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7. 15:10ㆍFilm
도시로 간 처녀(The maiden who went to the city,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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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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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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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유지인, 금보라, 이영옥, 이영호, 김만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는 1981년 개봉한 김수용 감독의 도시로 간 처녀입니다. 가끔 이유 없이 오래된 한국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보게 된 영화인데 영화가 흥미로워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이슈가 있었는데 버스 안내양을 비롯한 한국노총의 항의로 개봉 후 상영이 중지되었다가 몇몇 부분을 수정하고 삭제하여 다음 해 재개봉했다고 해요.
이 영화는 버스 안내양들의 이야기로 시골에서 상경한 유지인(이문희)이 버스회사에 취직하고 안내양이 되면서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등장하는 "삥땅"입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정확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삥땅이라는 어원이 일본말에서 유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훔치다. 가로채다. 등의 표현이 있는데 굳이 왜 자꾸 삥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까 의문이었는데 세상 저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는 것이었어요. 저는 처음에 영화를 보면서 왜 안내양이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예전엔 요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인지 요금을 승차할 때 내지 않고 내릴 때 안내양에게 지불하는 방식이었더라고요. 후불입니다. 그리고 버스가 정차 시에 어떤 역인지 승객에게 알려주어서 혹시라도 승객이 내릴 곳을 놓치지 않도록 해 주고 승객을 전부 다 태운 후에 기사님에게 출발해도 좋다는 사인을 주어서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사고를 막았던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안내양이 돈을 걷는 방식이다 보니 안내양들이 돈을 중간에 삥땅 하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버스 차장은 버스 차장대로 운수 회사에서는 운수회사대로 오해가 쌓였던 것 같습니다.
극 중 문희(유지인)는 삥땅을 전혀 하지 않고 FM대로 사는 인물이에요. 융통성이 전혀 없습니다. 잡상인을 태우지 말라는 말에 절대로 잡상인을 태우지 않고요. 근무하면서 삥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중에는 회사에서 모범상도 받고요. 그런 문희와 반대로 옥경(이영옥)과 승희(금보라)는 근무하면서 삥땅을 수시로 합니다. 근데 미워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승희는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모 가족까지 부양하고 있는 집안의 가장이거든요. 물론 어떠한 이유로도 이러한 행위가 용납되지 않지만 마냥 승희에게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이유랄까요. 이와 반대로 옥경이는 프로 삥땅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런 옥경이는 삥땅 한 돈을 모아 택시를 마련해요. 물론 잘못된 행위지만 한 푼 두 푼 모아서 자신의 사업자금을 마련하는 모습이 당차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극에 등장하는 버스 차장들은 다 앳된 아가씨들인데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되게 일하면서도 밝게 웃으며 임하는 모습을 보는데 왜 때문인지 괜히 가슴이 아려오더라고요. 이 아가씨들은 밤늦게 열리는 야간 학교에도 참여하고 미싱 학원을 다녀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해요. 길고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텐데도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더 짠했던 것 같아요. 기특하단 생각도 동시에 들었고요. 그리고 다들 순수해요. 오랫동안 많은 돈을 삥땅 쳐온 옥경조차 사실은 순수하고 착한 아가씨거든요. 안내양들이 살았던 세상과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순수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 자신과 그들이 했던 사랑은 순수했던 것 같아요.
버스 차장의 이야기이다 보니 일터가 서울 한복판입니다. 그래서 40년 전의 서울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요. 그 유명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도 등장하고요. 개발 중인 서울의 모습과 지금도 간혹 찾아볼 수 있는 예스러운 간판들. 그리고 그 당시의 서울 사람들의 패션을 보는 것도 흥미로워요. 옛날 한국 영화를 보면 저는 예전 한국의 모습을 보는 게 영화 내용과는 별개로 새로운 재미를 주더라고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해서 더 좋았습니다. 지금은 중년 배우인 유지인, 금보라, 이영옥 배우의 20대 모습을 보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지금도 예쁘시지만 젊었을 때 모습은 정말 예쁘시더라고요. 유지인 님은 그냥 인형이었고 금보라 님은 세상 그렇게 청순하실 수 있나요? 이영옥 배우님은 전형적인 서울 여자 같단 느낌이 들었어요. 세련되고 도시적인 외모입니다.
그리고 40년 전 이야기이다 보니 지금 보면 으악스러운 장면이 많습니다. 극 중 옥경이의 남자 친구인데요.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살림하는 여자가 있으면서도 사귄 것은 무엇이죠? 왜 말을 안했냐고 따져 물으니 "안 물어봤잖아"라고 대답합니다. 더 최악인 건 정말 본처는 따로 있었다는 거였어요. 아이가 둘까지 있었고요. 세집 살림 무엇? 더 화나는 건 옥경이와 본처의 태도였습니다. 옥경이는 아이 둘을 키우고 노모를 모시면서 힘들게 살고 있을 본처를 보며 그녀에게 하얀 거짓말을 합니다. 기숙사까지 찾아와 머리끄덩이를 잡아끌던 선배한테서는 당당하게 남자 친구를 뺏어왔지만 본처를 보고서는 자기가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달려와서 아빠가 새로운 여자를 데려왔다는 말에 별 놀라지도 않고 새로울 것도 없듯 담담한 태도의 본처를 보면서 저게 처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에도 수없이 저런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저렇게 사는 모습이 더 가슴이 아팠어요. 옥경이와 본처 그리고 수입화장품을 쓰던 선배 차장 언니 모두 피해자예요. 왜 그들끼리 다투고 양보해야 되는지 지금 2020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그때도 일반적이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저런 지독한 종자는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요.
영화의 결말은 약간 갑분싸 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너무 극단적이어서 그렇게까지 했었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너무 과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어쨌든 그런 문희의 무모한 결단으로 버스 차장들에 대한 인권과 대우가 향상되었고 그들 스스로도 각성하게 돼서 보다 정직하게 일하게 됐다는 것 같아요. 옛 모습과 옛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그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주체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유튜브의 한국고전영화채널에서 시청하였습니다. 이 채널은 다수의 한국 고전영화를 복원하여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흥미 있으신 분들은 확인해보세요. 밑에 도시로 간 처녀들을 링크해두겠습니다. 흥미 있으신 분들은 재밌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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