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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얼굴 앞에서 l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당신얼굴 앞에서 l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당신얼굴 앞에서 l 죽음 앞에서 우리는

2022. 1. 5. 17:34Film

당신얼굴 앞에서(In Front of Your Face) 2021
감독 : 홍상수
출연 : 이혜영, 조윤희, 권해효

 

당신얼굴 앞에서 줄거리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상옥은 별안간 한국으로 돌아와 동생 집에서 머무른다. 영화는 그가 동생과 브런치를 하고 조카를 만나고 어릴 적 살던 옛 집을 찾아가고 중견 감독을 만나는 하루 일과를 조망한다.

 

 

홍상수 감독이 싫다 싫다 하면서도 매해 출시되는 그의 작품을 챙겨보는 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상의 단편을 그만의 방법으로 그려내는데 능숙한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왜 이번 영화에선 김민희님이 출연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배역과 나이가 맞질 않는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음에도 별안간 동생이 보고 싶고 조카가 보고 싶다고 했던 것. 처음 보는 여아를 꼭 껴안고 예쁘다고 말해주던 것.

 

말미에 영화감독 재원과 술을 마시며 자신의 고백을 털어놓고 나서야, 의아했던 모든것이 한순간에 이해가 되었다.

 

 

※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영화 <도망친 여자>에서도 작중 인물들이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이번에도 집값이 어떻니 아파트로 얼마를 벌었니 하는 의미 없는 대화를 지속한다.

 

보통은 특별할 것 없고 단조로운 하루 속 작중 인물의 영양가 없는 대화를 늘여놓는 것이 그의 작품인데,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은퇴한 배우가 주인공이니 그의 영화치고는 꽤나 특별한 편이다.

 

상옥은 여동생과 브런치를 함께하고, 조카를 만나고, 어릴적 살던 집에도 가본다. 왜 갑자기 어릴 적 살던 집을 갔을까. 왜 처음 보는 아이를 오래도록 껴안으며 예쁘다고 했을까.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술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이기 때문이었는지, 오래전 자신의 연기를 세심히 기억하고 있던 그에게 감복했기 때문이었는지, 상옥은 기침을 토해내듯 고백해버렸다.

 

영화감독 재원은 상옥이 5,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술에 취해서였는지, 감성적이 되었는지, 짧은 여행을 떠나 단편 영화를 한 편 찍자고 제안한다. 상옥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다음날 아침 상옥은 재원이 남겨놓은 음성 메시지를 듣는다. 어제 자신이 했던 말은 이행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며 행복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그 감독이 같잖아서 우습다는 식으로 피식피식 웃던 상옥은 다시 한번 메시지를 재생하며 과할 정도로 웃는데, 그것이 퍽 처연해 보였다. 서글펐을 것이다. 그와의 약속을 내심 기대했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안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지질한 남자들을 정말이지 혐오하는데, 

 

1. 왜 이행하지 못할 약속을 하였나. 그것도 시한부인 이에게

2. 기분에 취해 그렇다고 하면, 정중히 전화로 전해야함이 옳지, 또 회피하며 음성 메시지를 남기나.

 

죽음을 앞둔 사람한테 정도가 없어도 이렇게 없나..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상옥을 보면서,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면 한순간에 모든 게 쉬이 포기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미 고등학생 때 죽기로 마음을 먹었던 그였으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상옥이 죽음이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안 순간, 오전에 동생과 나누던 대화 내용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오랜만에 언니를 본 동생이 들떠서 "언니, 여기로 와. 우리 같이 살자. 여기 정말 좋아. 언니랑 가까운 데에서 살고 싶어." 했던 것.

 

상옥은 그럴 돈이 없다고 하였지만, 돈이 있다고 한들 반년의 삶이 남은 이에게 아파트며 집이며 하는 것들은 모조리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해서 나는 조금 허망해졌다.

 

상옥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미래의 악에서 구원해 주시고 항상 여기 있게 하소서.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기도를 한 것일 테다.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고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

이 순간만이 천국입니다..

죽음을 앞둔 그는 병원 치료를 받을 생각이 없다. 그 대신 고통이 심해지면 진통제의 힘을 빌려 남은 삶을 충실히 하루하루 살겠노라 말한다. 젊은 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던 것처럼, 집을 사는 대신 랜트를 하며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 살아왔다는 것처럼, 상옥이 여태껏 삶을 대하던 것과 비슷한 자세로 죽음 역시 대한다고 느꼈다. 

 

우아하고 고상한 죽음이리라.

한달 남짓의 시간이 남았을때도, 그는 지금과 같은 초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대했을 것이다.

 

연인 김민희 때문일까.

여성을 앞에 내세운 작품을 자주 만드는 느낌이다. 지질한 그의 오마주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아마 나는 투덜대면서도 매 해 가을마다 개봉할 그의 영화를 챙겨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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