 했고요.
원작 소설에서 로리는 피아노도 잘 치고 글에도 재주가 있어요. 그래서 작가를 준비하는 조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티모시는 피아노도 기타도 다룰 줄 알거든요. 근데 작은 아씨들에서는 로리의 그런 면이 전혀 나오지 않더라고요. 조가 더 독립적이게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리의 재능이 생략되지 않았나 싶어요. 티모시의 수준급의 피아노 실력을 알기 때문에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츤데레 대고모
얄밉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하나부터 열 끝까지 맞는 말을 하신 거예요. 가난한 목사와 결혼한 네 자매의 어머니, 메그 역시 가난한 과외 교사와 결혼했고 조는 결혼 생각이 없고 베쓰는 아프니 에이미에게 네가 너의 부모, 자매들을 부양하려면 너의 가족을 위해서 무조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 당시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부호와 결혼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볼키스도 싫어하시고 누구와 춤추는 것도 싫어하시고 네 자매에게 불만이 많으셨지만, 에이미를 손수 유럽에 데려가 미술 공부를 시켜주고, 큰 딸 메그의 결혼식 비용을 대주고, 큰 대저택을 조에게 상속하신 거 보면 다 뜻이 있으셨겠죠?
조와 에이미
조는 아빠에게 급히 가야 하는 엄마에게 줄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모에게 부탁하지 않고 예쁘게 길러온 머리를 기꺼이 잘랐습니다. 작은아씨들을 보셨다면 가장 먼저 기억날 장면이기도 해요. 식구들 앞에선 머리는 금방 자라니 상관없다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때에 그럴 리가 없죠. 머리 때문에 속상해서 혼자 울고 있는 조를 에이미가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장면이에요. 원작에선 메그가 위로해주지만 영화에서는 에이미가 위로해줍니다. 유독 영화에서 조와 에이미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로리를 사이에 둔 두 인물이라 그런 것 같아요.
조와 로리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후 오랜 기간이 지나고 로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 조가 로리와 에이미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면이에요. 저는 조에게 감정이입을 가장 많이 하고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조의 심정이 느껴져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슬픔을 억누르고 진심으로 에이미와 로리를 축복해주는 장면에서 조를 연기한 시얼샤 로넌의 섬세한 감정연기가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완벽한 결말
조 역시 뉴욕에서 자신을 보러 온 프레드리히와 잘 맺어지게 되었고요.
대고모에게 큰 저택을 상속받은 조는 남자와 여자아이 모두를 위한 학교를 세웠고, 작은 아씨들도 출판하였습니다. 연기를 하고 싶던 메그는 아이들에게 연기 수업을 하고, 에이미도 미술 수업을 하고, 이보다 완벽한 결말이 있을까요? 베스를 제외한 세 자매 모두 사랑과, 성공 모두 쟁취하게 됐으니까요. 전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작품 속 캐릭터도 원작보다 입체적으로 표현되어서 좋았어요. 다음은 1948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하였던 작은아씨들을 리뷰해볼까 해요.
마지막으로 가장 좋았던 대사를 소개해드릴게요. 메그의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하지 말고 함께 도망치자고 언니는 배우가 돼서 무대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조에 대한 메그의 답변이에요. 책을 출판하고 작가로 성공하는 것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예쁜 가정을 꾸리고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도 귀중한 꿈이니까요.
I want to get married.
because I love him.
Just because my dreams are different than yours
doesn't mean they're unimportant.
I want a home. And a family.
And I'm willing to work and struggle.
But I want to do it with John.
and besides
one day, It will be your turn.
난 결혼하고 싶어.
존을 사랑하니까.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해서
내 꿈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난 집과 가족을 갖고 싶어.
기쁘게 일 할 거고 싸워나갈 거야.
그걸 존과 함께 하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 너도 그렇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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