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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리뷰 l 시간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자유의 언덕 리뷰 l 시간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자유의 언덕 리뷰 l 시간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2022. 6. 17. 21:02Film

자유의 언덕 (2014)
감독, 제작, 각본 : 홍상수
출연 : 카세 료, 문소리, 서영화, 윤여정

 

자유의 언덕 줄거리

몸이 좋지 않았던 어학원 강사 '권'은 산에서 한동안 요양을 하고 회복된 뒤 서울로 돌아왔다. 전에 일하던 어학원에 들렸다가 이년 전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일본인 강사 '모리'가 남겨놓은 두툼한 편지 봉투를 전해 받았다. 청혼을 거절한 후 모리는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별안간 한국에 돌아와 권을 찾았던 것이다. 권은 모리의 편지를 로비에서 한 장 읽고 계단을 내려다가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떨구었다. 주섬주섬 주운 편지에는 날짜가 없다. 거기에 편지 하나는 캐치하지 못해 줍지도 못했다. 권은 별 수 없이 무작위로 편지를 읽어나간다.

 

꿈과 자유. 현실과 시간. 미래와 과거.


오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봤다고 하자 내 연인은 요즘 들어 부쩍 홍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네라고 했다. 20편이 넘는 그의 작품은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이 작품은 본 기억이 없어서 봤다. 

 

뭐랄까. 2014년 작품인데 나는 이때의 영화가 조금 더 홍상수 감독스러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약간의 변주를 둔 같은 장면을 시점만 달리하여 반복한다거나,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모호하다거나.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늘 등장하는 흡연을 하는 모습이나 음주를 하는 장면이 등장 하지만, 요즘 들어 그의 작품은 부쩍 항변하는 느낌이 강해서.

 

영화는 모리의 짧은 한국 여행기를 담고 있다. 북촌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이웃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 전부다. 재밌는 점은 시간적 구성이 비선형적 구조라는 것이다.

 

영화의 시간적 구성이 뒤죽박죽인 이유는 권이 모리에게서 받은 편지를 떨어뜨렸기 때문인데 편지에 날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히는 대로 편지를 읽어나가는 권의 시선으로 모리의 짧은 북촌 여행기가 그려진다.

 

모리가 권에게 남겨놓은 편지를 진실로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쉬이 왜곡되고 가공되기가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발생했던 사건을 전부 다 보여주지 않고 부분적으로 생략하는 것도 왜곡에 해당한다. 그것도 거짓이 된다. 모리는 권에게 부끄러울 수 있는 것들은 편의로 생략했다.

 

마찬가지로 권이 모리가 적어놓은 그대로 모리의 하루를 들여다봤는지도 알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도 오염되고 편향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모리는 약 2주 동안 북촌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카페 사장과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덕분에 그의 남자 친구랑 주먹다짐을 한 것 같기도 했고. 사람들은 모리를 볼 때마다 일 때문에 왔냐, 여행으로 왔냐를 묻는데 그때마다 모리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2년 전에 차였던 여자를 만나러 와 놓고 결국 엉뚱한 사람들만 잔뜩 만나고 돌아간 셈.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구별 짓기 어려웠지만 마지막 시퀀스에 모리와 권과 비로소 만나는 장면은 아마도 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러 한국에 왔던 모리는 결국 몸이 아팠던 권을 만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칼로 뚝 잘라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꿈과 현실도 명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했다. 시간이 뒤섞여있듯, 꿈과 현실도 얽혀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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