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5. 19:54ㆍFilm
강변호텔 (Hotel by the River) 2018
감독 : 홍상수
출연 : 기주봉, 김민희, 권해효, 유준상, 송선미
강변호텔 줄거리
호텔 오너의 호의로 공짜로 강변에 위치한 호텔에 묵고 있는 시인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를 것 같단 느낌에 오랜만에 두 아들을 불렀다. 한 여자는 유부남과 연애를 하다 이별하여 강변에 있는 호텔에서 묵는다. 위로를 받고 싶어 친하게 지내던 언니를 불렀다.
2019년에 개봉했던 홍상수와 김민희의 6번째 영화.
홍상수 감독은 <강변호텔>의 주인공인 영환의 입을 빌려 늘 그래 왔듯 그의 입장을 전한듯한 느낌이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캐릭터에 항상 본인을 투영시켜오던 사람이니까.
'상희'로 등장한 김민희는 유부남과 사랑했고 그에게 버림받았다. 손에는 화상을 입었다. 1도 화상이라는데 어떤 연유로 화상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별하고 받은 상처가 물리적으로도 나타난 것 같았다.
이번 그의 영화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 꽤 연출되었기 때문에.
※ 영화 강변호텔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본인인 할아버지
극 중 영환은 시인이다. 시인이었으므로 평소 그의 팬이었던 호텔 오너의 호의로 무료로 강변 호텔에 투숙할 수 있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럴까. 영환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의 행동은 꼭 유아 같다. 왜냐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거든. 70이 다 된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 같지가 않다. 꼭 유아기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고착된 인물 같았다.
아들들을 기다리다가 잠들어버린 그가 일어나 보니 밖에서 눈길을 걷고 있는 두 젊은 여자가 보인다. 아름답다. 대뜸 다가가서 두 분이 너무나 아름다우시다며 끝없이 이야기한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이 눈이 두 분을 위해 내린 것 같다며 두 여성에게 끊임없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예쁘다고 지나치게 말하는 것 역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다. 하물며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성이 그래도 불편한데, 아버지 벌 이상의 남성이 그런다면 보통의 여성이라면 몹시 찜찜할 테다.
영환은 식사를 마친 후 아들들에게는 걸어서 호텔에 가겠다고 문자하고 아들들이 돌아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식당에 들어가 두 여자에게 아름다우시다며 자신이 쓴 시를 읊어주며 소주까지 여러 잔 얻어마신다.
영환은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하는 인물이다. 그것이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든지 말든지는 전혀 관심 없다. 짧은 러닝타임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은 꽤나 상식적이지 않아서 몇 번을 감탄했다.
뭐가 힘들고, 뭐가 기특해?
상희는 이별했다. 연주와 상희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상희가 사랑했던 상대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상희는 손에 화상을 입은 상처가 있다. 둘의 대화는 자신이 이별을 해서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이야기 거나, 그 남자가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곳에서 "언니, 내가 왜 유부남을 사랑했을까요?"나 "그러게 왜 유부남을 사랑했어?"와 같은 이야긴 없다.
연주는 계속 상희의 전 연인을 욕한다.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서. 사람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고 한다. 묻고 싶었다. 그가 사람이 아닌 이유가 무엇인지.
유부남이면서 내연관계를 맺어서인지.
아니면 상간녀인 상희를 버렸기 때문인 건지.
그럼 너희가 생각하던 그 사랑의 결말은 무엇이었는지.
그 남자와 이별해서 잃은 건 없고 힘들기만 하다는 상희와, 그런 상희에게 기특하다고 하는 연주의 대화는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기괴했다.
"미안함으로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다"
영환은 아내와 두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갔다.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버렸느냐고. 아들들은 쉰 언저리가 되어서였을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였을까.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린 것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보단, 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훨씬 커 보였다.
영환은 미안함으로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다 말했다. 너희 엄마와 나는 너무 어릴 때 만났고 너무 맞지 않았다고 했다.
처자식을 버리고 사랑했던 여자와는 이별하였지만 영환은 후회가 없다고 했다. 비록 이별하였지만 자신은 사랑을 해 보았으니 상관없다고 했다. 영환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미안한 마음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건 본인에게도 상대에게도 지옥 이리라 생각한다.
부인과 같이 살 필요는 없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주기적으로 보고 아이들의 아버지 노릇을 해 주는 것이 아비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절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지.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부인과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본인의 사랑만 좇아야 했을까.
영환과 상희에게 감응할 수 없는 이유
영환과 상희는 본인들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미를 좇는 거. 사랑을 좇는 거.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사는 거. 다 좋아. 다 좋은데 자신들의 행동으로 큰 상처를 받을 이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은 조금도 없어. 자기가 했던 사랑이.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내가 헤어져서 아픈 게 가장 중요해. 내 행동으로 아파할 사람에 대한 인지는 일절 없어.
영환은 자신이 사랑을 좇아 떠난 후,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하며 실직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며 가장 노릇을 했을 아이 엄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렸을 때가 전부인 첫째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둘째에게,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은 전연 없다.
상희는 그가 가정이 있는 남자와 이따금 같이 살기도 하며 사랑했을 때, 남자의 부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남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남이사 무슨 사랑을 하든 내 알바가 아니고 남의 사랑에 손가락질을 할 권리가 내겐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행동임을 알면서도 해야겠다.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아픔만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영환의 사랑과 상희의 이별에 난 조금도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먼지 한 톨만큼의 감응도 할 수 없었다.
영환이 홀로 죽음을 맞았어도 동정하는 마음이 일지 않았다.
내가 냉혈한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과 그가 맞닥뜨린 죽음이 몹시 합당했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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