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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본 영화 왕의 남자 17년 만에 본 영화 왕의 남자

17년 만에 본 영화 왕의 남자

2022. 7. 26. 21:46Film

왕의 남자 (King and the Clown) 2005
감독 : 이준익
주연 :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유해진, 정석용

 

왕의 남자 줄거리

조선시대 연산조. 광대인 장생은 부조리한 생활을 청산하고자 동료인 공길과 한양으로 상경했다. 뛰어난 재주와 실력으로 한양 놀이패의 대장이 된 장생은 어차피 개나 소나 입만 열면 왕을 흉보는 마당에 돈을 벌기 위해 연산을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였다. 공연은 성공하였지만 왕을 조롱한 대역죄로 의금부로 송치되었다.

 

 

※ 영화 <왕의 남자>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언젠가 천만 영화 시리즈를 해보고 싶었다. 한 번 본 건 다신 안 보는 성미이지만, 10년 이상 지났다면 다시 볼만한 것 같아서.  얼마 전 친구들과 <왕의 남자>에 대한 이야길 했었다. 그 당시 나는 학생이었는데 이 영화의 신드롬이 어땠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공길 역을 맡았던 이준기 님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차기작이었던 드라마도 꽤 잘됐던 것으로 기억하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CF도 찍으셨고.(이거 알면 최소 90년대생 ㅋㅋㅋ)

 

그래서 오랜만에 이 영화를 봤다. 무려 17년 만이다. 

 

먼저, 그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려서 이 영화가 동성애를 함의하는지. 이렇게 음담패설이 난무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제 사보니 이렇게 노골적이고 하물며 대사를 통해서도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도 왜 나는 그 둘을 사이좋은 동료로만 생각했는지가 의문이다. 내가 어렸던 것도 있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을 사랑이라 여겼던 시대적 분위기 탓도 있었을 듯싶다.

 

리뷰를 쓰기 전에 그 당시 나왔던 기사와 인터뷰를 읽어보았는데 왕의 남자를 홍보하는 기사나 인터뷰 어느 곳에서도 이 작품을 "동성애"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케팅 자체도 동생애 코드를 배제하고 진행한 듯했다. 

 

그 당시 대중들이 정서상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도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유는 불편할 수도 있는 스킨십이나 노골적인 대사가 등장하지 않았고 눈빛이나 행동을 통해 은연히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공길이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게 될 때 분노에 휩싸인 장생의 모습이나, 혹여 공길이 연산에게 마음을 내어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생의 모습은 혹 사랑하는 이를 다른 이에게 뺏기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영락없는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길이는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은 물론이고 성정까지 매우 여성적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공길이가 연산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손을 뻗는 모습이나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때면 꼭 공길이에게 모성애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 어미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망나니처럼 구는 연산이 몹시 가여워서 품어주고 싶기라도 한 것 마냥.

 

장생은 찌질 그 자체에 가까웠다. 분노에 이글거려 공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길이가 원해서 양반들과. 혹은 연산과 밤을 보낸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제 화를 못 이겨 공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모진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장생은 그 어릴 적 금붙이를 제가 훔쳤다며 공길을 지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누명이 씌워진 공길을 구하기 위해 눈을 내어주고 목숨을 내어주어 공길을 지켰다. 무식하지만 우직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것이다.

 

김처선의 말대로 장생은 공길을 잊어야 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이었다. 곁에 없고 볼 수 없어도 장생은 공길이 왕의 총애를 받으며 안온하게 살고 있다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공길 역시 어딘가에서 장생이 잘 살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장생은 결국 공길과 함께 다음 생에서도 맞춰보자는 말을 남긴 채 함께 죽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조금만 정신을 흩트려 뜨리거나 한 걸음의 발을 잘못 내디뎌도 떨어져 버리는 외줄처럼 그들의 삶과 그들이 하는 사랑 역시 몹시 위태했다.

 

영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보편적 정서를 함유하고 있기에 장생이라는 캐릭터가 지금 기준에서 굉장히 멋없게 그려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다 보고 이 영화가 천만 영화 감이었나를 생각해보았다.

명절을 앞둔다든가, 혹은 선거철에 내놓는 것과 같은 개봉 시점을 고려하기보다 이준익 감독은 마이너 한 동성애 코드와 흥행이 어려운 시대극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기에 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던 듯싶다.

 

천만 영화 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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