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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해석 줄거리 l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해석 줄거리 l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해석 줄거리 l 홍상수를 좋아하세요

2022. 10. 3. 21:11Film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son) 2012
감독 / 각본 : 홍상수
출연 : 정은채, 이선균, 김자옥, 기주봉, 유준상, 예지원, 안재홍. 제인 버킨

 

줄거리 

대학생인 해원은 같은 과 교수인 성준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 내일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오 년 만에 만나 데이트를 하고 우울해진 기분이 든 해원은 오랜만에 성준에게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날 둘은 우연히 같은 과 학생들을 마주치게 되고 해원과 성준의 관계가 소문이 난다. 해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해원은 일기를 자주 쓰고, 꿈을 자주 꾼다. 꿈과 현실이 흐릿하여 구분이 어렵지만, 적어도 꿈속에서의 해원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영화가 큰 대의를 함의하고 있거나 혹은 선하게 살기를 종용하거나 누구나 납득할만한 교훈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는 이미 많으니까.

 

그저 '아.. 이렇게 사는 삶도 있지.'하고 느낄만한 영화면 족하지 않을까.

 

오늘은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아파 종일 누워있어 깨어있다 잠들다를 반복하다 하루를 다 태웠다. 이렇게 개천절을 보내면서 듬성듬성 본 영화가 바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특징과 플롯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작중 캐릭터들은 비슷한 나이의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자가 나와서 비슷한 행동을 하니까 더 이상 홍상수 영화의 리뷰에선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만일 누가 홍상수 영화 중에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난 이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말할 것이다.

 

※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결말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그저 해원.


홍상수 감독은 시간적 순서를 뒤틀어 비선형적인 구조로 영화를 내보이거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곤 한다. 나는 그의 작품 속 현실이 그저 현실이 아니고, 꿈도 그저 꿈인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꿈속에서의 내가 훨씬 더 나다울 때가 있다. 현실에서의 체면, 평판을 위해 의도적으로 숨겨야 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억압된 욕망이 분출되며 자유로워진다. 정말 나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해원은 꿈을 자주 꾼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잠이 들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억압을 느낀 뒤 다음 시퀀스에서 해원이의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아 무척 순진하게 느껴질 때 그것은 꼭 꿈이었다. 그러니 해원은 꿈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발현하는 것 같았다. 

 

해원은 외로운 친구다. 아빠랑은 왕래가 적은 것 같았고, 이제 곧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5년 만에 만났으니 엄마와의 관계도 소원했을 것이다. 친오빠는 캐나다에 자리를 잡은 것 같으니 이민을 간 지 오래됐을 것이고 오빠하고도 연락을 자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였을까. 해원은 교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전적이 있다. 그리고, 아직 그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진 못했다.

 

해원이 그를 너무나도 원해서 관계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원이 외로운 마음이 강해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자신을 어여삐 여기고 사랑해주기를 갈구하는 마음. 어쩌면 유년기부터 부모에게 충분히 받지 못했을 사랑을 연애를 통해서 충족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교수와 헤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원은 동기인 재홍과 연애를 했다. 성준을 너무나도 원해서 연애한 게 아니듯, 재홍과의 짧은 연애는 그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했던 연애였을 것이다. 그것을 아는 재홍은 그저 착하니까 가만히 있는 거고, 그 꼴이 괘씸한 동기들은 해원이 미운 것이고.

 

해원은 우연히 미국에서 교수를 한다는 중년 남성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서 교수를 한다고 했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과 사적인 통화를 할 정도로 가깝고 이혼을 했으며 결혼을 할 여자를 찾는다 했다. 내일이면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그는 해원을 칭찬하며 해원과 잘해볼 마음이 있다는 걸 대놓고 어필한다. 그리고 해원은 그런 그가 싫지 않다. 딱 한 번 만나 놓고 연주에게 어쩌면 자신이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말이다. 

 

어렸을 때 영국에서 2년 정도 살아서 어느 정도의 영어를 할 줄 아는 해원은 그때를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여기는 듯했다. 그 시기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 호텔 조식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외롭지 않았을 것 같아. 엄마와 아빠와 오빠가 있던 그때는 지금과는 꽤 다르잖아.

 

그때가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교수를 한다는 중년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것일 테다. 어쩌면 그때처럼 행복한 삶을 다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해원은 교수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 친한 언니인 연주에게 자신의 상황을 다 털어놓았다. 그는 연주 언니가 유부남인 중식과 7년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면서도 연주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어떻게 유부남이랑 7년을 연애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은 잘 들여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자신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도.

 

해원은 기어코 남한산성으로 찾아온 성준에게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하곤, 혼자 울고 있는 성준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이번 리뷰를 쓰면서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여 쓰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꿈도 현실도 모두 해원이였기 때문이다. 현실과 꿈을 자로 자르듯 구분하는 것이 크게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았다.

 

해원이에게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불완전하고, 아직 미성숙한 그의 모습에 내가 떠올라 해원이를 나도 모르게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나는 해원의 행동 그 어떤 것에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https://youtu.be/V8OQkKas6L8

 

영화를 보면서 Jayde의 be natural이 떠올랐다. 해원에게 이 곡을 들려주고 싶다. 해원의 엄마는 해원에게 사는 건 죽어가는 거라 말했다.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이니 아끼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에서 해원이가 성준에게 했던 말을 해 주고 싶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엔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해서 살다 보면 머지않아 너를 위해서 모든 걸 다 걸 수 있는 근사한 사람을 분명히 만날 테니 그때까지 씩씩하게 견뎌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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